부처님나라 네팔에 학교 세우는 산악인 엄홍길 대장

지난 7월21일 만난 산악인 엄홍길 대장은 “교실에 앉아있는 어린이들의 눈빛이 얼마나 초롱초롱 한지 모른다”며 “부처님 성지에 세워지는 룸비니 휴먼스쿨에 불자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사진 신재호 기자 air501@ibulgyo.com
20여 년을 히말라야와 동고동락한 엄홍길 대장에게 산은 보통 사람이 생각하는 집이면서 직장, 동시에 삶이다. 요즘도 엄 대장은 히말라야를 만나러 간다. 오르기 위해서가 아니라 산이 준 가르침을 나누기 위해 찾아간다.

1986년 함께 에베레스트를 오르다가 목숨을 잃은 술딤 도르지부터 16좌를 완등하기 까지 자신을 위해 희생해 준 사람들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은혜를 갚기 위해 재단 설립 2년 만인 2010년 5월, 술딤 도르지의 고향 팡보체 마을에 초등학교를 세우게 된다. 2008년 뜻을 모아 발족한 ‘엄홍길휴먼재단’은 현재 네팔 룸비니에 세 번째 초등학교를 신축 중이다.

“오래 동안 오르내리다 보니 산만 보이는 것이 아니더라”

목숨잃은 동료 유가족 도우며 살고 싶은 꿈 묵묵히 ‘실현’

‘부처님 나라의 숨은 보석들’을 키우는 엄 대장을 지난 7월21일 서울 장충동에 위치한 재단 사무실에서 만났다. 전화 한 통 받기 힘들 정도로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지만, 오지마을에서 공부하는 어린이를 떠올리는 모습에서 보살의 마음이 느껴졌다.

-전혀 다른 분야에 도전하게 됐다.

“인간사랑, 자연사랑, 상생정신을 모토로 재단을 설립했다. 특히 해외사업으로 히말라야 오지마을에 자라나는 아이들을 위한 초등학교 설립에 힘을 쏟고 있다. 교육은 기초가 가장 중요하다. 국내에서도 청소년이나 장애인들에게 자신감과 도전정신, 동료애를 키워주고 싶어 지속적으로 산에 오르고 있다.”

-히말라야에서 어린이들을 자주 만나면서 재단을 설립했다고 들었다.

“1985년 히말라야에 첫 발을 내딛기 시작했다. 8000미터 16좌를 오르기 위해 20여 년이라는 세월을 히말라야에 바쳤다. 오랜 시간 동안 오르내리다 보니 산만 보이는 것이 아니었다. 산을 끼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과 문화 특히 그 속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의 삶을 접하고 어느 순간 이 일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학교운영은 어떻게 하고 있는가.

“그동안 NGO 단체들의 활동상황을 봐 왔다.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지원을 해 줘야 한다. 유리창이나 문짝이 떨어져 나가는 것까지 신경 쓴다. 건물만 짓는 것이 아니라 도서관, 양호실, 놀이기구, 마을회관, 화장실, 대형 물탱크까지 설치한다.

건물도 지형과 기후 특색에 맞게 짓는다. 바람이 많이 불고 겨울이 긴 팡보체 휴먼스쿨은 벽과 천정 바닥까지 단열재를 다 넣었다. 학교 창문도 최대한 크게 설치했다. 아이들이 따뜻한 햇살을 맡고 아름다운 자연을 보며 공부할 수 있도록 세심한 곳까지 살피고 있다.

세 번째 ‘룸비니 스리 싯타르타 휴먼스쿨’은 부처님 성지에 세워진다. 매우 열악하고 취약한 지역이다. 정부의 손길조차 미치지 않는다. 이 지역은 건기가 오래가는 물이 귀한 곳이지만, 우기 때는 상당히 비가 많이 온다.

산에서는 산악대장이지만 네팔서는 ‘엄 바라(큰)사부’

“공부하는 어린이들 눈빛보면 흐뭇하고 뿌듯함 절로 느껴”

그래서 건물 바닥을 최소 50센티미터 이상 다지고, 처마길이도 70센티미터 이상으로 했다. 이미 소문이 나 타 학교 학생들이 우리학교로 전학 오겠다고 해서 50명 가까이 정원 초과 됐다. 아이들을 막을 수 없어 증축했다.

지금은 우기라 9월부터 본격적인 공사에 들어간다. 내년 3월 준공예정이다. 노동봉사도 좋고 의료봉사도 좋다. 불자들의 도움의 손길을 보태준다면 큰 힘이 될 것이다.”

-현지 어린이들이 특별히 부르는 호칭이 있다면.

“엄바라 사부. 엄 사부라고 부른다. 바라는 ‘큰’이라는 뜻이다.”

-흐뭇하겠다.

“교실에 앉아있는 아이들의 눈빛을 보면 참으로 뿌듯하다. 아이들의 영혼이 얼마나 맑은지 모른다. 교육을 통해 희망의 불을 지펴주고 싶다.”

-평소 건강관리는.

“따로 건강관리 할 시간이 없다.(웃음) 삼각산 자락에 살고 있으니 시간 날 때마다 산에 간다. 산행하는 것이 건강을 지키는 것이다.”

-보약은.

“보약은 따로 챙겨 먹지 않는다.”

-언제부터 산에 대해 관심을 가졌나. 어린 시절은.

“언제부터라기보다 망월사라는 큰 선방이 있는 절 근처에서 살았다. 삶 자체가 산에서부터 시작됐다. 어릴 때는 완전 개구쟁이였다. 유년시절과 청소년시절의 놀이터는 산이었다. 산을 알게 되면서부터 전문적인 등반을 배우고 국내산을 두루두루 오르면서 큰 산에 대한 관심을 가졌다. 1985년 히말라야 원정을 시작으로 도전을 펼치게 됐다.”

-부모님 반대는 없었는지.

“산에 가는 것에 대해 부모님 반대가 심했다. 지속적으로 하는 일에 대해 포기하지 않고 설명했다. 해외 등반가는 것에 대해 사전에 이야기 하지 않은 적도 있다. 출발하기 며칠 전 ‘저 어디 좀 갔다 와야 겠습니다’라고 하면 ‘또 어디를 가느냐’ ‘거기는 왜 또 가냐’하시며 말리셨다. ‘산에 올라가는 것이 아니고 잠깐 밑에 일이 있어서 가는 겁니다. 이번만 갔다 다시는 안 갑니다’ 등등을 이유로 선의의 거짓말을 한 적도 있다.”

-종종 사람들이 한 번 올라갔다 내려오면 그만인데 왜 가느냐고 물어온다면.

“목표가 산이고, 좋아하는 곳도 산이고 산에 올라가는 것이 내 일이다. 미쳐서 하는 일이다. 사람들은 모두 일상생활 속에서 어떤 꿈을 펼치고 목표를 달성하며 꿈을 이루려고 한다. 나에게는 정상에 가는 것이 목표다. 올라가고 내려가는 것이 내 인생이다.”

-산이 사람에게 주는 가장 큰 교훈은 뭐라고 생각하나.

“석가모니 부처님은 어디서 깨달았는가. 자연 속에서 섭리를 깨달으신 것 아닌가. 인간은 태어난 곳이 자연이고 자연으로 돌아간다. 자연과 인간은 떨어져서는 안 된다. 때문에 자연의 소중함을 잊어서는 안 된다. 자연은 일상생활에서 치유할 수 없는 생명력을 불어넣어주고 치유해 준다. 한마디로 ‘만병통치약’이다.”

-안나푸르나는 엄 대장에게 어떤 산인가.

“안나푸르나는 네 번을 가서 실패하고 다섯 번째 만에 성공을 했다. 8000m 16개 봉우리 올라가는 산 가운데 안나푸르나에서 애를 가장 많이 먹었다. 그 산에서 가장 큰 사고도 나고 동료도 여려 명 잃었다. 가장 많은 눈물을 흘렸다.”

-산악인을 꿈꾸는 사람들을 위한 조언.

“항상 자연을 접하고 산을 오를 때 겸손해야 한다. 초심을 지켜야 한다는 말이다. ‘평상심시도’라는 말이 있지 않나. 초심을 잃은 사람에게는 산이 허락하지 않을뿐더러 받아주지도 않는다. 정신자세가 중요하다. 그런 다음에 산을 올라가야 한다.”

10여 년전 엄홍길 대장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해 탐험학교를 열고 같이 등반하다 유명을 달리한 동료들의 유가족을 도우며 살고 싶다”고 말했다. 이날 기자에게 ‘성불하십시오’라며 합장하며 배웅한 엄홍길 대장은 자신의 목표를 묵묵히 이뤄가는 구도자나 다름없었다.  

엄홍길 대장에게 많은 시련과 눈물을 안겨준 안나푸르나 정상에서.
 

■ 엄홍길 대장은…

1960년 경남 고성에서 태어났다. 1988년 에베레스트 등정을 시작으로 1993년 초오유.시샤팡마, 1995년 마칼루.브로드피크.로체, 1996년 다울라기리.마나슬루, 1997년 가셔브룸1.가셔브룸2, 1999년 안나푸르나.낭가파르바트, 2000년 칸첸중가.K2까지, 아시아에서 처음이자 세계에서 8번째로 히말라야 14좌 완등을 한 세계적인 산악인이다.

2004년에 얄룽캉 등정에 이어 2007년 로체샤르까지 등정해 세계에서 최초로 히말라야 16좌 완등에 성공했다. 그가 이룬 세계 최초 16좌 등정은 38번의 도전 끝에 이룬 성과다.

2005년에는 에베레스트 휴먼원정대를 이끌고 에베레스트 등반 도중 사고로 사망한 고 박무택 대원 등의 시신을 수습하기도 했다. 현재 엄홍길휴먼재단 상임이사를 맡고 있다.
 

■ 불교와 인연

30여년을 알고지낸 인연으로 엄홍길휴먼재단 이사를 맡고 있는 철안스님(전 봉선사 주지)은 “엄홍길 대장은 어느 수행자보다도 깊은 불심을 지난 불자”라고 말했다. 어려서부터 산을 좋아한 엄 대장은 의정부 망월사를 자주 다니며 자연스럽게 불교를 접했다.

철안스님은 “언제나 불경과 염주를 지니고 다니며 동료를 끔찍이 아끼는 하심이 몸에 배인 분”이라고 말했다. 엄 대장은 등반 할 때 텐트에 ‘법당’을 만들고 머리맡에 조그만 불상과 염부를 놓고 기도한다. 올라갈 때도 배낭 깊숙한 곳에 넣어놓고 마음속 기도문을 외운다.

또 현지에서도 절을 찾아 스님들을 뵙고 말씀을 들으며 마음을 다졌다. 히말라야를 오르면서 룽다라는 오색 깃발에 적혀있는 불경을 보며 언젠가는 자연으로 돌아가는 이치를 되새겼다.

엄 대장에게는 중요한 시기에 하루에 한 두 번씩 하는 마음의 기도문이 있다. 옴마니반메훔, 나무석가모니불, 관세음보살 등을 간절하게 염불하는 것이다. 특히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지대를 만나면 더욱 간절하게 기도한다. 석가모니 부처님과 관세음보살의 인자한 모습을 떠올리며 염불하고 죽음의 공포를 이겨왔다.

[불교신문 2741호/ 8월1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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