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든 넘은 고령 불구

수 km 험한 산사까지 다니며

평화통일된 국가 발원

봉정암 이어 연주암…

북한산 문수암서 회향 

  

북한산 문수사(주지 태성스님) 오르는 길. 가파른 돌계단이 나타나자 바위에 앉아 잠시 한숨을 골랐다. 이정표에 ‘문수사 0.2km’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그 글에 힘을 얻어서 일까. 노(老)신사가 등산용 스틱에 의지해 몸을 일으켰다.

백창기(83세, 법명 운경) 전 중앙신도회장이 2011년 전국 전통사찰 순례에 나선지 2년만에 744개의 사찰을 찾았다. 지난 5월22일 봉정암을 참배한데 이어 이날 오전 연주암을 찾았다. 그리고 오후에 마지막 745번째 사찰인 문수사에 올랐다. 〈사진〉

등산로 입구에서 문수사까지는 2.6km 거리다. 바위와 비탈길이 많아 가볍게 오를 수 있는 등산로가 아니다. 특히 오전에 연주암을 찾느라 무리가 있을만도 하련만, 강한 신심 앞에서 그런 점은 문제가 되지 않는 듯 했다.

“역시 봉정암이 제일 힘들었어. 8시간 걸어갔지. 그래도 정말 좋더라고. 부처님 원력이 아니면 어떻게 이 서원을 마칠수 있었겠어. 참 고마운 일이지.”

백 전 회장은 길을 오르는 중간중간 쉴 때마다 순례에 대한 기억을 회고했다. 드디어 문수사에 도착했다. 비와 땀으로 몸이 흠뻑 젖었고, 깊은 감회로 마음도 흠뻑 젖었다. 대웅전과 전각을 차례로 돌며 삼배를 올렸다. 주지 태성스님이 참배를 마치기를 기다렸다가 차와 과일을 내놓았다.

“이 비를 맞고 어떻게 올라오셨습니까. 지난해 강화 정수사에 주지로 있을 때 회장님을 뵈었어요. 이렇게 다시 뵙네요. 원력이 참 대단하십시다.”(태성스님) “이승만 대통령도 82세에 이곳에 올랐다고 그래요. 저도 용기를 내서 왔습니다. 동굴법당이 참 신심 납니다. 이곳까지 기도하러 오는 신도들도 참 대견하고요.”(백창기 전 회장)

처음 순례를 시작할 때만 해도 차가 갈 수 있는 절만 가려고 했다. 그런데 영 마음이 차질 않았다. 이에 올 초부터 40여 곳의 사찰을 찾기 시작한 백 전 회장은 다시 전국을 한 바퀴 돌며 못 갔던 전통사찰을 찾았다.

“참배하면서 두 가지를 기도합니다. 첫째는 우리나라가 평화통일이 돼 다툼과 질투가 없는 사회가 되기를 서원하고, 둘째로 가족과 이웃, 그리고 국민 모두가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기원하고 있습니다.”

백 전 회장은 “사찰을 돌면서 보니 어렵게 주지 스님 혼자 절을 지키는 곳도 있더라”며 안타까움을 전했다. 또 “어떤 사찰은 철문을 치고 일반인이 못 들어오게 한 곳도 있었다. 세 번만에 운 좋게 참배를 할 수 있었다”며 “전통사찰은 공찰이다. 수행을 위해 몇 년간 공찰의 문을 닫는 것은 맞지 않다”고 일침을 놨다.

지난 5월29일 북한산 문수사를 찾은 백창기 전 회장이 주지 태성스님과 차담을 나누고 있다.

백창기 전 회장은 처음 순례를 같이 시작했던 사모가 건강이 좋지않아 끝까지 같이 못한 점을 아쉬움으로 꼽았다. 그리고 일정을 같이한 김대원 전 전국불교산악인연합회 사무총장과 운전기사에도 고마움을 전했다. 김 총장은 올해 70세로, 역시 적지 않은 나이지만 카메라와 물, 간식을 담은 배낭을 메고 한발 앞서 등산로를 인도했다. 김 총장은 “순례기를 엮어 연말에 책으로 펴낼 계획이다. 우리나라의 현존하는 모든 전통사찰의 기록을 담은 자료가 될 것이다”고 전했다.

하산 길은 매우 가벼웠다. 쉬지 않고 한참을 내려왔다. 무리하는 것 아니냐는 걱정에 백 전 회장은 “내가 그래도 해병대 장교 출신 아닌가” 응수하며, 농담도 건네며 산을 내려왔다. “비가 오고 나니 물이 더욱 좋네. 이 좋은 곳을 두고 힘들다고 안왔으면 얼마나 서운할 뻔 했어. 내가 불교국가를 모두 가봤는데, 티베트만 못 갔어. 다음에 티베트를 갈 기회가 될까.”

해가 질 때쯤, 일행은 북한산국립공원 입구에 도착했다. 83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전국의 전통사찰을 2년만에 모두 참배하고 회향하는 백창기 전 회장. 어려운 일을 쉽게 포기하고 좌절하는 젊은이들에게 ‘신심’과 ‘도전’의 가치를 몸으로 보여줬다.

[불교신문2917호/2013년6월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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