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창기 전 중앙신도회장 전통사찰 전체 답사 기록

 전국전통사찰 기행 1~3권

백창기 글/ 비가람 

 

영시암으로 가는 계곡에

수없이 많은 돌탑이 있다

크고 작은 돌을 하나씩 얹으며

얼마나 간절한 마음을 담았을까

오랜 세월 물결에 닦인

크고 작은 바윗돌들이 맑다

나는 얼마나 더 닦아야

저렇게 하얀 마음이 될까

전국 745곳 전통사찰 전체를 순례한 백창기 조계종 전 중앙신도회장.

 

“너무 어려운 절이 많아. 말 그대로 밥도 먹기 힘든 절이 적지 않아요. 성지순례나 여행 갈 때, 불자들이 그런 절을 자주 찾아 줘야 해. 가장 힘들었던 곳은 설악산 봉정암이었어. 근데 또 가고 싶어. 정말 물 시원하더라. 아직도 그 물맛이 기억나.”

지난 14일 백창기 전 조계종 중앙신도회장을 서울 합정동 자택 인근서 만났다. 2011년 4월, 전국 745곳 전통사찰 주소록을 들고 “전통사찰을 모두 한번 둘러보겠다”며 순례를 나섰던 백 회장이다. 최근 순례의 여정과 사찰에 대한 기록을 모아 <백창기의 전국전통사찰 기행>을 펴냈다.

“아, 자꾸 기억나게 이것저것 묻지 마. 또 가고 싶어져. 절 돌아다니면서 기도하는 재미에 중독된 것 같아. 또 한번 가보고 싶지만, 다리가 불편해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까봐 참고 있어.” 백 회장은 껄껄 웃으며 대화를 풀어놨다.

순례의 마지막 사찰은 봉정암이었다. 선뜻 용기가 나지 않아 뒤로 미뤄놨는데, 어느새 744곳 사찰을 돌고 봉정암만 남겨 뒀다. “무등산 규봉암을 가던 생각이 났다. 절을 가는 길과 사찰은 참 좋은데, 가는 동안 적지 않게 힘들었다”는 백 회장의 걱정을 알았는지, 광주에서 사업을 하는 큰아들 백고은 사장이 회사 산악회원들과 찾아왔다. 처음에는 가지 말라고 만류했던 아들이었다.

“아들 딸이 착하고, 사회서 제 구실하고 살아. 마누라가 절에 살다시피 하면서 부처님께 기도를 올린 덕이지 뭐야. 내가 31년생인데 아직도 건강하니 이것도 큰 가피지.”

백창기 회장은 불교를 알면서 가장 고마운 일은 술을 끊은 일이라고 했다. 장교로 군복무한 이후 거의 매일 술을 마셨다는 백 회장은 ‘두주불사’로 불릴 정도였다. 그런데 중앙신도회장을 맡은 어느날 “신도회장이 모범을 보여야 하지 않겠느냐. 오계에 보면 술을 마시지 말라 했는데, 당신이 매일 술을 마셔서 되겠느냐”는 안사람의 말에 술을 끊었다.

“아, 그때 술을 끊은 덕분에 아직 건강해서 전통사찰 순례도 나설 수 있었던 거겠지. 우리 마누라는 평소에 허리 디스크가 있어서 고생하는데, 법당에만 가면 꼿꼿히 앉아 기도를 해. 그때는 허리가 안아프다고 하데. 또 말이야, 우리집에 TV가 3대 있는데, 한 대는 불교텔레비전 고정이야. TV 보면서 아침 예불하고, 저녁 예불하곤 해.”

처음 순례길은 백창기 회장 내외가 같이 시작했다. 하지만 전국을 두바퀴 돌면서 순례를 이어가는 길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결국 절반은 백 회장 혼자 떠나야 했다. 이야기는 다시 사찰 순례로 돌아왔다.

“영시암으로 가는 계곡에는 수없이 많은 작은 돌탑들이 만들어져 있다. 크고 작은 돌을 하나씩 얹으며 또 얼마나 간절한 마음을 담아서 쌓았을까. 옛터를 찾아서 영시암을 복원한 주지 도윤스님께서 우리를 반갑게 맞으며 차 대접을 해 주셨다. 다시 길을 올라가는데 계곡엔 물소리가 요란하고, 오랜 세월 흐르는 물결에 닦인 크고 작은 바윗돌들이 아주 맑은 모습이다. 문득 나는 얼마나 더 닦아야 저렇게 하얀 마음이 될까 생각이 든다.”

봉정암 가는 마음을 백 회장은 세세하게 기록했다. 그 마음은 어쩌면 봉정암을 오르는 많은 노부모님들의 마음이 아닐까.

순례기간 기억에 남는 일 가운데 하나로 충남 태곡사를 소개했다. 법당에 들어갔는데 불전함은 없고, 대신 함지박이 단에 놓여 있었다. 그 안에 5000원 짜리 한 장과 1000원짜리 몇장이 들어 있었다. 누가 가져가도 모를 일이었다. “그 주지 스님의 마음이 그대로 느껴져 아주 기억에 남는다”는 백 회장은 “크고 이름있는 절이 주는 느낌도 좋지만, 작은 사찰에서 받는 감동이 더 크다. 스님들이 끼니도 겨우 해결하면서 전통사찰을 지키는 모습이 안타까우면서 고맙다”고 말했다.

“김대원 총장과 이기홍 기사가 같이 해 줬어. 정말 고맙지. 또 순례길을 같이 한 것이 자가용이야. 사찰이 대부분 산에 있거나 비포장 길이 많아 자가용도 고생 많이 했지. 제주도에 갈 때도 배로 같이 이동했으니까, 745곳 사찰을 다 같이 돈 셈이야.”

백 회장은 힘들 때마다 차를 한잔 내어주며 이런저런 말을 해주던 스님들이 큰 힘이 됐다고 전했다. 또 힘든 산행을 할 때면 “그 길을 짐을 지고 실어 나르며 절을 유지하는 스님들”을 생각하면 오히려 감사한 마음이 일곤 했단다.

백창기 회장의 ‘전통사찰 기행’은 현존하는 전통사찰 전체를 기록했다는 점에서 자료적 가치가 크다. 세권으로 된 책은 여정을 따라 지역별로 사찰을 정리했으며, 전국불교산악인회 사무총장을 역임한 김대원 수필가가 글을, 운전을 맡은 이기홍 씨가 사진을 담당했다.

백 회장은 1932년 전북 무주서 출생해 한양여고 교사를 역임했으며, 대도개발을 설립하고 한국아스콘공업협동조합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1999년 조계종 중앙신도회 제2대 회장에 취임해 2004년까지 신도회장으로 활동했다.

[불교신문3141호/2015년9월3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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