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인사 ‘청년희망 캠프’를 가다

 

“몸을 움직여 경험하는 삶은

미련이 남지 않는다

사랑을 하면 아낌없이 주라”

 

“전 세계적으로 직업이 3만개

한국은 30개에만 매달려 있어

크게 넓게 보고 직업 선택하라”

 

“이상형을 만들지 말라

사람은 각자 취향이 다르기에

상대가 나를 싫어하는 것은

내 잘못이 아니다”

①지난 18일 해인사 승가대학 학감 보일스님이 판전에서 대장경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청년을 대상으로 한 이번 행사에 50여 명의 청년이 참가했다.

 

 

“자, 지금부터 연극을 하겠습니다. 경봉스님은 인생은 연극이라고 하셨는데 우리도 이제 연극을 해보겠습니다.” 혜민스님이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서로 마주보는 사람은 고등학교 때 가장 친했던 친구에요. 지금부터 눈을 감고 최근에 참 고마웠던 일 혹은 고마웠던 사람을 떠올려 보세요. 생각지도 못했는데 참 고마웠던 일을 떠올립니다.” 어색한 것도 잠시 눈을 감고 지난 과거를 되돌아보더니 마치 진짜 오랜만에 만난 친구인 양 말을 쏟아낸다.

‘청년들이여 희망을 가져라’를 주제로 해인사에서 열린 청년희망 캠프의 한 광경이다. 해인총림 해인사(주지 향적스님)는 지난 18일부터 2박3일 일정으로 청년들을 위한 희망캠프를 열었다. 취업, 결혼 등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20~30대 청년들에게 휴식과 희망을 심어주기 위해 마련한 특별한 프로그램이다. 해인사가 이 프로그램을 발표하자 모두 환영했고 언론들이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이 특별한 템플스테이에 합천군은 물론 경남도, 문화체육관광부 등이 지원을 하겠다고 나섰다.

청년들도 뜨겁게 호응했다. 보도가 나가고 예상했던 모집인원 70명이 금세 마감됐다. 18일 열린 1차 대회 첫날에는 전국에서 52명이 모였다. 서울 경기 등 수도권에서 온 지원자들이 많은 가운데 영남지역은 물론 멀리 목포, 대전 등에서도 왔다. 나이는 21살 대학생부터 44세 교사까지 폭넓었다.

이들은 나이와 사는 곳, 하는 일은 달랐지만 안고 있는 고민은 비슷했다. 졸업을 앞둔 학생들은 진로가 가장 걱정이었다. 사회를 나간 청년들도 직장이 가장 큰 근심거리였다. 서울에서 공무원 시험 준비 중이라는 한 청년은 “계속해서 떨어져 불안하던 참에 청년 캠프를 보고 일단 머리 좀 식히자는 생각에 참가하게 됐다”고 말했다. 절에서 운영하는 고시원에서 공무원 시험 준비 중이라는 남성 공시생도 있었다. 취직한 사람 역시 직장 문제가 가장 큰 고민이었다. 26세의 한 여성은 “직장은 있지만 임금이 적어서 관두려던 참이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참가 동기는 다양했지만 유형을 몇 가지로 정리할 수 있었다. 템플스테이를 평소 동경하거나 자주 참여하는 ‘수련형’, 엄마가 정보를 구하고 권유한 ‘마마형’, 방학과 여름을 맞아 쉬고 싶었는데 공짜로 먹여주고 재워준다는 말에 오게 된 ‘놀자형’. 그 중에서 최다 유형은 혜민스님을 만나기 위한 ‘스타형’이었다. 평소 해인사를 가보고 싶었다는 청년, 방학 맞아 빈둥거리는데 신문을 본 엄마가 신청했다는 대학생, 해인사 수련대회에 왔다가 정보를 접한 아빠가 ‘강제로’ 신청하는 바람에 왔다는 취업준비생, 언니 제안으로 서울에서 온 20대 자매, 애인과 함께 템플스테이를 하고 싶어서 대구에서 온 연인, 인천 을왕리로 놀러 가기로 약속했다가 친구들을 버리고 왔다는 20대 대학생 등등 다양했다.

③혜민스님 강의를 마치고 함께한 청년들.

폭염은 산중 해인사도 비켜가지 않았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을 뚫고 내리 쬐는 뙤약볕에 가만히 있어도 땀이 흘러 내렸다. 그러나 그늘은 시원했다. 산사답게 시원하고 맑은 바람이 청년들의 얼굴을 식혀주었다.

오후2시 개회식을 시작으로 2박3일간의 캠프가 막을 올렸다. 주지 향적스님이 환영인사에서 “취업으로 인한 많은 고민을 잠시 내려놓고 쉬다 가라”며 웃음으로 맞이했다. 장소를 보경당으로 옮겨 조별로 인사를 나누었다. 남녀 숫자는 정확하게 26명씩이었다. 21살부터 40대 초반까지 있었지만 차이를 느끼지 않았다. 청년답게 금세 친해졌다. 조별로 나눈 다음 오후 3시 해인사 승가대학 학감 보일스님이 사찰 안내를 했다. 스님은 “해인사는 1200여 년 전 지금 여러분들의 나이대 청년들이 진리를 참구 했던 가람이며, 오늘날에도 당시의 청년들과 같은 나이의 젊은이들이 역시 진리를 향한 구도열을 불태우고 있다. 이처럼 1200년의 역사를 넘어 지금도 일상으로 진행되고 있는 세계에서도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가람이 바로 해인사”라고 소개했다.

스님은 또 팔만대장경을 언급하며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난국에 처했을 때 어떻게 난관을 극복하고자 했던가를 보여준다”며 어려움에 처한 청년들에게 용기를 심어주었다. 사찰 안내는 일주문을 시작으로 해탈문을 거쳐 구광루, 대적광전, 판전으로 이어졌다. 1시간 넘게 진행되는 동안 청년들은 집중해서 스님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저녁 7시 청년들이 가장 기다리던 혜민스님이 등장했다. 향적스님도 동석해 혜민스님 강의를 지켜봤다. 혜민스님은 말을 하기보다 들으려 한다며 참가자들이 말을 하게끔 만들었다. 스님은 참가자들이 서로 마주보게 하고 몇 가지 상황을 연출했다.

“마주 보는 사람이 고등학교 때 내가 가장 친했던 친구입니다. 아주 오랜만에 우연히 친구를 만났습니다. 그 친구에게 고등학교 때 가장 고마웠던 일에 대해 3분간 말하세요.”

말을 한 사람이 듣고 들었던 사람이 말을 하며 오랜만에 만난 고등학교 친구, 중학교 친구, 심리상담사 등 상대방을 바꿔가며, 주제도 가장 고마웠던 일에서 열등감 등 다양하게 변형시키며 말을 시켰다. 혜민스님은 “참으로 열심히 이야기꽃이 끊기지 않는다”며 좋아했다.

스님이 물었다. “고마운 이야기를 들으면 마음이 어떻나요?” “가슴이 따뜻해집니다.” 누군가 답했다. 스님이 웃으며 “고마운 이야기를 들으면 왜 가슴이 따뜻해짐을 느낄까요?” 묻고 바로 말했다.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있으므로 나는 고립되지 않고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음을 느끼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스님은 듣는 사람들에게 “절대 조언하지 말고 따뜻하고 수용적인 자세로 들어만 주어라. 상대방을 그대로 비추는 거울이 되어, 그 사람의 편이 되어 듣기만 하라”고 말했다.

어느 여학생이 손을 번쩍 들어 질문했다. “잘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 중 어느 것을 해야 하나요?” 스님은 “둘 다 하라”고 답했다. 스님은 “연애든 직업이든 많은 경험을 하라”며 “몸을 움직여 이것저것 경험하는 삶은 미련이 남지 않으며 사랑을 하면 남김 없이 아낌없이 주라”고 말했다. 스님은 “직업이 많은데 다들 남들이 하려는 일에만 몰려든다. 공무원 선발 경쟁률이 50대1 이라는데 떨어진 49명이 정상입니까, 붙은 1명이 정상입니까”라고 물으며 “떨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전 세계적으로 직업이 3만개라는데 한국은 30개 가량의 직업에만 매달린다. 눈을 크게 넓게 보고 다양한 직업이 있음을 기억하라”고 조언했다. 한 여성이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데 고백을 하지 못하고 있다”며 고백하자 스님은 “이상형을 만들지 말라. 그 사람은 그 사람의 취향이 있어 나를 싫어할 수 있다. 그것은 나의 잘못이 아니다”며 용기를 가지라고 격려했다. 

④자신을 소개하는 참가자들.

해인사의 밤이 깊었다. 승가대학 학인 스님들이 해제와 더불어 방학이었기 때문에 이날부터 해인사는 조용해야 하는데 청년들로 인해 가야산은 밤 늦게까지 사람들로 활기가 돌았다. 저녁 9시에는 스님과 대화 시간이 잡혔다.

다음날에는 신부·목사님과의 대화시간이 열렸다. 천주교 영천 산자연학교 교장 정홍규 신부, 거창 중촌교회 유수상 목사 등이 참여해 청년들을 위한 가르침을 전했다. 또 정철상 연재개발연구소 대표, 이영대 한국진로교육학회 이사 등 8명의 진로교육 전문가들이 참여해 이력서 작성, 면접요령 등 실전에서 필요한 부분을 코치했다.

주지 향적스님은 “현 시대의 아픔이 무엇이고, 불교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다가 청년문제에 접근하게 됐다. 국가나 사회가 하지 못하는 부분을 종교에서 치유하고자 이번 캠프를 마련했다”며 “해인사는 앞으로도 청년들의 아픔과 고민을 외면하지 않고 이웃과 사회를 위한 자비행을 적극 펼칠 것”이라고 말했다. 

[불교신문3227호/2016년8월2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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