榮華終是三更夢

富貴還同九月霜

老病死生誰替得

酸苦辣自承當

“세속의 영화는 마침내 한밤중의 꿈같고/ 부귀도 되돌아보면 구월의 서리 같네.// 피할 수 없는 생로병사 누가 대신 하겠는가?/ 시고 달고 쓰고 매운 이치는 자신만이 알리라.”

 

수행자의 본분을 잊고 모두가 밖으로 치닫고 있는 요즘 모두를 경책하는 말씀입니다. 선사의 고구 정녕한 이 말씀을 마음에 굳게 되새겨서 잠시도 놓쳐서는 안 될 것입니다. 무더운 여름 한 철 동안 각자가 화두를 굳게 들고 자신에게 철저하려고 애썼을 것입니다. 허리가 끊어질듯하고 다리가 아파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지 못한 까닭이 무엇입니까?

욕망에 사로잡힌 수행자는 코끼리 가죽을 덮어쓴 개와 같다고 했습니다. 아무리 그럴듯한 겉모습과 이름으로 치장을 해도 근본은 바뀌지 않습니다.

수행은 혁범성성(革凡成聖)이라. 범부의 마음을 고쳐서 성인이 되게 하는 길입니다. 부처님과 역대조사가 깨달음의 세계를 장엄할 수 있었던 것은 진실로 버리기 어려운 욕망을 버렸기 때문입니다. 부처님이 그러하듯이 수행의 길로 들어선 모든 이들이 그러해야 합니다. 부귀영화와 타협하면 당장은 즐겁고 행복한 것 같지만 궁극에는 후회와 두려움이 닥쳐오게 됩니다. 그런 줄 알면서도 과감히 끊지 못하는 것은 짧은 쾌락의 유혹을 뿌리칠 의지가 약하기 때문입니다. 줄어드는 물에 고기와 같은 신세임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기다려 주지 않는 시간을 야속하다고 탓 해봐도 소용없습니다. 앞뒤 잴 것도 없이 머리에 붙은 불은 끈다는 심정으로 용맹심을 내어야 합니다. 더 이상 물러설 곳도 나아갈 곳도 없다는 결심으로 밀어 붙여야 합니다.

어이없게도 가끔 수행자들이 이런 망상을 합니다. ‘나중에 부처를 이룬 다음에 신통도 없고 설법도 할 줄 모르면 어쩌나?’ 하고 말입니다. 동분서주 하면서 이런저런 방편을 배워보지만 공부와는 거리가 더 멀어집니다. 오직 지금 이 순간뿐 두 번 다시 기회가 없다는 각오를 해야 합니다. 두려움은 자신을 아끼고 분별하는 마음 때문에 생깁니다. 그 마음만 내려놓으면 어떤 것도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이 길로 들어섰으면 중생의 등불이 되고 자항(慈航)이 되어야 합니다. 모든 공덕의 싹을 태워버리는 망상의 불길을 끌 수 있는 감로가 되어 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세속의 욕망을 변화시켜 우담발화가 되게 하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행하는 길이며 대자유인의 길을 간다고 할 수 있습니다.

수행자에게 화두는 강을 건너는 배이며, 높은데 오르는 사다리이며 모든 생명들에게 생기를 불어넣는 근본이라는 사실을 되짚어 보아야 할 때입니다. 오늘 해제는 중생의 삶을 부처의 삶으로 바꾸어 대자대비의 문을 열고 나가는 날이어야 할 것입니다.

 

杯子撲落地

響聲且歷歷

虛空粉碎也

狂心當下息

“찻잔이 땅바닥에 툭 떨어짐이여!/ 그 소리 참으로 통쾌하구나.// 허공마저 부서져 흩어져 버리는데/ 날뛰던 그 마음 당장에 쉬었네.”

[불교신문3227호/2016년8월2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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