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민이 관세음보살’…꿈을 이뤄주는 열린 도량

연4~5회 경로잔치엔

어르신 2000명 동참

경내에 전통 한옥식

‘흥천어린이집’ 운영

 

사찰 정상화 5년만에

신도 3000세대로 증가

흥천사 경내에 전통 한옥식으로 문을 연 흥천어린이집. 

서울 돈암동 삼각산 기슭에 위치한 흥천사는 조선 태조 이성계가 1397년 둘째 부인인 신덕왕후 강 씨의 명복을 빌기 위해 세운 원찰이다. 170여 칸에 이르는 대가람에다가 조선불교의 총본산격인 선종도회소(禪宗都會所)로 지정되는 등 억불숭유정책의 조선시대에서도 한국불교의 법통을 꿋꿋이 지켜왔다. 하지만 조선중기부터 왕실의 지원이 줄어들고 화재를 당하면서 사세도 기울기 시작했다. 특히 불교정화운동 당시 대처승이 자리 잡은데다가 주민들이 사찰 토지를 점유해 사는 등 퇴락의 길을 걷기도 했다. 심지어 전 주지가 무단으로 사찰 토지 매각을 추진하는 등 600년 동안 이어온 법등이 꺼질 위기에 봉착하기도 했다. 그러나 흥천사는 2011년 10월21일 통합종단 출범 반세기만에 조계종 품으로 돌아왔다. 흥천사는 부처님의 가피로 온 세상을 흥하게 하고(新興天下), 꿈을 이루어주는 도량으로서 사격을 일신시켜 나가고 있다.

 

42수 금동천수관음보살좌상

2011년 6월 흥천사 주지로 부임한 정념스님(현 흥천사 회주)은 곧바로 사찰 정상화에 매진했다. 전 주지의 불법 토지매매계약을 무효화하고 사찰 토지를 점유한 22가구 80세대의 주민들과 원만 합의를 통해 내보냈다. 주지 부임 4개월만에 인수인계절차까지 마무리함으로써 흥천사는 종단 공찰로 새롭게 거듭났다. 흥천사의 역사 문화적 가치를 알아보고 일체의 토지 매각 없이 전통사찰을 보존하겠다는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스님과 신흥사 조실 무산스님의 원력과 정념스님의 추진력이 맞아 떨어져 일군 값진 성과다.

하지만 사찰 제반 여건은 녹록치 않았다. 사찰운영권을 넘겨받은 뒤 거행한 첫 번째 초하루법회의 동참자는 단 2명에 불과했다. 지난 50년간 미입주사찰로 제대로 된 개보수 조치가 없었던 데다가 인수인계시 종무소에는 책상은커녕 볼펜 한자루 조차 없을 만큼 모든 게 열악했다. 하지만 화마로 소실된 양양 낙산사를 성공리에 원형 복원한 노하우를 갖고 있던 정념스님은 “모든 일을 발원하면 흥하게 일어난다는 흥천사를 기도하면 모든 게 이뤄지는 꿈을 이루어주는 도량으로 만들겠다”는 서원을 갖고 정상화를 위해 매진했다. 곧바로 도량 곳곳을 말끔하게 정비할 뿐만 아니라 가족중심의 신행프로그램 운영과 경로잔치 개최 등을 통해 불자는 물론 지역민의 마음을 움직였다. 이를 통해 불과 5년만에 신도 수가 3000세대에 육박할 만큼 큰 변화를 일궈냈다.

흥천사는 매년 4~5차례 어르신들을 초청해 경로잔치를 펼치는 등 자비나눔을 앞장서 실천하고 있다. 정성 가득한 점심공양에다가 되돌아갈 때에는 커피믹스나 휴지 등 풍성한 선물보따리를 안겨 준다. 최근 들어서는 전국병원불자연합회 등과 연계한 의료봉사활동도 펼침으로써 참가인원이 점차 늘어나 이제는 1500~2000명의 어르신들이 흥천사를 찾고 있다.

혹한기와 혹서기 등 경로잔치가 안 열리는 달에는 돈암동과 정릉 등 인근 경로당 10여 곳에 수박 등 공양물을 후원하고, 저소득세대에는 정기적으로 물품도 지원하고 있다. 매년 봄이면 저소득세대 자녀 등에게 2000여 만원의 장학금도 수여하고 있다. 이같은 자비나눔은 신도들이 매월 1만원씩 보시하고 한달에 한번씩 봉사활동에 참가해 보살행을 실천함으로써 이뤄지고 있다. 염불봉사와 공양간 자원봉사, 법회 자원봉사 등 사중에서 이뤄지던 자원봉사 활동영역을 산문밖으로 확대하기 위해 지난 3월 자원봉사교육을 갖고 자원봉사단도 출범시켰다. 중장기적으로 사회복지시설 수탁운영도 추진하는 등 지역민과 하나 되기 위한 행보를 끊임없이 펼쳐가고 있다.

경로잔치에서 의료봉사 활동 모습.

흥천사의 산문은 항상 열려 있다. 서울 도심의 아파트 단지 사이에 위치한 흥천사는 지역민들이 등산을 하거나 마을버스를 타기 위한 지름길로 사찰을 가로질러 가지만 막지 않는다. 오히려 시원한 생수병과 신문 등을 무료로 가져 갈 수 있도록 내놓고 커피자판기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이처럼 지역민과 하나 되기 위한 흥천사의 자비나눔 실천은 “지역주민이 관세음보살이니 이들을 극진히 섬겨야 한다”는 신흥사 조실 무산스님의 가르침을 실천한 결과라는 게 흥천사 관계자의 설명이다.

흥천사는 기도와 신도교육에도 소홀함이 없다. 10명의 사중 스님들이 각 전각마다 쉼없이 기도정진할 뿐만 아니라 초하루법회와 함께 일요법회, 어린이법회, 청소년법회 등을 통해 온 가족이 함께 사찰을 찾아 힐링하며 불심도 증장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새로운 신도가 찾아오면 주지 스님이 신행상담을 가진 뒤 가정에서도 기도정진할 수 있도록 좌복, 종이불전함, 염주, 관세음보살 액자 등을 선물한다. 각 가정에서 ‘내 꿈이 이루어지는 108배’를 올리는 100일기도를 회향한 뒤에는 기도동참비를 사중에 희사해 자비나눔 기금으로 사용된다. 불자로서 공덕을 쌓을 수 있는 인연을 제공하는 셈이다.

불교대학 입문반과 경전반 강의 등을 통해 불교인재 양성에도 앞장서고 있다. 특히 법문도 현대인에 맞춰 쉬우면서도 신행활동에 도움을 줄 수 있도록 설하고 있다. 불화소(佛畵所)를 통해 불교미술활동과 후학 양성에 앞장서 온 흥천사는 매달 한차례씩 일요법회 후 누구나 참여 가능한 불화그리기 체험프로그램을 통해 불교미술의 대중화에도 기여하고 있다. 1920년대 부산 범어사 복천암에서 완호 낙현스님으로부터 사사한 월주 원덕문스님(중요무형문화재 제48호 단청장 초대 기능보유자)이 흥천사에 주석하며 불화소를 개설해 작품활동을 했던, 맥을 잇고 있는 것이다.

최근 들어 흥천사의 가장 큰 자랑은 서울시 최초의 전통 한옥식 어린이집인 ‘흥천어린이집’이다. 흥천어린이집은 85명을 정원으로 지난 2015년 6월 개원했다. 전통사찰 경내에 위치한데다가 친환경적인 한옥 교사(校舍), 정서순화와 생명존중을 강조한 교육철학 등으로 대기자가 줄을 설 만큼 인기만점이다.

흥천사는 사격을 일신시키기 위한 도량정비 불사가 한창이다. 보물 제1891호 ‘42수 금동천수관음보살좌상’을 모신 ‘극락보전’과 흥선대원군이 직접 시주하고 모연해 현판 편액까지 쓴 ‘대방(국가등록문화재 제583호)’ 원형복원불사를 추진 중이다. 내년 4월과 12월까지 극락보전과 대방 불사를 각각 회향한 뒤에는 많은 이들이 동시에 법회를 볼 수 있는 법당과 종무소, 후원, 각종 편의시설 등을 갖춘 새로운 전각도 세우겠다는 계획이다.

흥천사의 변화 바람은 현재진행형이다. 지난 5년간 보여준 흥천사의 변화는 종단 품 밖에서의 50년간의 행적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비약적인 성과를 일궜다. 흥천사의 미래가 기대되는 이유다.

“부처님 품서 힐링하는 쉼터 조성” 

흥천사 주지 정관스님

“지역주민을 관세음보살처럼 극진히 모시라는 조실 무산큰스님과 꿈이 이루어지는 도량으로 만들고 싶다는 회주 정념스님의 뜻을 받들어 열심히 기도 정진하면서 베푸는 도량으로 만들어갈 것입니다.” 지난 7월21일 만난 흥천사 주지 정관스님은 이같이 흥천사 운영기조를 밝혔다. 지난 2014년 12월부터 주지 소임을 맡고 있는 정관스님은 서울 도심에 위치한 왕실 원찰이라는 장점을 적극적으로 살려 나가겠다고 피력했다. “서울 도심사찰이다보니 포교나 전법에 매진해야지요. 특히 언제든지 누구나 찾아와서 지친 몸과 마음의 평온을 되찾을 수 있는 열린 도량이 됐으면 합니다. 불자에게는 정신적 귀의처로, 주민들에게는 힐링할 수 있는 쉼터로 도량을 일궈 나갈 것입니다.”

이를 위해 정관스님은 온 가족이 함께 신행활동을 펼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다. 법문은 교양도 쌓을 수 있으면서도 신행활동에도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하는데 초점을 두고 있다. 불교대학 경전반 강의도 <숫타니파타>, <법구경> 등 비교적 쉽게 배울 수 있는 경전으로 택하고 있다. 어린이·청소년법회도 놀이를 가미시켜 재미있게 진행하고, 일요법회 때 공양을 마친 뒤에도 불화그리기와 요가체험 등 특화된 프로그램으로 온 가족이 주말이면 부처님 품에서 힐링할 수 있도록 도량을 만들어가고 있다.

정관스님은 흥천사가 오랫동안 방치되다시피 했던 만큼 해야 할 일은 무궁무진하게 많다고 강조했다. 경로잔치 등 기존의 자비나눔 사업을 이어나가면서 사회복지시설 운영과 자원봉사단을 통한 대외활동 강화 등을 통해 불교의 대사회적 역할에도 소홀함이 없도록 앞장서겠다고 서원했다. 아울러 현재 덕수궁 광명전에 모셔져 있는 보물 제1460호 ‘흥천사 동종’ 환수도 본격적으로 추진하겠다는 방침이다. “사격이 커지는 만큼 그에 걸맞는 대사회적인 역할도 맡아야 하지요. 그게 곧 한국불교를 위한 길인 만큼 흥천사도 힘을 보탤 것입니다.”

[불교신문3227호/2016년8월2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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