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주말만 되면 불행해졌다. 다른 아이들은 엄마 아빠랑 놀이터에서 노는데 우리는 숨만 쉬고 있다며 슬퍼했다. 숨만 쉬는 것도 피곤한 남편과 나는 아이의 행복을 위해 꾹 참고 놀이터로 나갔다. 다음 주말이 되자 아이는 또 불행해졌다. 남들은 수시로 영화관에 가는데 자기는 고작 놀이터나 가는 처량한 신세라고 했다. 그래서 영화관에 갔다. 또 주말, 아이는 다시 불행해졌다. 친한 친구가 여행을 다녀왔다며 자랑을 했단다. 우리도 가기로 했다. 아이는 행복한 여행을 위한 조건을 말했다. 깨끗한 침구, 넓고 좋은 숙소, 매 끼니 진수성찬, 신나는 놀이기구 체험, 이 닦을 때 생수 제공, 세수 안 해도 잔소리 않기 등등. 그 어려운 걸 남편과 나는 해냈다. 아이의 행복을 위해.

남편과 나는 주말이 무서웠다. 하지만 여지없이 주말은 오고야 말았고 아이는 다시 불행해졌다. 아이는 창백한 얼굴로 12년씩이나 살면서 외국도 한 번 못 가본 ○같은 인생이라고 했다. 충격을 받은 내가 소리 질렀다. 까짓, 가지 뭐. 단번에 얼굴에 화색이 돌아온 아이가 조잘댔다.

프랑스에 가서 스테이크랑 마카롱을 먹는 거야. 이태리에서는 피자를 실컷 먹고 후식으로 젤라또를 먹는 거지. 참, 스위스 융프라우에 가면 컵라면을 꼭 먹어야 해. 엄마, 거기는 컵라면이 만원이래. 두 개 먹을 거야. 외국 가면 실컷 먹고 잔뜩 사와야지.

행복해지기 위해 필요한 조건들을 내건 아이를 보며 행복은 필요한 것을 얼마나 갖고 있는가가 아니라 불필요한 것에서 벗어나는 거라 하신 법정스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나는 아이에게 행복은 불행처럼 요란하게 오지 않고 또 멀리 있지도 않으니 정말 누가 봐도 불행한 순간을 제외한 모든 순간을 행복하다고 여기며 살라고 했다. 행복에 조건을 붙이지 말라고도 했다. 그래야 네가 행복하다고 정말 온 마음을 다해 말해 주었다. 아이는 반박을 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온전히 이해한 눈치도 아니었다. 월요일 아침, 가방을 메고 나서는 아이에게 나는 외쳤다. “무조건 행복! 그냥 행복!”

[불교신문3235호/2016년9월2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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