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한국인과 한국불교를

얼마나 얕잡아 보기에

오늘날 이런 수준 낮은 맹목적인

비난을 하는지 모르겠다

합리적인 현대인에게 있어

전체를 싸잡아 비난하는

사람에 대한 시선은

그저 싸늘할 수밖에 없다

또 지성인이라면 논리를 갖춘

주장과 합리적 비판 그리고

책임지는 자세는 필수적이다

현대사회는 다양성을 기반으로 하며, 모든 가치관을 용인하는 동시에 존중한다. 이런 점에서 정당한 비판과 소수의 의견은 사회를 건전하고 균형있게 발전시키는 버팀목이 된다. 그러나 이것이 존중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사실에 근거’해야 하며, 착오가 있다면 ‘책임지는 자세’가 동반돼야만 한다. 이러한 두 가지가 전제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정당한 비판이 아닌 악의적인 비난인 동시에 ‘카더라’식의 음모론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은 현대의 도덕적인 인간이라면 결코 취해서는 안 될 자세이다. 그런데 이런 일이 한 대학 교수에 의해서 버젓이 자행되고 있다. 그것도 한국의 전통문화와 정신을 대변하는 불교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

나는 이분이 “한국불교는 변태불교다”거나, “사찰들 이면을 보면 암흑가 갱단 같다”는 등의 한국불교 전체를 싸잡아서 막말하는 방식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이것은 비판이 아닌 저급한 비난일 뿐이기 때문이다. 비판이란 특정 부분에 대해 합리적인 관점에서 문제를 제기하거나 그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희종 선생의 말에는 이런 상식적인 당연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마치 1970년대 구호인 ‘때려잡자 김일성, 무찌르자 공산당’이라는 식의 폐쇄적인 관점만이 목도되는 것이다. 때문에 종교문제를 넘어서, 이러한 합리적인 사고와 비판능력이 결여된 분이 대학의 교수라는 게 한국인의 한 사람으로서 수치스러울 정도이다.

나는 이분이 왜 한국불교를 향해서 이런 식의 유아기적인 비난을 쏟아내는지 알지 못한다. 그러다가 문득 이분이 쓴 “내가 불자이자 기독교인이라는 것이 그리 이상한가봅니다. 나는 진리를 사랑합니다. 붓다의 가르침이 진리이고, 하느님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는데 진리를 사랑하는 것이 문제라면, 저들은 진리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부처’, ‘하느님’이라는 이름만을 사랑하는 것 아닐까요?”라는 글을 보면서 문제점 중 하나를 파악할 수 있었다.

불교에서 말하는 진리는 절대적인 가치로서, 이는 신이라는 상대성 위에 존재하는 최고 개념이다(진리≠신). 이 때문에 불교는 신을 비판하면서 진리주의를 제창하게 된다. 이에 반해서 기독교의 진리는 ‘절대신=진리’이다. 이로 인해 기독교에서는 유일신 절대주의만을 지향하게 된다. 즉 두 종교는 같은 진리라는 단어를 사용하지만, 실제로 이것은 완전히 다른 개념인 것이다. 마치 ‘내리는 눈(雪)’과 ‘보는 눈(眼)’의 차이처럼 말이다. 그런데 우희종 선생은 이러한 양자를 전혀 구분하지 못한다. 이 때문에 자신을 “불자이자 기독교인”이라고까지 서슴없이 말하는 것이다. 이는 어찌보면 여러 종교를 아우르는 지식인 같은 뉘앙스지만, 실제로는 스스로의 무지와 독선만을 변증하는 말에 지나지 않는다.

도대체 한국인과 한국불교를 얼마나 얕잡아 보기에, 오늘날 이런 수준 낮은 맹목적인 비난을 하는지 모르겠다. 합리적인 현대인에게 있어 전체를 싸잡아 비난하는 사람에 대한 시선은 그저 싸늘할 수밖에 없다. 또 지성인이라면 논리를 갖춘 주장과 합리적 비판 그리고 책임지는 자세는 필수적이다. 이런 부분이 없다면, 우 교수는 수의학을 너무 오래하다 보니 축생화됐다는 조롱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불교신문3235호/2016년9월2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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