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롭고 배고픈 영혼 ‘극락왕생’ 천도의식         

생·사, 오가는 이 차별 없이 

음식을 베풀고 진리를 들려줘 

깨달음에 이르게 하는 데 목적 

삼화사 진관사는 ‘무형문화재’ 

중요무형문화재 제125호인 동해 삼화사 수륙재와 제126호인 서울 진관사 수륙재가 한창인 요즘이다. 간혹 ‘수륙’이라는 명칭으로 인해 수륙재를 강변이나 해변에서만 행해지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데, 이는 물가에 물고기를 풀어주는 ‘방생’ 등과 수륙재를 같은 것으로 보는 데서 오는 혼동이다. 

수륙재는 물이나 육지 상관없이 ‘외로운 영혼이나 배고픈 귀신에게 부처님의 가르침과 음식을 공양함으로써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천도의식’으로 간단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수륙재가 처음 설행된 때부터 현재까지 그 목적에 따라 계속해서 변모해온 과정 때문에 다양한 해석이 존재하기도 한다. 

수륙재는 505년 중국 양나라 무제에 의해 금산사에서 처음 시작됐다고 전해진다. 처음 설행할 때는 임금이 육도사생(六道四生)의 고통받는 뭇 영령을 구제하고자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현재 전해지는 수륙재 대본이 등장한 시기는 11세기 이후 송나라 때인데, 이 때 수륙재는 국가나 민간에서, 극락의 길로 안내하는 법회 중 하나로 전국적으로 행해졌다. 심지어 민간에서는 수륙재를 제사로 수용하기도 하고, 수륙재를 열지 않으면 중생을 제도하지 않아 자비가 없는 것으로 여겼다고 한다.

한국에서 ‘수륙재’라는 명칭으로 설행되기 시작한 것은 조선시대 이후로 볼 수 있다. 조선 태조 이성계는 개국과정에서 선왕선후의 명복을 빌기 위해 개성 관음굴, 동해 삼화사 등에서, 부역 과정에서 사망한 역부들의 혼령을 천도하기 위해 성문 밖에서 수륙재를 행했다. 1397년에는 진관사를 나라에서 수륙재를 거행하는 국행수륙재도량으로 지정하고 수륙재를 상설화했다. 이때부터 수륙재는 국행수륙재로써 역병을 물리치거나 질병을 치료하고자, 천재지변과 같은 재앙을 물리치고자 행해지며 다양한 목적으로 설행됐다. 현재 동해 삼화사, 서울 진관사가 그 명맥을 잇고 있다.

수륙재에 대해서 다양한 해석이 존재하지만 기본적으로는 물이나 뭍 장소 상관없이, 산 자와 죽은 자 구분 없이, 오는 이 막지 않고 음식을 베풀고 진리를 들려줘 깨달음에 이르게 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위로는 불도를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건지려는 대승불교의 정신이 담겨 있다는 점에선 이견이 없는 것이다.

[불교신문3239호/2016년10월1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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