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7차 강릉 등명낙가사 순례 (해당비구를 찾아서)

정동진 해당비구 만나

반야바라밀 닦고 배워 

‘길고 긴 삼매’에 들도록

늘 실천하는 삶 서원…

53기도도량 제7차 순례법회는 지난 9월9일부터 10일까지 정동진을 찾는 사람들이 찾아와서 새벽 예불을 올리는 강릉 등명낙가사에서 여법하게 봉행됐다. 순례는 늘 부처님 진신사리와 평화의 불 이운 및 분등부터 군 장병들을 위한 초코파이 보시 등에 이르기까지 자리이타의 실천행으로 진행된다. 

‘선묵혜자 스님과 마음으로 찾아가는 53기도도량’ 제7차 순례법회(9월9~10일)가 강원도 강릉시 괘방산 등명낙가사에서 여법하게 봉행되었다. 시나브로 가을이 오는 구월초순 이른 새벽, 회원들은 태백산맥의 한 줄기를 물려받아 동해의 푸른 물에 발을 담그고 있는 괘방산을 향해 전국 법등에서 일제히 출발하였다. 산과 산이 끝없이 이어지는 깊은 산중을 지나 푸른 동해바다로 달리는 동안, 태백을 이루는 숲과 나무들을 바라보면서 회원들의 마음은 끊임없이 설레었다. 

버스가 괘방산 중턱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10시쯤이었다. 등명낙가사는 그 이름처럼 강릉지방의 해수관음도량의 요채답게 동해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등명낙가사는 조계종 제4교구 월정사의 말사이다.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강릉도호부의 암실(暗室)의 등화(燈火)와 같은 위치에 있는데 절에서 공부하는 선비가 3경(三更)에 불을 밝히고 기도를 올리게 되면 과거시험에서 급제된다고 한데서 유래했다고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기록되어 있다. 또한 신라 선덕여왕 때 자장율사가 북쪽의 고구려와 동쪽의 왜구가 침범하여 변방을 어지럽히는 것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기 위해 이 괘방산에 부처님의 사리를 모시고 절을 창건했다는 설도 있다. 

창건 당시 사명(寺名)은 수다사(水多寺)였고, 신라 말기에는 불이 일어나 일부가 소실되기도 했다. 그 후 고려 초기, 다시 중창하여 등명사(燈明寺)로 개칭했다가 조선 중기에는 폐사지가 됐다. 하지만 6·25전쟁이 끝난 후 1956년 경덕(景德)스님이 1000일 관음기도 끝에 보타낙가산에 있는 관세음보살을 친견한 뒤, ‘낙가사’로 사명(寺名)을 정하고 옛 사찰명인 ‘등명(燈明)’을 앞에 붙여 ‘등명낙가사’라고 명명했다고 전해진다. 

오늘날은 정동진을 찾는 사람들이 찾아와서 새벽예불을 올리고 법당에서 내려와 일주문 앞에서 바다를 보며 아침 해를 맞는 곳이기도 하다. 또한 인간문화재인 유근형씨가 조성한 영산전의 청자 오백나한으로 인해 관광객의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회원들이 일주문 앞에 도착하자 등명낙가사 주지 청우스님과 대중들이 환한 미소로 우리 회원들을 맞아주었다. 우리는 부처님의 진신사리와 평화의 불을 모시고 천천히 경내로 향했다. 회원들도 합장하고 뒤를 따랐다. 이어 기도처를 잡고서 육법공양을 시작으로 천수경과 사경, 안심법문, 108참회기도를 끝난 뒤 선묵혜자스님의 법문이 이어졌다.

“오늘 우리는 <화엄경> ‘입법계품’의 일곱 번째 선지식인 해당비구를 친견한 뒤 그 가르침을 배우기 위해 등명낙가사에 ‘53기도도량’ 순례를 왔습니다. 등명낙가사하면 태백산 줄기 속에 있는 사찰로서 청자 오백나한이 가장 유명합니다. 오늘 우리가 만날 선지식인 해당비구는 다름 아닌 청자 오백나한일 수도 있습니다. 선지식은 멀리 있지도 않고 가까이 있지도 않으며 오고 감이 없습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는 오백나한님을 통해서 해당비구의 가르침을 배우게 될 것입니다. 

더구나 이번 10월에 ‘선묵혜자스님과 마음으로 찾아가는 108산사 순례기도회’는 꼭 10주년이 됩니다. 우리는 그동안 순례를 하면서 수많은 선지식과 한량없는 부처님들을 친견하여 왔으며 앞으로도 이 순례길은 계속될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들은 그 선지식들과 부처님을 통해서 배운 바를 바로 실천에 옮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불교는 바로 실천종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가고 있는 53기도도량 순례가 바로 그 실천의 길이 될 것입니다.”

선재동자가 해당비구에게서 얻은 경계는 바로 ‘보안사득(普眼捨得)’이다.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넓은 눈으로서 얻은 것을 버려라’이다.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일까? 부처님과 같은 넓은 혜안(慧眼)을 가진 사람은 자신이 가진 것조차 버린다는 뜻이다. 이것은 다름 아닌 ‘반야바라밀 경계의 청정한 광명’이라 할 수 있는데 즉 반야바라밀을 닦고 배워서 장엄하고 청정한 삼매에 들게 되면 ‘백만 아승지와 같은 길고 긴 삼매’를 얻게 된다는 뜻이다. 삼매란 결국 깨달음이며 해탈이다.

만약, 선재동자가 이와 같은 해당비구의 가르침을 배우게 되면 모든 세계를 아는 데 있어 조금의 장애가 없게 되고, 모든 부처님들의 신통하고 광대한 힘을 증득하는 데 있어서도 장애가 없게 되며, 또한 모든 부처님들의 공덕의 바다 속으로 들어가는데도 장애가 없게 되고, 대자대비로서 중생들을 섭수하는데 있어서도 장애가 없게 되며, 이로 인해 마음속에는 대자비심이 일어나서 이 사바세계를 충만하게 되고, 마침내는 부처님의 광대한 힘인 대비심을 증득하게 되고 그것으로 인해 영원한 마음의 행복을 얻게 된다는 가르침이다. 

다시 말해서 해당비구의 가르침은 ‘항상 부처님과 같은 넓고 깊은 혜안을 가지고 있되, 얻은 것조차 버리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바로 깨달음의 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가, 어리석은 중생들은 그저 자신만의 욕심만을 추구할 뿐 ‘얻은 것과 가진 것을 버린다’는 것은 참으로 실천하기 어려운 일이다. 이런 마음으로서는 그 어떤 복을 구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이와 같이 우리 회원들은 등명낙가사에서 해당비구의 가르침을 통해서 많은 것을 배웠으며 주지이신 청우스님의 주옥같은 법문과 음성공양도 듣는 행운을 얻기도 했다.

이날 법회 중에는 많은 행사가 이어졌는데 평화의 불 분등과 약사여래 보시, 국군장병을 위한 초코파이 보시, 포교상을 전달했으며, 행사가 끝난 후에는 등명낙가사 도량을 돌면서 기와불사와 농촌사랑 직거래 장터를 열었다. 

청우스님  등명낙가사 주지

[불교신문3241호/2016년10월19일자] 

선묵혜자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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