⑨ 고창 선운사 꽃무릇길

①선운사 대웅전 우측 요사채 입구 언덕에 흐드러지게 핀 꽃무릇 군락.

고창 선운사라고 하면 의례껏 동백꽃이 떠오른다. 서정주 시인의 고향이기도 한 고창의 선운사 동백꽃은 당대의 걸출한 시인의 시와 더불어 세상 사람들의 뇌리에 각인돼 있다. 선운사 뒤편의 거대한 동백 숲에서 뚝뚝 떨어지는 붉은 동백꽃은 ‘설운 선운산’으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동백꽃과 더불어 최근에는 ‘선운사 꽃무릇’이 명성을 높이고 있다. 9월 말부터 일주문에서부터 선운산 곳곳에 봇물처럼 피어오르는 꽃무릇의 향연은 말 그대로 장관이다. 사진작가들이 생산해 내는 명작품과 인터넷 SNS에 올라오는 꽃무릇의 향연은 뭇 사람들을 선운사로 발길을 재촉하게 한다.

처연한 슬픔 잉태한 ‘이별 꽃’

②대웅전 뒤편 동백숲에도 꽃무릇이 지천으로 피어 있다.

선운사 꽃무릇 사진전시회를 가진 전제우 작가의 작품집을 우연히 입수해 본 뒤 ‘꽃무릇 병’이 생겼다. 꼭 한번 선운사 꽃무릇을 보러 가야지 하는 작심을 한 지 몇 년이 지나도 그 원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이다.

올해 꽃무릇이 절정에 달했던 9월28일. 축제일이 4일 지난 뒤 선운사를 찾았다. 꽃무릇을 마지막으로 볼 수 있다는 선운사 스님의 귀띔이 시간을 만들어 냈다. 꽃무릇은 꽃과 잎이 만나지 못하는 슬픔을 잉태하고 있다. 동백꽃이 슬픔을 상징하듯 꽃무릇도 한껏 슬픔을 품고 있다. 9월 말 단풍이 오기 전에 피는 꽃무릇은 붉은 단풍이 지는 슬픔에 앞서 슬픔연습을 하라는 듯이 선운사의 또다른 슬픔을 잉태하며 지천에 피어난다.

꽃잎 사이로 수술이 길게 나와 하늘을 향해 뻗어 있는 모습이 붉은 빛 갈고리 같은 꽃무릇. ‘지옥의 꽃’ 또는 ‘죽은 이의 꽃’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꽃과 잎이 따로 피는 독특한 생태적 특성을 지녀 일반 사람들은 상사화로 착각하기도 한다. 9∼10월 경 꽃이 완전히 지고난 뒤 겨울을 보내고 이듬해 잎이 자라났다가 5월 경 완전히 말라버린다. 더운 여름 동안은 자취도 없이 지내다가 가을이 되면 매끈한 꽃대가 쑥 올라와 붉은 꽃을 피운다.

이러한 생태가 산 사람의 논리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 모습이 마치 현생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열반의 세계에 드는 것 같다 하여 ‘피안화(彼岸花)’라 불리기도 한다. 꽃이 피는 습성이 독신으로 생을 마치는 수도자와 같다고 하여 ‘중꽃’ 혹은 ‘중무릇’으로도 불렀다.

상사화와 유사한 전설 담겨 있어

③일주문 옆에도 듬성듬성 핀 꽃무릇.

비슷한 식물로 상사화(相思花)가 있다. 꽃무릇과는 색깔과 생김새가 다를 뿐 생태와 습성도 비슷하다. 하지만 상사화는 꽃무릇과 같이 잎이 서로 만나지 못하는데서 연유된 데서 ‘이루지 못하는 슬픈 사랑’의 의미를 담은 비슷한 내용의 설화가 구전되고 있다.

옛날 중국에 약초 캐는 사람이 조선 땅에 불로초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한반도 곳곳을 헤매다가 결국 죽게 되었다. 그는 딸에게 후대에라도 불로초를 구해야 한다는 유언을 남긴다. 아버지의 유언을 들은 아가씨는 불로초를 찾아나서게 되고 깊은 산중에 자리잡은 산사에 이른다. 그곳에서 수행에 전념하는 젊은 스님을 보고 한눈에 반해 버린다.

그 후 아가씨는 스님을 보기 위해 매일 절을 찾아 먼발치에서라도 스님의 모습을 보면서 기뻐했다. 어느 날 아가씨는 용기를 내어 스님에게 사랑을 고백했다. 하지만 수행에 전념하던 스님은 부처님 제자로서 아가씨의 사랑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거절하고 깊은 토굴로 들어가 버린다. 이 충격으로 아가씨는 시름시름 앓다가 죽고 만다. 세월이 흘러 스님도 세상에 나와 아가씨의 사연을 듣고 난 뒤 깊은 죄책감을 느끼다가 급기야 병을 얻어 죽고 만다. 몇 년 후 스님이 입적한 토굴 앞마당에서는 매년 봄마다 수행자의 기상처럼 푸른 잎이 올라와 시들어버린다. 이어 가을이 되면 아가씨의 예쁘고 수줍은 모습처럼 붉은 꽃이 올라와 피는데 푸른 잎과 붉은 꽃은 언제나 만나지 못했다.

푸른 잎은 붉은 꽃을 보지 못하고 붉은 꽃은 푸른 잎을 보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 전설에 나오는 젊은 수행자와 아리따운 아가씨 사이에서 ‘이루지 못할 사랑’의 비극을 보는 듯하다.

사찰에서 실용적인 용도로 사용 

④일주문 옆 정원에 꽃무릇이 대규모로 피어 장관을 이루고 있다.

꽃무릇이 절에 많이 심어져 자라는 실용적 이유도 있다. 뿌리에서 즙을 내어 물감에 풀어 탱화 또는 단청의 안료로 사용됐기 때문이다. 이 안료는 자연방부제 역할을 해서 좀이 슬지도 않고 색이 바래지도 않는다.

꽃무릇은 자원식물(資源植物)로도 이용됐다. 5월경 잎이 지고 난 뒤 알뿌리를 캐내어 갈아 전분을 채취하여 종이를 서로 붙이거나 책을 엮는데 필요한 강력 접착제로 이용하였다. 리코닌 성분의 살균력 때문에 이 풀로 붙인 한지는 수천 년이 지나도록 좀이 슬지 않을 정도다. 수천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우리나라의 인쇄문화는 불경출판이 그 효시였으니, 경전을 인쇄·제책하던 절에서 석산과 상사화를 많이 심었던 것은 당연하다. 지금도 이들이 많이 핀 곳은 영락없이 옛 절터이거나 집터였다.

9월 말 선운계곡 절정 이뤄

⑤ 계곡 곳곳에도 꽃무릇은 피어 있다.

이미 축제를 마친 선운사 꽃무릇은 마지막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다. 이미 곳곳에는 꽃이 져 꽃대가 스러져 있었지만 입구 너른 정원과 대웅전 우측 요사채 옆과 대웅전 뒤편 동백숲에서는 싱싱한 붉은 꽃대가 장관을 연출하고 있었다. 이곳을 지나던 스님은 “이제 꽃이 질 때가 된 것 같아”라고 말풍선을 터트렸지만 꽃무릇을 찍는 사진작가들은 흐드러진 꽃의 향연을 렌즈에 담느라 여념이 없었다.

“피는 모습도 아름답지만 지는 모습도 아름답지요.” 이미 진 꽃과 피어 있는 꽃들을 찍던 사진작가의 철학 섞인 말 한마디가 법거량처럼 들린다. 피어남이 있으면 지는 것도 당연한 인연법임을 사진작가도 깨달은 것일까. 선운사를 나오는 내내 진 꽃무릇이 내년에 다시 피어날 것이라고 항변하고 있는 듯하다. ‘꽃잎이 진다고 꽃이 진 것은 아니다’라고 노래한 어느 시인의 글귀가 떠오른다.

TIP  걷기 안내

선운사 꽃무릇을 보려면 매년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9월 말 즈음 찾아가면 된다. 선운사 입구부터 선운산 전역에 붉게 핀다. 특히 일주문을 지나 양측 정원에는 꽃무릇만 지천을 이뤄 장관을 연출한다. 이어 선운계곡 곳곳에 꽃무릇이 피어난다.

꽃무릇은 짧은 시간에 피어난 뒤 지기 때문에 절정의 꽃을 볼 수 있는 시기는 일주일 정도다. 선운사 꽃무릇은 선운산을 타고 올라가기도 한다. 위쪽에 위치한 지장도량 도솔암에도 지천을 이루고 참당암 등 인근 암자에도 꽃무릇은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2시간여의 충분한 시간을 갖고 꽃무릇을 감상하려면 선운사 입구에서부터 선운사를 거쳐 도솔암과 참당암을 들르는 코스를 선택하면 좋다. 그 외 짧은 시간에 꽃무릇을 감상하려면 선운사 일주문 옆 정원을 충분히 감상한 뒤 선운사 대웅전 뒤편과 대웅전 우측 요사채 언덕 등에 핀 꽃을 보고 나오는 코스를 택하면 된다. 

[불교신문3242호/2016년10월2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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