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화선대법회 / 동화사 금당선원 유나 지환스님

조계종 전국선원수좌회가 주최하는 간화선 대법회가 팔공총림 동화사에서 계속되고 있다. 오늘(10월19일)은 동화사 금당선원 유나 지환스님<사진>이 법문했다. 1967년 광덕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지환스님은 해인사 백양사 운문암 범어사 쌍계사 등에서 정진했다. 2002년부터 12년간 조계종 기본선원장 소임을 맡았다. 스님은 법문에서 “부처로 살겠다는 치열한 발심으로 간절하고 꾸준하게 화두를 들면 삶이 변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법문을 요약 정리했다.

(죽비를 들어 보이면서) 볼 때 볼 뿐이면 되고, (죽비를 치면서) 들을 때 들을 뿐이면 됩니다. 마치 거울이 시커먼 흙덩어리라고 싫어하거나 빛나는 금덩어리라고 더 좋아하지 않고 그냥 비춰주듯이, 이 거울 같은 마음으로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마음작용이 그렇게 진무심(眞無心) 진공심(眞空心)의 묘용(妙用)이 되면 해탈열반의 삶이 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마음에 의해 보여지고 들려지고 느껴지고 알려지는 느낌 생각 감정 인식 등은 내 마음이 아닙니다. 그것들이 내 마음이 아님을 직시하면 그것들에 지배당하지 않게 되고 텅빈 고요한 상태가 나타납니다. 이것도 아직은 텅 빈 참마음 진공심은 아닙니다. 느낌 생각 감정 인식이 내가 아님을 알아차리면서 화두를 참구해 깨치면 진공심이 드러납니다.

우리 중생들은 자기가 알고 있는 이 몸과 마음을 ‘나’라고 착각하여 집착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탐욕과 분노에 의한 번뇌가 일어나서 끝내 삶이 괴로워집니다. 중생은 이와 같이 잘못된 방식으로 살기 때문에 수많은 괴로움을 느낍니다. 그러면서도 즐거운 행복을 추구하며 이런저런 활동을 합니다. 때로는 즐거움과 행복감을 느끼지만 그 행복감은 곧 사라지고 맙니다.

더구나 자기가 바라는 욕망이 충족되는 데에 만족하지 않고 끝없이 더 큰 것, 더 좋은 것, 더 많은 것을 얻으려고 합니다. 이러한 ‘거짓 행복’은 일시적일 뿐만 아니라 괴로움이 동반되어 괴로움이 해결되지 않습니다. 참다운 행복은 밖으로 구하는 욕망이 충족되는 데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참마음의 내용 즉 진리대로 사는 데서 오는 행복입니다.

우리가 마음이 욕심에 얽매이고 집착에 얽매이고 무엇인가에 얽매일 때 행복하던가요? 아니면 마음이 맑고 그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울 때 행복하던가요? 참다운 행복은 참마음의 내용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참다운 행복은 지금 여기에 영원하다는 것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참다운 행복은 ‘지금, 여기’ 참마음의 속성을 있기 때문에 수행이라는 인연을 통해서 행복한 삶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참다운 행복의 삶을 열려면 참선 수행을 해야 합니다.

보리자성(菩提自性)이 본자청정(本自淸淨)하니 단용차심(但用此心)하면 직료성불(直了成佛)하리라. 이 말씀은 그 유명한 육조 혜능스님의 법문입니다. 보리자성은 깨달음의 성품, 참마음자리를 말합니다. 모든 번뇌망상과 자아의식이 텅 빈 그러한 성품자리를 뜻합니다. 참마음으로 살게 되면 곧바로 깨달음의 삶, 부처의 삶, 자유자재한 해탈열반의 삶을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부처를 원리적으로는 이해를 하고 내가 본래 부처임을 믿는다 해도 부처 그 자체를 솔직히 모르는 입장이기 때문에 부처에 대한 믿음에 걸맞게 ‘부처란 도대체 무엇인가’하고 간절하게 물어야 합니다. 도는 무엇이냐는 질문에 중국 당나라 운문 선사는 ‘간시궐(똥 막대기)’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기상천외의 초논리적인 답변은 화두가 되어 질문한 사람의 머리를꽉 막히게 합니다. ‘어째서 부처를 간시궐이라 했을까’ ‘어째서? 어째서?’ 이 철저한 믿음과 의심 사이에서 생기는 내적 갈등이 극대화되어 적적성성(寂寂惺惺)하게 의단(疑端)이 계속 이어지다가 어느 순간 극점에서 폭발해 확철대오하게 되는 것입니다.

만약 평소의 삶이 탐욕스럽고 집착하고 원망과 분노 등으로 얼룩져 아무렇게나 살면서 화두만 들면 된다는 식으로 하면 참선수행이 안 됩니다. 올바른 참선수행이 되기 위해서는 무아 공 연기의 이치를 잘 알아 일상의 삶에서 자아를 비우고 놓아버려 자비심과 소욕지족(所欲知足)의 마음 씀씀이를 잘 해야 합니다.

참선수행의 최우선 조건인 발심(發心)입니다. ‘본래 부처인데 왜 현실에서 나는 부처의 삶을 살지 못하는가’ 하는 뼈저린 자각이 필요합니다. ‘내가 이렇게 살아서 되겠는가. 때로는 행복하지만 조그만 일에 매달려가며 힘들고 고달프게 살아서야 되겠는가’라는 진지한 참회가 깨달음의 길로 이끕니다. 발심이 크게 되어야만 제대로 된 참선공부를 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참선은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간절하게 해야 합니다. 반산 선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참선을 하는 데 있어서는 ‘간절함’이라는 한 마디가 가장 요긴하다. 간절함을 무엇보다도 힘이 있는 말이니, 간절하지 않으면 게으름이 생긴다. 게으름이 생기게 되면 편한 곳으로 내쳐 마음대로 놀게 되며 못할 짓이 없게 된다. 만일 공부에 마음이 간절하면 방일할 겨를이 있겠는가. 간절하다는 이 한 마디만 알면 옛 스님들의 경지에 이르지 못한다고 근심할 필요도 없고, 생사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고 근심하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또 중요한 것이 참선공부는 꾸준하게 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참선이 신통치 않은 이유 가운데 하나가 꾸준히 하지 않는 데에 있습니다. 위산 선사께서는 “만약 누구든지 능히 참선법을 수행하되 3번의 생 동안 물러나지 않겠다고 굳게 맹세하면 반드시 부처자리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올바른 깨달음을 수행의 목표로 세우고 나서는 그 목표를 향해 간절하고 용맹스럽게 정진해야 합니다.

깨달음을 기다리거나 바라지 않아도 화두참구를 진실하고 간절하게 해서 깨닫게 되는 인연이 무르익으면 저절로 깨닫게 됩니다. 설령 참선공부를 해서 깨치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 사람의 앞길은 보장됩니다. 바른 지혜를 얻어 인생이 성공적으로 변화합니다. 간화선을 창시한 대혜종고 선사의 말씀입니다. “진실로 한 생각 생각마다 첫 마음에서 물러나지 않고 세상살이의 온갖 번뇌에 반연하는 자기의 심식을 잡아 돌이켜서 반야 위에 두면 이번 생에는 비록 깨닫지 못하더라도 이번 생을 마칠 때 절대로 악업에 끌려 악도에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격려입니다.

나의 본래면목 참마음이 그렇게 맑고 그렇게 밝고 그렇게 너그럽고 그렇게 자비롭고 그렇게 지혜롭고 그렇게 큰 위신력인 까닭에 그것을 막고 있는 망념들을 털어버리면 참마음에 있는 그러한 내용들이 그렇게 나와서 그렇게 사는 것입니다. 재차 강조하건대 거짓 행복에 속지 마시고 소욕지족의 자세로 마음을 적절하게 다스리며, 남은 시간과 힘을 참다운 행복에 다가가는 수행에 진력하시기 바랍니다.

만리무운(萬里無雲) 만리천(萬里天)

구름이 흩어지니 푸른 하늘이 나타나고

무한청풍(無限淸風) 진대지(盡大地)

한없이 맑고 시원한 바람이 온 대지에 가득하더라.

 

다음은 참석한 불자와 지환스님 간의 즉문즉설.

문 : 전삼삼(前三三) 후삼삼(後三三) 화두는 무슨 뜻입니까?

답 : 난 그런 것 몰라요. (이게 스님의 답입니다. 사회자)

문 : 참선을 하다보면 신통(神通)을 얻을 수 있는데, 선사들이 신통을 무시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답 : 신통은 악마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탐욕으로 발전할 위험이 있어요. 그러니 반드시 선행돼야 할 것은 참다운 지혜, 반야입니다.

문 : 임제스님이 스승인 황벽스님의 뺨을 때린 이유는 무엇입니까?

답 : 이리 와 봐요. 내가 뺨 한번 때려줄께.(좌중 웃음)

문 : 대선사는 고기나 오신채로부터 무애(無碍)할 수 있지 않나요?

답 : 몸이 맑아야 마음이 맑은 법입니다. 고기엔 도살당한 소와 돼지의 고통과 원한이 가득합니다.

문 : 남편이 사람은 참 좋은데 술을 너무 마셔서 걱정입니다. 어떻게 하면 술을 끊게 할 수 있을까요?

답 : 잔소리는 아무런 도움이 못 됩니다. 간절하게 화두를 들듯, 정성을 다해 남편을 위하고 아껴주세요. 그리고 기다리세요. 사람의 마음은 오직 감동으로써만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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