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시장 안쪽에 선짓국집이 있다. 할배는 이 집 단골손님이다. 주인 할매가 잊을 만 할 때면 할배가 이 집에 온다. 할매는 할배를 다른 손님과 다르게 대한다. 할배·할매라서 서로 늙은이니까 그렇게 보는 게 아니다. 

어느날 들려준 할배의 이야기가 할매에게 잊혀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 할배는 언제나 혼자 이 집에 왔다. 선짓국 한 그릇에 막걸리 한 사발을 시켜 먹고 갔다. 올 때마다 그랬다. 친구와 같이 오는 때도 없고 언제나 혼자 오는 할배를, 할매는 지켜보다가 어느 날 할배에게 물었다. “할배요, 할배는 친구도 없는기요? 와 늘 혼자 오능교.” 할배가 말했다. “나는 이 집에 올 때는 내 혼자 와요. 그래야 맘이 편해요.” “그기 무슨 말인교?” “아, 나는 여게 와서 울 엄마 만나요.” 무슨 소리인지 몰라 뚱하니 쳐다보는 주인 할매에게 할배가 “내 말 들어볼라요”하면서 꺼낸 사연이다.

할배의 어릴 적 얘기라 했다. 할배는 이 시장에서 좀 떨어져 있는 기차역 앞 동네에 살았다. 국민학교 다닐 때라 했다. 할배의 엄마가 많이 아팠단다. 육남매 중 할배가 둘째인데 할배 아래로 동생이 넷이었단다. 그런데 엄마가 아팠으니 걱정이 컸다. 동네 어머니들도 “아이, 저 집 애엄마 우짜노. 저라다가 못 일어나모 어린 자식들은 우째 살라꼬”하며 모두 걱정이었단다. 

할배 엄마의 병은 홧병이라 했다. 의사는 약으로 다스리기 어려운 병이니, 몸 보신이나 잘 하면서 견뎌보라 하더란다. 

할배는 엄마 몸보신에 좋다고 선짓국을 사러 이 시장에 왔다갔다 했단다. 작은 냄비 하나 들고 어린 나이에 시장통 선짓국집을 드나들었다. 6·25 한국전쟁이 휴전에 접어든 50년대 중반, 모두들 가난에 찌든 삶을 살 때였다. 쇠고기국은 명절이나 제사 때 아니면 먹기 힘든 그런 시절이었다. 그러니 선짓국을 보약이라 여겼던거다.

할배는 그 당시를 생각하며 가끔 이 집에 혼자 와서 그렇게 앉았다 가는 거라 했다. 어머니를 생각하면서. 할매가 물었다. “그래, 그 할배 엄마는 우찌 됐는교?” 할배의 말은 이러했다. “그래도 80세 넘게 살다 가셨지요. 할매, 다음에는 친구들과 같이 오께요.” 

[불교신문3268호/2017년1월25일자] 

이진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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