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에게 행복과 기쁨 전하는 나눔도량

베풂을 강조하고 있는 불광사가 지난 9일 초읍동 어린이대공원에서 200여 명에게 무료점심공양을 제공했다.

30년 전, 한 스님의 눈에 근심걱정 내려놓을 곳 없어 답답해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들이 잠시라도 기댈 수 있는 부처님의 쉼터를 만들고자 했던 창건주 지준스님의 원력으로 불광사는 시작됐다. 부산시 부산진구 초읍동, 백양산 끝자락에 자리한 불광사는 굽이굽이 산길을 올라야 만날 수 있는 사찰이다. 작은 도량이지만 나무들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부처님 품인 듯 아늑하다. 맑은 공기와 시원한 바람이 어우러져 한적한 여유로움을 만드는 불광사(주지 보광스님)를 찾았다.

30년 전 시민 휴식처로 창건해

급식과 간식 지원, 풍물공연 등

‘봉사는 곧 수행이자 포교’실천

불교 기반한 문화축제도 추진중

 

라오스 학교 건립 후 후원 지속

‘10보1배’ 등 수행 기도도 열심

소박했던 시작처럼 불광사에는 일주문이 없다. 지나가는 시민 누구나 들어와 기도하고 잠시 쉬어 가는 곳이다. 도량에 들어서면 소담한 연못이 객을 맞는다. 대웅전과 용왕당, 산신각, 요사채로 이뤄진 작은 사찰이 정다운 느낌을 준다. 창건 이후로 유지보수만 했다는 주지 보광스님의 말처럼 도량 곳곳에 예스러움이 가득하다.

불광사와 보광스님의 인연은 14년 전 어느 봄날이다. 설악산 봉정암에서 수행하던 보광스님은 은사 스님의 부탁으로 주지 소임을 맡았다. 평생 수행자로 살고 싶었던 스님이지만 이 또한 부처님의 인연인가 싶어 마음을 내려놓았다고.

열정 넘치는 젊은 스님은 이루고 싶은 일이 많았다. 작은 도량을 키우고 싶었고 다양한 포교 활동을 해보고 싶었다. 그러나 스님의 눈에 낮은 곳에 웅크리고 있는 사람들이 먼저 보였다. 그 후 모든 것을 내려놓고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몸으로 짓는 공덕, 봉사에 나섰다.

불광사는 초읍 어린이대공원 내에서 독거노인 등을 위한 무료 급식을 실시하고 있다. 30여 명의 신도들이 동참해 매월 둘째, 넷째주 목요일마다 200~300명에게 나눔을 전한다. 또한 신도들은 자신이나 가족들의 생일날이면 부처님 전에 떡을 올리는 대신 쌀 10kg을 보시한다. 매달 생일쌀 150kg을 모아 지역 내 독거노인, 소년소녀가장, 장애인, 한부모가정 등에 전달한다. 동사무소에서 정해주는 곳이 아닌 사각지대에 놓인 곳, 절실한 이들을 신도들이 직접 찾아 나선다. 이처럼 생일맞이 보시쌀로 자비를 실천하고 있지만 부족할 경우에는 자체적으로 보시금을 모아 소외이웃에게 쌀을 회향하고 있다.

또한 보광스님과 염불공덕회 회원 5명은 형편이 넉넉지 못해 49재를 모시기 어렵거나 혹은 소외된 이웃들 중 갑작스레 세상을 떠날 경우 장례식장을 찾아 고인의 명복을 빌어준다. 회원들은 <금강경>을 독송하고, 스님은 입관까지 참여해 고인의 넋은 물론 유족들에게 위로를 전한다. 생과 사를 뛰어넘는 불교의 가르침으로 유족들이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게 돕는다.

불광사의 봉사활동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거동이 불편해 무료급식을 받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수자타 봉사단’이 직접 찾아 나서고 있다. 작은 트럭을 개조해 간식을 싣고 한 달에 두 번, 경로당, 복지원 등지로 자비심을 담아 나눈다. 수자타 봉사단이 간식을 나눌 때 불광사 풍물패 불라다의 공연도 함께 펼쳐진다. 사물놀이와 난타 등 다채로운 볼거리로 즐거움도 선사하고 있다.

불광사 봉사활동의 가장 큰 지침은 ‘원하는 대로’다. 신도들이 행복한 얼굴로 동참하는 것이야말로 부처님의 자비를 진정으로 실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불광사에서 봉사하면 행복해져 고맙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고. 살아가며 내가 누군가에게 행복의 이유가 되는 일이 몇 번이나 있을까. 감사하다며 잡는 손의 온기에, 안겨오는 순수한 눈망울에 마음이 금세 따뜻해진다. 불광사 신도들은 봉사를 통해 얻는 기쁨 덕분에 가진 것 없어도 행복하다고 말한다.

불광사의 자비행은 국외에서도 이어진다. 국내에서 헌옷을 모아 매년 동남아 여러 국가로 보낸다. 매년 신도와 자원봉사자를 모아 학용품 전달과 건물 보수, 우물 사업에도 나선다. 동남아 여러 국가를 후원하지만 그 중 라오스에 가장 많은 마음을 쏟고 있다. 보광스님은 우연히 거사림회 신도의 권유로 방문한 라오스에서 아이들의 맑은 얼굴 뒤에 자리 잡은 어두운 현실을 보았다.

라오스 방비엥에서 50km 떨어진 시골마을, 배움조차 제대로 행해지지 못하는 곳에서 아이들은 농장으로 가거나 매춘 등으로 내몰렸다. 그럼에도 그늘 없는 순수한 눈동자를 보며 스님과 신도들은 이들에게 희망을 전하기로 다짐했다.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교육을 위한 학교였다. 언젠가 자비의 손길이 이곳에도 전달되길 바라며 학교 터까지 닦아 놓았다. 결심은 곧 실천으로 옮겨져 기부금을 모연했다. 2012년 ‘라오의 산들바람’을 조직해 북카페를 운영하고 수익금은 학교 건립으로 모았다. 이렇게 모인 기부금으로 2014년 반티온 초등학교 공사에 들어갔다.

그 해 6월, 135명의 학생을 수용할 수 있는 6칸 규모의 현대식 학교가 들어섰다. 워드 교육을 위해 컴퓨터를 설치하고 수도를 새로 마련하는 등 복지를 위해 힘썼다. 단순히 학교 건립에서 끝나지 않고 지속적으로 후원하기 위해 라오의 산들바람 후원자를 모집했다. 라오스 불자회 수첩을 발급해 1대 1결연을 맺어 주었고 아이의 사진과 인적사항을 적어 주었다. 후원자에게 꾸준히 성장과정을 보여주며 아이들의 삶을 바꿔준다는 의식을 갖게 해주었다. “왜 국내도 아닌 라오스를 돕느냐고 묻는 사람이 많았어요. 그러나 내 마음이 향하는 길이기에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신발을 사줘도 아까워 안고 다니고 과자를 줘도 내 몫만 챙기고 돌려주는 모습을 보면 순수한 마음에 눈물이 나곤 하죠.” 이처럼 다양한 봉사활동에 대해 보광스님은 봉사는 곧 수행이자 포교라고 전했다. 적극적인 자비행이 더 많은 이들에게 불교를 전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불광사의 대표수행법으로 자리매김한 10보1배 모습.

또한 스님은 봉사뿐 아니라 기도·수행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스님의 10보1배 수행은 이미 유명하다. TV에서 우연히 차마고도 3보1배를 보고 큰 충격을 받고 수행자로서 부끄러움을 느꼈다. 그간 수행자로 살겠다는 발원이 퇴색된 것은 아닌지 시험해보고 싶었다.

2007년, 재가자 3명과 <천수경>에 나오는 십악참회를 마음에 새기며 백담사에서 봉정암까지 10보1배를 진행했다. 발걸음을 옮기며 지난날의 과오를 참회하고 씻어내길 수시간, 마침내 오른 봉정암에서 그렇게도 눈물을 쏟았다.

이후 스님은 불광사를 출발해 통일전망대 통일대불 앞까지 64일간 807km에 이르는 거리를 10보1배로 순례하는 등 참가자를 모집해 여러 차례 10보1배를 했다. 우리가 사는 모든 곳에 부처님은 나투시니 길을 법당으로 여기고 수행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10보1배 자체가 포교이자 공부요, 불자로서 큰 행이라고 강조했다.

늘어가는 동참자 속엔 초등학생부터 70대 노보살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했다. 이렇게 순례에 참여했던 불자들은 큰 고난이 와도 10보1배 순례를 떠올리며 용기를 얻는다고 한다. 절은 복을 비는 곳이 아닌 지으러 가는 곳이다.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었다면 나는 행복을 얻게 된다. 진정 행복해지고 싶다면 누군가의 기쁨이 되어보는 것은 어떨까.

불광사 전경.

 

■ 불광사 주지 보광스님 인터뷰

“베풂으로 불교 자부심 갖게 할 터”

불광사 주지 보광스님

불광사 주지 보광스님은 널리 부처님 법을 전하라고 지어준 법명 보광(普光)처럼 가르침을 전하기 위해 애써왔다. 지나온 세월을 묻는 질문에 쑥스러워하며 수줍게 웃는 스님이지만 그 미소 속에 담긴 나날이 어찌 가벼우랴. “후회 없는 삶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남은 삶은 지금처럼 낮은 곳을 바라보며 봉사로 회향하고 싶어요. 세상에 온기를 기다리는 사람이 많습니다.”

스님은 불교의 근본 가르침은 자비이기에 베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베풂으로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불교가 돼야 한다는 생각을 전했다. 하지만 점점 수가 줄어가는 불자들이 안타까웠고 절에 오기 싫어하는 아이들을 보며 새로운 목표를 잡았다. 

불교를 기초로 한 문화축제를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을 밝혔다. 실천은 어렵지만 누군가는 꼭 해야 할 일이라며 청년 불자 양성이라는 새로운 목표를 정했다. “스스로 발심해 출가한 것이 아니었기에 반항도 많이 했었죠. 젊었을 땐 성격이 불같아 상대방 마음에 상처도 많이 줬습니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는 제 손을 잡고 스님은 부처님의 선물이라며 중생을 구제해 달라고 용기를 주었습니다. 마음 속 깊은 곳에 새겨진 말이에요. 어머니의 뜻을 이어 세상에 불법을 전하기 위해 늘 그렇듯 노력할 겁니다. 이 자리에서요.”

환하게 웃는 스님의 얼굴엔 행복이 그려졌다. 스님뿐 아니라 불광사 신도들의 얼굴엔 언제나 행복이 어려 있다. 무엇이 그들을 그토록 행복하게 할까. 스님은 말한다. 불광사와 맺은 수많은 인연을 떠올리면 행복하다고. 쌀 한 톨에도 마음을 담는 신도들, 따뜻한 밥 한 끼에 웃음 짓는 어르신들, 순수한 눈망울의 라오스 아이들. 우리가 때론 시시하다고 넘겨버리는 삶의 사소한 그 순간에도 감사함을 느끼는 불광사 식구들이 있기에 스님은 나아갈 힘을 얻는다.

[불교신문3273호/2017년2월1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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