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배들이 국가예산을 

들여다보면서 허술한 곳을 

노렸다는 것은 예산 시스템과 

이를 감시 감독하는 감사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이다

감사원이 이번 사태에 

당위적 역할을 다했는지 

반성과 함께 불순한 자들이 

국가예산에 눈독을 들이는 일이 

없도록 ‘감시자(Watch Dog)’ 

기능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한다

“당나귀의 일도 끝나지 않았는데 말의 일이 다가왔다(驢事未去 馬事到來).” 이는 경허선사가 타파한 화두로 널리 알려져 있는 대표적인 공안 가운데 하나다. 대통령은 탄핵돼 청와대에서 사저로 진실 운운하면서 들어갔다. 정치는 최선이 아니고 그중 나은 선택이라 하지만 여하튼 4년 전의 잘못된 결정으로 국정이 마비되고 국론은 분열돼 화합은커녕 봉합조차 어려운 상황에서 또 다시 쫓기듯한 일정으로 새로운 대통령을 선택하게 됐다. 이제는 촛불도, 태극기도 내려놓고 두 개의 갈대단이 포개져야 설 수 있듯이 보수든 진보든 서로 기대어 국가의 미래와 국민을 생각할 때이다.

우리가 처한 국제환경도 너무 걱정만 앞세우지 말고 항상 그래왔듯이 위기에 강해지는 강인한 근기를 보여야 할 것이다. 근린국가에 대한 중국의 치졸하고 무도한 행태가 어제 오늘의 일이던가. 고조선을 비롯한 반만년 우리 역사에 얼마나 많은 고통과 치욕을 주었는가. 품격과 절도 없이 일어난 대국굴기(大國起). 고구려처럼 자강의 힘으로 응징할 수밖에 없지 않는가. 공상(共商), 공건(共建), 공향(共享)의 일대일로(一帶一路) 그 허언에 속지 말아야 한다.

미국 역시 냉혹한 국제관계의 틀 속에서 접근하고 대처해야 한다. 아픈 역사는 잊지 않아야 되풀이 되지 않는 것이다. 20세기 초 서세동점의 시기에 우리의 국권을 잃는 일련의 상황 가운데 미일간의 가쓰라 - 태프트 밀약이 있다는 점도 항상 유의할 대목이다.

2012년의 선택을 부끄럽게 만든 이른바 최순실의 국정농단 사태가 헌재의 탄핵과 특검을 거치면서 끝나지는 않았지만 사법적 재단은 어느 정도 줄기를 잡은 듯하다. 그러나 그에 따른 행정적 책임규명과 제도개선을 통한 재발방지와 학습효과를 짚어보는 일은 더 중요하다. 헌재의 결정문에서도 밝히고 있듯이 오랜 기간에 걸친 헌법과 법률위반 행태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대통령에 대한 탄핵은 동시에 탄핵사유와 관련해 대통령을 보좌하는 국가기관을 책임지고 있는 자들에 대한 문책인 것이다. 적어도 문체부, 외교부, 교육부 등 직접 관련 부처는 물론이고 공직기강과 직무감찰 그리고 공직비리에 대한 정보 수집 관리를 책임지고 있는 국가기관들이 눈을 감았거나 능력이 부족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이 정부의 인사들은 깊은 고뇌와 절제된 행동이 요구된다.

더욱이 모리배들이 국가예산을 들여다보면서 허술한 곳을 노렸다는 것은 예산 시스템과 이를 감시 감독하는 감사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이다. 2017 회계연도의 국가지출예산은 400조5000억원이고 조세로 414조3000억원을 거두어 들여야 한다. 온 나라가 촛불과 태극기에 휩싸여 있는 동안 제대로 된 심의도 없이 최순실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예산조차 그대로 통과됐다. 국회의 예산심의가 부득이 정치적 타협이나 고려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한다면 이제 각 부처의 예산집행과 결산을 철저히 감시 감독하는 감사기능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직무상 독립성을 보장받는 감사원이 이번 사태에 당위적 역할을 다했는지 반성과 함께 불순한 자들이 국가예산에 눈독을 들이는 일이 없도록 ‘감시자(Watch Dog)’ 기능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한다.

정치적 상황이나 정권의 변동에 눈치 보지 말고 오로지 국고의 지출과 국가 자산의 관리에 있어서만은 한 치의 빈틈도 없게 지킴이 역할을 다하는 것이 감사원의 존재가치이며 국민을 안심시키는 일이다.

[불교신문3284호/2017년3월25일자]

하복동 논설위원·동국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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