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화실에서 법을 청하다] 원로의원 월탄스님

 

지난 4월17일 단양 미륵대흥선사에서 만난 월탄스님. 우렁찬 목소리와 반짝이는 눈빛은 경허-만공-금오스님의 가풍을 잇는 대선사다웠다.

월탄(月誕)스님은 올해 우리 나이로 여든 둘이다. 스님은 “나이가 드니 다리든 허리든 머리든 온몸이 데모를 한다”며 웃었다. “살 만큼 살았지 않느냐. 이제 그만 몸을 내려놓으라며 아우성을 치는 거예요. 그래도 마지막 할 일이 남았으니 조금만 참으라고 다독이는 게 요즘 일상입니다.” 당신이 세운 최후의 원력은 현재 당신이 주석하고 있는 미륵대흥선사의 불사를 완성하는 것이다. 신라시대 명찰이었던 대흥사를 복원하고 있다. 단양 황정산 자락에 위치한 절은 미륵불의 재림을 꿈꾸는 절이다. 기암괴석이 둘러쳐진 상서로운 공간은 불교의 대표적인 구세주가 내려앉기에 알맞다.

미륵(彌勒)은 위대한 부처님이지만 위험한 부처님이기도 하다. 예나 지금이나 크게 사기를 치려는 자들은 미륵을 참칭해 백성들을 꾀고 그들의 눈물겨운 살림을 빼앗았다. 물론 월탄스님의 바람은 기복신앙과는 거리가 멀다. 지금 내 마음이 바르고 청정하면 내가 있는 곳이 바로 극락이라는 진실을 중생에게 일깨우기 위한 열정이고 수고다. 스님은 그래서 이렇게 말한다. “미륵불이 56억7000만년 후에라야 온다고들 하죠? 아닙니다. 내 마음이 오욕(五慾)에 휘둘리지 않고 육진(六塵)에 오염되지 않고 7무명(無明)에 현혹되지 않으면 내가 바로 미륵이고 내가 처한 곳이 미륵불이 다스린다는 용화세계(龍華世界)입니다.” 스님의 법호는 미룡(彌龍). 스스로 미륵이 되어 사바세계를 용화세계로 장엄하겠다는 꿈이 압인되어 있는 이름이다.

용화세계에서 살려면 십선(十善)을 행해야 한다. 십악(十惡)을 행하지 않는 것이 바로 십선이다. 남의 목숨을 해치는 살생(殺生), 남의 소유를 빼앗는 투도(偸盜), 남의 여자를 범하는 사음(邪淫), 거짓말하는 망어(妄語), 꾸며서 말하는 기어(綺語), 모질게 말하는 악구(惡口), 이간질하는 양설(兩舌)에다가 탐욕(貪慾), 진에(瞋恚, 분노), 치심(癡心, 어리석음). 몸과 입과 마음으로 짓는 여러 죄악들이자 나 혼자 살겠다고 생명 전체의 질서를 깨뜨리는 패륜이다. 스님은 “보살행을 하지 않으면 깨달을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힘들다고 포기하고 성격이 맞지 않는다고 누군가를 멀리하면 그건 부처님 제자가 아닙니다. ‘그 어떤 역경계(逆境界)에 처해서도 다 나를 공부시키려는 보살들이구나’ 달갑게 받아들이는 마음을 갖는 게 공부의 기본이에요.”

스님의 목소리는 우렁차다. 몇 마디만 나눠도 대선사(大禪師)다운 풍모에 빠져들 수 있다. 알다시피 불교정화운동 당시 활약한 6비구 가운데 1인이다. 1960년 11월 정화의 정당성을 부르짖으며 할복을 감행해 역사의 전면에 섰다. 명분을 위해 사리를 버리는 위법망구(爲法忘軀)를 실천할 수 있었던 데에는 은사인 금오스님의 가르침이 컸다. “학창 시절 지리산 화엄사에서 공부를 했습니다. 당대의 큰 선지식인 금오스님이 법상에 올랐습니다. 대뜸 첫 마디가 ‘세상 놈들은 모두 산송장이다!’라는 일갈이었지요. 100년도 못 사는 이 몸뚱이가 ‘나’라고 착각해선 평생 죽을 날 받아놓고 사는 한심한 존재를 벗어날 수 없다는 경책이었습니다.” 60년이 흘렀어도 여전히 잊을 수 없는 사자후다. 비루한 육체성을 초월하는 것이 참선 수행의 기본이란 게 월탄스님의 지론이다. 당신은 여든이 넘어서까지 컨테이너박스에서 숙식하면서 대중과 함께 용맹정진을 하고 있다.

미륵대흥선사 중창 원력

지금 내 마음이 청정하면

여기가 바로 용화세계

 

수행자의 첫 덕목은 ‘진솔함’

제 건강과 잇속 챙기면서

화두 든다는 건 ‘어불성설’

 

부처님의 마음을 가진 사람

국민을 위해 죽어줄 사람만

대통령에 오를 자격 있어

 

무엇보다 비구의 최대 덕목은 ‘진실성’이다. “깨달아야겠다, 깨달아야겠다 말들은 많습니다. 하지만 출가수행자가 건강이나 챙기고 돈이나 밝히면서 오욕에 몸을 판다면, 과연 깨달음이 가능하겠습니까? 육체는 우리의 영원한 원수입니다. 아무리 잘 먹이고 잘 입히고 잘 재워도 만족할 줄 모릅니다. 몸뚱이의 한계와 질곡을 벗어나야만 우리는 진정한 자기 자신을 볼 수 있습니다.” 대흥사에선 안거 기간 중 보름마다 한 번 씩 스스로의 지난 허물을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는 자자(自恣)와 포살(布薩)의 전통을 고수하고 있다. 스님은 강인하면서도 어질다.

직접 소참법문도 한다. 채근하고 윽박지르는 것이 아니라 솔직하게 말하고 겸허히 듣는 자리다. 스님은 “늙은 중으로서 얻은 작은 경험을 전해주려는 것뿐”이라고 낮췄다. 15명이 최대 수용인원이지만 45명이 몰려와 방부를 들일 만큼 인기가 좋은 이유다. 어려운 여건에도 기어이 불사를 계속하고 선방을 운영하는 까닭은 오직 한 가지다. “2000명 수좌들 가운데 한 사람이라도 더 눈 밝은 도인이 나오길 바라는 마음뿐입니다. 그래야만 불교정화에 헌신했던 옛 어른 스님들 앞에서 우리는 당당할 수 있습니다. 제가 젊을 적에는 선방에서 삼시세끼 밥만 줘도 고마워서 정말 목숨 걸고 정진했습니다. 자기 건강 챙기고 잇속 챙기는 이를 수좌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인류 평화는 거창한 주제가 아닙니다. 내가 진정한 나를 찾는데서 시작됩니다.”

대흥사에서 스님을 만난 건 지난 4월17일이다. 부처님오신날이 멀지 않았고 대통령선거가 다가오고 있다. 이상적인 국가지도자상에 대해 묻자 “부처님의 마음을 갖지 않은 사람은 절대 대통령이 되어선 안 된다”는 단호한 답변이 돌아왔다. “불교신자여야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진정 국민을 사랑할 사람, 국민의 눈물을 닦아주고 국민을 위해 대신 싸워주고 자기를 희생할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직 자기가 대통령이 되고 싶어서 출마한 후보는 쉽게 들킵니다. 그들의 발언과 행동거지를 찬찬히 살피면 대번에 알 수 있습니다. 우리를 위한 대통령인지, 그들만을 위한 대통령인지.” 봄비라기엔 너무 거친 비가 내리는 산은 얼큰한 운무(雲霧)로 젖었다. 선기였을 지도 모른다. 황정산에도, 호랑이가 있었다. 단양=장영섭 기자

 

 

 

단양=장영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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