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기획 : 용성진종장학재단(총재 도문)      

진종은 노스님이 머문 초옥에

쌀과 보리, 된장, 소금 

그런 것들이 남아 있어서

죽을 끓여 먹으면서 이전처럼

극락전으로 들어가

아미타부처님을 향해 앉았다.

“오랜만입니다. 부처님!”

그러고는 ‘무’자 화두를 들었다.

이것이 어디서 온 소식이냐,

진종은 극락전을 나와

살구나무 밑을 지나

삼사백 년은 좋이 넘었을

커다란 소나무 아래로 갔다.

하늘은 맑게 개어

구름 한 점 없는데, 갑자기

하늘이 뻥 뚫려 보였다. 

무융대사는 명월당에 계셨다. 안내를 받아 대사와 마주앉았다.

“어디서 왔느냐?”

대사는 나가서나 존자처럼 고개를 들고 바라보았다.

“고령산 도솔암에서 왔습니다.”

나한 나가서나를 빼닮은 대사가 서탁에 놓인 죽비를 집어 들었다.

“이것이 보이느냐?”

“보입니다.”

“어째서 보이느냐?”

“통 밑이 퐁 빠지고부터 보입니다.”

무융대사가 죽비로 손바닥을 탁 때렸다.

“산은 산이다.”

경외만 하는 것만이 부처가 아니라는 도솔암 노스님의 말을 듣고, 밑이 퐁 빠진 것 같았지만 살구나무는 여전히 살구나무로 보이지 않았다.

“산은 산이었습니다. 그런데 한참 참구하다 보니 산은 산이 아니었습니다.”

“조주 무자를 아느냐?”

“있다 없다 그 너머에 있사옵니다.”

“어떻게 생겼더냐?”

진종은 말이 막혔다. 무융대사가 살며시 죽비를 내려놓았다.

“한밤중에 개구리가 울거든 다시 오너라.”

그날 진종은 판도방(判道房)에 방부를 들였다.

장통방 동희삼촌 집에서 그리 멀지 않는 곳에 ‘여여원’이라는 한의원이 있었다. 한의사는 유홍기라 했고 호가 대치라는 어른으로, 동희 삼촌과 아주 가까운 사이였다. 사람들 이야기에 의하면 오경석이란 이가 중국에서 <해경도지> 외에 여러 권의 책을 가지고 왔는데, 서양의 사회제도와 문화를 소개하는 내용으로, 그 책을 읽고 발달한 서양문명이 알려져 연암 박지원의 손자 박규수 사랑에서 유홍기, 오경석 등이 모여 개화사상을 논의해 개혁을 꿈꾸어 왔다는 소문이 암암리에 퍼져 있었다. 한데 박규수가 세상을 떠나자 새로운 학문에 눈을 뜬 장년층 어른들이 여여원 사랑으로 몰려든다는 것이다. 그 가운데 홍문관교리를 지낸 김옥균의 활약이 두드러진다며, 김옥균은 유홍기 여여원 원장을 스승으로 모시고 개화사상에 남모를 활동을 한 인물로 소문이 나돌았다.

은엽은 그 어른들 이야기를 듣고 싶은 마음을 누를 길 없었다. 어머니 말씀대로 팔자가 맷돌을 지고 산을 오르게 생겼지만, 떡판까지 엎어졌다고 볼 수는 없었다. 떡판이 그대로라면 떡 본 김에 굿인들 못하겠느냐, 한번 부딪쳐 보자 그러고 삼촌과 마주 앉았다.

“제가 삼촌 집에 온 것은 경성에서 배울 것이 있어서 왔습니다. 그런데 밥만 죽이고 있으려니 삼촌 볼 낯이 없습니다.”

삼촌이 얼굴을 유심히 살폈다.

“뭘 배우려 했느냐?”

“의술을 배우려 했습니다.”

“계집애가 의술은 무슨…?”

“아니 삼촌도 그런 말씀을 하세요?”

개화하겠다는 분이 웬 케케묵은 옛 소리냐는 항변이었다.

“남녀칠세부동석이란 말을 믿지는 않으시겠죠?”

“그래? 이야기 해봐라.”

“남녀칠세부동석이 일곱 살 되면 머시매와 가시내가 한 장소에 앉지 말란 소리가 아니고요, 옛날 중국의 방석이 일곱 살 되면 서로 부둥켜안고 앉을 수도 없을 만큼 좁디좁아 남녀칠세부동석이라고 했답니다. 이 말을 조선 양반이란 자들이 풍선 부풀리듯 부풀려 일곱 살이 되면 남자와 여자는 같은 장소에….”

“무슨 말인지 알겠다.”

삼촌이 말을 가로챘다.

“의술을 공부하자면 문자를 좀 알아야 하는데, <소학>은 배웠느냐?”

“소학을 떼고 <논어>도 보았습니다.”

“그만하면 문자는 되었고…, 길 건너 여여원 원장 대치선생께서 워낙 바쁘셔서 일손 도와 줄 사람을 구한다 하시던데, 맨 사내들만 드나드는 곳이라 그렇긴 하다만….”

은엽의 눈치를 살폈다. 조선왕조 내내 유학의 뿌리가 깊어서 그런지 삼촌도 남녀 성차별의 고리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것 같았다.

“개화사상가로 이해가 깊으실 줄 알았더니, 삼촌께서도 그런 말씀을 하세요? 두 냥 반짜리 양반 그까짓 게 무어 대숩니까? 아직 철딱서니가 안 들어서 그런지 저는 비록 가시내지만 구닥다리 양반이란 자들 사고방식에 환히 도랑을 쳐놓고 싶습니다.”

“아따, 우리 가문에 여장부가 났구나?”

일이 이렇게 되어 은엽은 여여원 약 심부름꾼으로 들어갔다.

진종은 무자 화두를 들었다. 판도방에서 두어 안거를 났으나 별반 달라진 것이 없었다. 갑신(1884)년 해제가 되어 전국 산하를 좀 돌아다니다 오겠다고 무융대사께 말씀드리고 금강산에서 내려왔다. 그 길로 고령산 도솔암으로 다시 들어갔다. 행화고령이라 이름 붙여놓은 노스님은 어디론가 떠나버리고 도솔암은 비어 있었다. 솔직히 세상살이가 뗑그렁하지도 않은데, 사람들과 만나고 헤어진 것 또한 부질없는 짓 같았다.

진종은 노스님이 머문 초옥에 쌀과 보리, 된장, 소금, 고춧가루 그런 것들이 남아 있어서 죽을 끓여 먹으면서 이전처럼 극락전으로 들어가 아미타부처님을 향해 앉았다.

“오랜만입니다. 부처님!”

그러고는 무자 화두를 들었다. 무(無)! 있는 마음으로 알 수 없는 것이 무라면 없는 마음으로 얻을 것 없는 것은 무법법(無法法)이다. 공간이 비어있는 것이냐, 채워져 있는 것이냐, 비어있지도 않고 채워져 있는 것도 아닌 이상한 형질의 것이다, 그것이 무엇이냐, 성질을 알 수 없고 기량도 알 수 없는 괴상한 것이다. 왜 괴상한 것이냐,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기 때문이다. 없을 ‘무’자 무라는 것은 아무 차이도 만들지 않지만, 한쪽은 없는 것으로 보이고 한쪽은 온갖 것이 다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강태공은 죽은 고기를 낚으려 했는데, 어찌하여 납자들은 향기를 찾으려 하는가. 재앙을 잘못 만나 바다가 마르면 바닥을 볼 수 있겠지만 사람은 별별스럽게 뙈기를 쳐도 마음을 알 수 없다. 그럴수록 진종은 생생히 깨어 있었다. 생생히 깨어 있는 것에 공맹의 문자를 떼어다 헤아리려니 도리어 눈앞이 캄캄했다.

무! 무 무 무…, 아무 차이도 만들지 않는 무, 한쪽은 아무것도 없고 한쪽은 별 것 별 것 다 있는 무, 진종의 의단은 느리지도 않고 빠르지도 않았다. 오직 ‘없다’는 그것을 끌어당겨 잡도리를 하다 보니 빈틈없이 착 달라붙어 숨겨져 있는 마음의 빛이 비치는 듯했다.

빛! 바로 이것이다. 이 빛은 언설로 형언할 수 없는 희열이다. 하나 진종은 그런 것 다 팽개쳐버리고 쥐가 작은 이빨로 널빤지를 살살 긁듯 무자를 하나하나 조심스럽게 끊어나갔다. 조금도 무리하지 않고 놓으면 깨지고 들면 날아갈 듯 며칠을 보냈더니, 바람에 나부끼듯 흔들리는 것도, 기압이 낮아 고요한 것도, 애벌레처럼 생겨난 것도, 불꽃처럼 스러진 것도 없었다. 눈으로 보려고 애를 써도 보이지 않았고, 귀로 들으려고 귓구멍을 하늘에 대고 눈을 감아도 들리지 않았다. 그것은 텅 비어 없는 것 같으나 사실은 무언가 있는 것인데, 칠흑처럼 캄캄한 것 같기도 하고 대낮처럼 밝아, 크기로 말하면 끝 간 데가 없고 작기로 말하면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이것이 어디서 온 소식이냐, 진종은 극락전을 나와 살구나무 밑을 지나 삼사백 년은 좋이 넘었을 커다란 소나무 아래로 갔다. 하늘은 맑게 개어 구름 한 점 없는데, 갑자기 하늘이 뻥 뚫려 보였다. 순간 땅덩어리가 사라진 것 같더니, 강화도 마니산이 바다 끝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구름을 밀어내 안개를 붙들고 문수를 찾으니

애당초 문수가 텅 빈 곳에 거꾸로 서 있구나.

눈으로 보고 보이는 것이 뒤집혀 빈 곳으로 돌아가고

텅 빈 것이 눈앞에 겹겹으로 나타나 없어지지 않네.

排雲霧尋文殊 始到文殊廓然空

色色空空還復空 空空色色重無盡. 

감회를 읊고 돌아서니 발바닥이 구름 위에 둥 떠 있는 것 같았다. 다시 극락전으로 가는데, “앗!” 비로소 살구나무가 살구나무로 보였다. 산이 산 아니던 것이 의연히 산이었고 물 또한 의연히 물이었다. 

극락전에서 가부좌로 한 달 나마 앉아 있다가 행화고령 노스님이 읽다가 놓아둔 <육조단경>을 펴들었다. “있는 그대로의 상태, 그것이 깨달음이다” 진종은 무릎을 쳤다. 바로 이것이었구나! 헷갈리고 치우치고 훼방 놓는 것들이 너와 함께 있다. 바르게 판단하는 지혜, 그것은 사물을 바라보는 이해가 밝고 현명한 방향으로 작용하고 있어서 그렇다.

아?! 이 놀라운 가르침, 진종은 육조단경 내용이 모래에 물이 스미듯 전신으로 촉촉이 스며들었다. 

[불교신문3294호/2017년4월29일자] 

글 신지견 ·그림 배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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