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이곳을 다녀온 적이 있다. ‘저 푸른 초원 위에’로 시작하는 노래가사가 저절로 떠오르는 초지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현재는 안성팜랜드로 불리지만 원래 이곳 이름은 농협중앙회 안성목장이었다. 30만평을 사료용 목초지로 사용하는데 그 가운데 12만평에 호밀을 심는다. 호밀은 보리보다 성장이 빠르고 색깔도 진해 드넓은 이국적 초원의 풍경을 즐길 수 있다. 

그러던 이곳이 언제부터 일명 ‘진사’라 불리는 사진 동호인들 사이에 5월에 멋진 사진을 찍을 수 있는 명소로 입소문이 자자하다.

2011년 드라마 ‘빠담빠담’의 촬영을 위한 세트장이 만들어졌는데, 세트장으로 지은 농가가 이국적으로 생겼다. 위치와 배경이 기가 막힐 뿐 더러 5월 초순에서 중순 사이에 멋진 안개를 배경으로 일출을 담을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다.

정보 홍수의 시대에 걸맞게 다양한 기상정보와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인터넷 블로그 글을 살펴보니, 올해의 경우 5월 둘째 주 주말이 기대를 한껏 받았다. 

토요일인 지난 13일 새벽 5시 습도가 90%까지 치솟으며 많은 사진동호인들이 안개가 만들어주는 몽환적인 일출을 기다렸지만, 안개는 피어오르지 않았다. 이 블로거는 올해 5월에만 3번째 도전이었는데 아쉽다며 내년을 기약한다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또 다른 블로거는 14일 일요일 새벽 4시20분에 도착해 보니 이미 100명도 넘는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고, 이 날은 멋진 안개와 일출이 동시에 눈앞에 펼쳐져 최고의 장면을 담을 수 있었다며 여러 장의 사진도 함께 올렸다. 

②안성 청룡사 대웅전. 구불구불한 아름드리 나무를 그대로 살린 기둥이 아름답다.

이런 열정적인 글들을 접하니 16일 칠흑 같은 어둠에도 저절로 눈이 떠졌다. 도착한 시간은 오전 5시20분. 일출예정 시각에 딱 맞춰 도착했지만 바다 일출이 아닌 산악지형은 해가 떠오르는 시간이 더디다. 주차를 하고 촬영 장비를 챙겨 5분 남짓 거리의 촬영지로 향하는 길에 벌써 카메라를 접고 빠지는 사람들을 마주칠 수 있었다. 허탈한 표정이었다. 해가 뜨기도 전인데, 이들은 이미 해 뜬 이후의 풍경을 알고 있다. 그동안에 쌓은 경험치가 많은 나름의 고수들이다. 고수들의 예측은 맞아 떨어져 밋밋한 일출을 여러 동호인들과 함께 맞이했다. 

새벽잠을 설치며 혹은 전날 밤 인근에서 숙식을 하며 이들이 기다린 모습은 일상에서는 보기 힘든 아름다운 신기(神技)한 풍경이다. 

아쉬움을 잠시 접어두고 차량으로 30분 거리인 안성 청룡사를 찾았다. 청룡사는 조선 후기에 등장한 남사당패의 근거지이기도 하다. 봄부터 가을까지 청룡사에서 준 신표를 들고 기예를 뽐내며 전국을 돌아다니다 겨울이 되면 청룡사 인근 불당골에서 겨울을 보냈다.

③보물 제1789호인 대웅전 안의 소조석가여래삼존상.

그러던 중 남사당패에 신기한 재능의 바우덕이가 나타났다. 바우덕이가 15세 되던 해, 안성 남사당패의 꼭두쇠가 연로해 새로운 꼭두쇠를 선출할 때 어린나이와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만장일치로 꼭두쇠에 선출되었다고 하니 그의 재주는 ‘신기’ 그 자체였다. 흥선대원군이 경복궁 중건에 지친 공역자와 백성을 위로하기 위해 남사당패를 불러 공연을 펼쳤는데 그 놀라운 재주에 정3품에 해당하는 옥관자를 하사했다. 이후 안성 남사당패는 바우덕이라는 인물 명칭으로 불러지며 전국에 이름을 드날렸다. 

뒷산 오른쪽으로 늦은 해가 오르면 고요한 산사를 깨운다. 당당한 대웅전의 모습이 또렷해진다. 대웅전은 고려말 공민왕 때 지어져 조선후기에 다시 지어졌다. 조선후기의 기법과 양식을 잘 보존하고 있으며 보물 제823호이다. 또한 자연미를 그대로 살린 기둥으로도 유명하다. 구불구불한 아름드리나무를 껍질만 벗겨 본래의 나뭇결을 그대로 살려 기둥으로 세웠다. 또한 내부 탱화와 가구 그리고 외벽 벽화까지 잘 갖춰져 있어 전형적인 법당 모습을 온전히 간직하고 있다. 독특하면서 완성도 높은 법당이다. 

④대웅전 옆면에서 보면 휘어진 기둥을 제대로 볼 수 있다.

신기한 풍경을 좇아 시작된 하루는 신기한 재주를 가졌던 바우덕이가 머물렀던 안성 청룡사로 이어졌다. 하지만 오늘 기도 드린 법당의 아름다움을 온전히 볼 수 있었다는 것에 감사한다.

청룡사 대웅전은 곧 해체보수 공사에 들어간다. 이미 공사에 필요한 임시 작업장이 설치되었다. 아무래도 보수를 마치면 새로 손댄 부분이 어색해 보인다. 쉽게 볼 수 없는 것을 찾기보다 지금 눈앞에 펼쳐져 있는 모습에서 아름다움을 찾는 것을 배운 여정이었다.  

⑥청룡사 인근의 바우덕이묘.

[불교신문3299호/2017년5월2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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