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잘 먹었어? 그래 밥 먹고 나면 사람들은 밥 잘 먹었다고 하지. 반찬 잘 먹었다는 말은 안 하잖아.” 노스님의 이 말이 새삼 곱씹힌다. 50여 년 전 모두가 가난에 찌들어 살 때였다. 여름방학을 맞아 대불련에서는 월정사에서 수련대회를 가졌다. 대회가 끝나고 필자는 친구 둘과 함께 여행을 했다. 관동팔경을 거쳐 영주 부석사까지 내려왔다. 

부석사에서 하룻밤 묵기로 했다. 쌀 두어 되를 샀다. 저녁 무렵 절에 도착하니 노스님이 우리를 맞아주셨다. 우리가 갖고 온 쌀로 지은 저녁밥이 나왔다. 밥상엔 김치를 빼고는 모두가 감자 일색이었다. 감자된장, 감자찌개, 감자조림이 전부였다. 그때 그 감자는 단순한 먹을거리만이 아니었다. 그렇게 차려진 저녁밥을 먹고 나서 들은 노스님의 말씀이 바로 ‘모두들 밥 잘 먹었다 하지, 반찬 잘 먹었다고는 안 하지’였다. 

스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산골 절이라 반찬거리가 별로 없었다. 채소밭도 일손이 없어 가꾸어지지 않았다. 가난한 절이라서 이 절에 살려온 스님도 별로 없어 노스님이 절을 지키고 있었다. 농사라야 감자가 고작이었다. 그러니 밥상에는 그야말로 국도 감자, 찌개도 감자일 수밖에. 그런데도 노스님은 다른 말 한마디 없이 ‘반찬 잘 먹었다는 소리는 안 해’였다.

절집 살림살이가 어려웠던 시절 이야기 하나 더 하자. 정진 대중이 예상보다 많아졌다. 반찬이라고 해봐야 김장김치가 전부인데 대중의 수용에 부족했다. 묘안이 나왔다. 한 밤중에 어른 스님이 김장독에 소금 한 바가지, 원주가 또 소금 한 바가지. 그래서 그 김장독의 무, 배추 한쪽으로 밥 한 끼 때웠단다. 

지금이 어느 땐데 반백년전의 얘기를 늘어놓느냐고 투덜거릴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굳이 이런 얘기를 하는 이유는 그런 시절이 있었다는 걸 알라는 것이다. 옛 일을 잊어버리고, 아니 알려고도 하지 않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등 따숩고 배부르면 도심(道心)은 사라진다’고 했다.

[불교신문3299호/2017년5월24일자] 

이진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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