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는 간추려 말하면 자기해탈에 있다

 

일체만유에는 생사를 초월한 

불생불멸의 진리 ‘불성’ 있어

스스로 주체성 가진 진리로서 

원인 따라 생멸하니 ‘창생론’

팔만사천 법문이 각자 자기를 

깨달으라는 것이고 깨닫기 위해

탐진치 삼독 해탈하라는 것이나 

이 번뇌는 다생의 업이기에

이론이나 생각으로는 안 되고

일조일석에도 없어지지 않으니

몸소 선업과 지혜를 닦아야 …  

늦은 나이에 출가했지만 서운스님이 불교사에 남긴 공적은 매우 크다. 정화의 주역으로 또 총무원장을 세 번 역임하고 동국학원 이사장을 두 번 역임하는 등 한국불교를 크게 중흥시켰다.

하루살이 날벌레가 어두운 밤에 불빛을 보고 마구 달려들어 타오르는 불꽃에 들이덮쳐 자기 몸을 태워버리고 마는 것이다. 이것은 인생을 비유한 말이다. 중생은 탐·진·치 삼독의 불꽃에 자신을 태워버리고 마는 것이 인생이다. 중생의 앞길을 막는 탐·진·치 삼독심이 맑은 지혜를 가로막고 검은 구름같이 어두워져 날벌레와 같이 불꽃에 마구 덤벼드는 것이다. 불교는 이 탐·진·치 삼독심을 해탈하고 지혜는 밝히는 수행의 종교다. 

지혜가 밝은 곳에는 인생의 목적을 성취할 수 있지만 탐·진·치 삼독심에 방황하는 인생은 필경 타오르는 불꽃에 빠지고 마는 것이다. 

중생에게는 궁극적으로 두 가지 길이 있다. 탐·진·치 삼독의 길이 있고 다른 하나는 이 삼독을 해탈하고 지혜를 밝히는 길이다. 다시 말하면 불교는 탐하고 욕심내고 어리석은 데서 일어나는 삼독의 번뇌를 벗어나 자신의 지혜를 밝혀 누구나 다 부처가 될 수 있는 성불에 있는 것이다. 즉 삼독의 번뇌에 방황하거나 어떤 절대 신봉자를 따로 정하여 놓고 믿음만으로 족한 것이 아니다. 오직 인간 자신에 절대성을 찾는 것이다. 석가세존께서 49년 동안 설법한 법문이 모두 삼독의 번뇌를 해탈하는데 있었던 것이다. 

불교는 많은 법문이 있어서 어느 것을 들어야 옳은지 모른다는 말이 있지만 결코 불교는 간추려서 말하면 자기해탈에 있는 것이다. 우리 중생은 본래 진아(眞我)의 자리를 망각하고 악업(惡業)을 지었기 때문에 본래 맑은 진아 즉 지혜의 불성(佛性)을 모르고 변하여 필경 없어지는 사대오온(四大五蘊=地水火風과 色受相行識=變減)으로 이루어진 물질적인 면에만 집착되어 탐·진·치 삼독을 해탈하지 못하는 것이다.

중생은 사대육신과 탐욕만을 본분으로 삼고 진여불성(眞如佛性)은 모르고 있다. 이것은 마치 인간의 주체성을 모를 뿐 아니라 자신을 부정하고 남에 의지하거나 허공에만 매달려 언제 떨어질지 모르고 있는 것과 같으며 잠시 있다가 변하여 없어지는 유물사상에만 집착되어 영원한 자기를 모르고 짧은 인생만 알고 있는 암흑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탐·진·치 삼독의 번뇌를 해탈하면 그때는 본래의 맑은 지혜가 나타나 생사의 주체성을 알게 되는 것이다. 중생은 삼독의 번뇌에 어두워 생사의 주체성 즉 영원한 자신의 주인을 모르고 허망한 인간 60년에 만족을 찾다가 절망에 빠지고 마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생명에는 생사의 주인이 되는 영원한 진리 하나가 있어 자기가 지은 선악의 과보대로 영원한 세계로 윤회하는 것이다. 부처님께서 일체만유에는 생사를 초월한 불생불멸의 진리인 불성(佛性=眞我=眞如)이 있다고 하였다. 이 불성이 우주의 근본이며 만유의 주체성으로서 스스로 선악의 과보에 따라 생사의 차별세계로 윤회한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불교에서는 만물에 대한 창조니 피조니 하는 문제가 논의되지 않는다. 각자가 자기 스스로가 주체성을 가진 진리로서 자기 원인을 따라 생멸하는 창생(創生)론이다. 오직 자기 원인을 바로 닦는 것이 불교인 것이다. 자기를 알게 하는 것이 불교의 팔만 사천 법문이다. 이 팔만사천법문이 각자 자기를 깨달으라는 것이고 깨닫기 위해서는 우선 탐·진·치 삼독의 번뇌를 해탈하라고 한 것이다. 이 삼독의 번뇌를 해탈하는 길은 이론이나 생각으로 해탈 되는 것이 아니다. 이 삼독의 번뇌는 다생으로 윤회하면서 쌓인 업(業)이기 때문에 일조일석에 그냥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오직 몸소 수행하여 탐·진·치를 버리고 선업(善業)과 지혜를 닦아야하는 것이다. 

옛 조상께서 비유하기를 탐·진·치의 업장을 없애는 길은 마치 이글이글 타오르는 불을 화로에 담아놓고 그 화로 속에 한없이 이글대는 불덩어리를 하나하나씩 들어내 버리고 결국 그 화로 속에는 불씨 하나도 없이 하고 재마저 차게 식히는 정도라도 해탈의 경지에는 도달하기 어렵다고 하였다. 

화로자체가 아직 뜨거운 기운이 있기 때문에 완전히 해탈할 수 없고 그 화로 자체마저 냉각하게 식어져야 다생으로 익힌 습성이 없어지고 완전히 해탈경지에 들어가 불지(佛智)를 얻게 되는 것이라고 하였다.  

<대한불교(불교신문 전신)> 제226호(1967년12월10일자)에 실린 서운스님의 ‘금주의 설법’.

■ 서운스님은…

1903년 경북 칠곡군에서 태어났다. 부잣집의 셋째 아들로 태어난 스님의 속명은 김한기. 일찌감치 서울의 보성고보(보성고등학교, 당시는 지금의 조계사 옆)에 진학하여 신학문을 배우며, 유교경전과 노장철학에도 통달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불교에도 깊은 인연이 있어 각황사(지금의 조계사) 학생회에 참여하여 당시 교학의 으뜸이었던 박한영, 한용운스님 등에게 불교를 배웠다. 불교에 관심이 많았지만 출가를 하는 대신 고시 공부에 전념해 공직자가 되었다.

1932년 파계사 성전암에서 재가불자의 신분으로 금오, 전강스님과 하안거를 마치고 제방선원에서 정진하는 등 수행을 게을리 하지 않았던 스님은 1950년 서울전매서장(담배·홍삼 및 홍삼제품의 전매와 인삼행정에 관한 사무로 외무부 외청인 전매청 소속) 직책을 맡게 된다. 하지만 곧 터진 6ㆍ25한국전쟁 때 피난을 가지 못하자 수복 후 부역자의 오명으로 헌병대에 끌려가 철저한 조사를 받고 한 달 만에 무죄로 풀려나긴 했지만 외동딸을 잃고 만다. 스님은 1950년 11월 15일 47세에 마곡사에서 제산스님을 은사로 입산 득도했으며, 적음스님에게 사미계를, 금봉스님에게 비구계를 수지했다. 1953년 마곡사 대교과정을 졸업하고, 같은 해 직지사에서 대덕 법계를 품수했다. 

1954년 상주 갑장사에서 정진하다 동산, 효봉스님의 권유로 상경하여 청담, 경산, 지효, 월하, 구산스님과 함께 불교정화운동에 참여했다. 조계종 충남종무원장, 경북종무원장, 불교재건 비상종회의원, 능인학원 이사장, 대구 동화사 주지, 동국학원 이사장, 동학사 주지, 남장사 주지, 봉은사 주지, 흥국사 주지, 조계종 종무행정지도위원장, 조계종 총무부장, 조계종 총무원장 등을 역임했다. 또한 조계종 감찰원장, 전등사 조실, 조계종 원로의원을 지내고 1995년 11월15일(양력) 전등사에서 입적했다. 법랍 45년, 세수 93세. 

[불교신문3300호/2017년5월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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