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은 전생에 몸과 목숨 기꺼이 내놓았다

 

‘본생담’ 생명 나누는 이야기 수록

인간 미물 모든 생명 가치 동일

사람 자연 함께하는 연기관도 중요

나와 남 구분 않기에 장기 기증

부모에게 받은 육체관 탈피해야  

불교에서는 너와 나는 별개의 존재가 아닌 하나라는 연기적 관점에서 장기기증도 시혜가 아닌 생명나눔으로 바라본다. 사진은 비둘기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살점을 잘라 매에게 주었다는 본생담의 일화를 형상화한 간다라 자말 가르히 출토 부조. 불교신문 자료사진

생명나눔실천본부 이사장 일면스님은 ‘불교에서 바라보는 장기기증’에 대해 이런 글을 쓴 적이 있다.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살아갈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듯 생명이란 서로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면서, 살려주며 살려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인식의 바탕에서 저절로 자비가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교계에서 유일한 장기이식 등록기관의 이름이 생명나눔실천본부인 것은 부처님의 자비와 불교의 생명관을 가장 정확하게 표현한 이름이라고 생각합니다. 부처님의 전생담에도 다른 생명을 살리기 위해 스스로의 몸뚱이를 공양 올리는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배고픔에 죽어가는 새끼 사자들을 살리기 위해 구도자가 공양을 올리는 이야기나, 비둘기를 살리기 위해 매에게 허벅지 살을 베어내는 이야기는 유명합니다. 부처님께서는 전생에 이러한 생명나눔의 수행을 끊임없이 하였기에 부처를 이루셨다고 고백하십니다”며 “그런데 이런 불교를 배우고 신앙하면서도 장기기증에 관심이 적다는 것으로 볼 때 불자들의 신앙태도를 점검해 봐야 할 것입니다. 혹 지금까지의 신앙이 기복을 추구하던 신앙이었다면, 이제부터라도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도록 살아가는 방향으로 태도를 바꿔야 합니다. 작은 보시가 생활화 될 때, 부처님 전생담 같이 몸뚱이도 아낌없이 나누어주는 단계까지 갈 수 있게 됩니다. 장기기증이란 나에게는 인연이 다해서 흩어지고 말 것을 주는 것이지만,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환자에게는 새로운 생명을 얻을 수 있다는 희망을 주는 일입니다. 요즘처럼 장기기증이 사회의 관심으로 떠오를 때, 불자들도 이 생명나눔의 행렬에 동참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라고 말했다. 

일면스님의 인용처럼 ‘생명나눔’과 불교 연관성을 가장 많이 인용하는 것은 자타카(본생담)이다. 자타카에는 부처님이 전생에 다른 생명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몸과 목숨을 기꺼이 내놓았다는 이야기가 가득하다. 물론 자타카에 나오는 이야기들은 허구다.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현생의 부처가 전생에 수많은 보살행이 쌓여서 생겼다는 업의 엄중함이다. 내세우는 가치는 생명의 소중함이다. 대표적인 이야기 하나를 들어보자. 

자비심이 뛰어난 수행자가 있었다. 수행을 하는데 품 속으로 매에게 쫓긴 비둘기 한 마리가 날아들었다. 자비심 많은 수행자는 비둘기를 숨겨주었다. 매는 수행자에게 비둘기를 내줄 것을 요청했다. 수행자는 거절했다. 그러자 매는 ‘나는 비둘기를 못 먹으면 죽는데, 비둘기 생명은 소중하고 내 생명은 소중하지 않느냐’고 따졌다. 매는 비둘기 만큼의 살코기를 달라고 했다. 수행자는 비둘기도 살리고 매도 살리는 방안으로 비둘기 몸무게 만큼 자신의 허벅지 살을 떼어 저울에 달았다. 그러나 저울 눈금은 비둘기 쪽으로 기울었다. 그래서 자신의 양다리 양팔 엉덩이 까지 다 베어 올렸지만 여전히 비둘기가 더 무거웠다. 결국 자신이 저울에 올라서자 그 때서야 저울이 평형을 이루었다. 사람 목숨과 비둘기 목숨 가치가 같았던 것이다. 보살은 원력을 세웠다. “내가 지금 받는 고통은 중생들이 받는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기필코 고해에 빠진 중생들을 건져내리라….”

부처님은 전생에 사슴이 된 적도 있었다. 사슴을 사냥하려는 왕에 맞서 부처님이 되기 전 사슴은 자신의 목숨을 내놓으려 한다. 사슴은 왕에게 이렇게 말한다. “모든 생명은 살기를 좋아하고 죽기를 싫어하니 모든 생명을 보호해달라.”

전생담에 나오는 이러한 육신보시는 자비심의 실천이다. 대승불교는 인간의 최고 덕목으로 자비를 강조한다. <금강경> <화엄경> <법화경> 등 대승경전이 강조하는 내용은 결국 자비다. 부처님은 삼독심이 인간을 망치고 괴롭히는 근본 원인이라고 말씀하셨다. 인간의 끝없는 욕심이 곧 자신과 주변을 망치는 근원인 삼독심이다. 부처님께서는 개인의 의지를 통한 삼독심에서 벗어남을 강조했다. 대승은 개인의 의지에서 나아가 사회적 실천을 강조하는 보살도며 자비행이다. <전생담>이 강조하는 내용이 바로 보살도이며 자비심이다. 자비는 내가 다른 사람이나 생명으로부터 도움을 받는 상호의존적 관계 속에서 나온다. 나와 상대방은 서로 경쟁하는 적대적 관계가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돕고 베푸는 상호이익의 관계이므로 나를 대하듯 상대방을 대하라는 것이 자비다. 삼독심을 자비심으로 채우는 과정이 수행이다. 생명나눔의 불교적 근거가 바로 여기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본각스님(중앙승가대학 교수 역임)은 생명나눔실천본부가 창립할 당시 개최했던, 불교와 장기기증 간 의미를 들여다 보는 세미나에서 “육신공양의 근본 목적은 보살도의 실천이라는 차원에서 무상정등보리(無上正等菩提)의 성취에 있다”고 강조한 바 있다. 스님은 경전상의 육신보시는 보살의 궁극적인 목표인 ‘보시행의 완성’ ‘대자비의 실천’ ‘무상정등보리의 성취’에 접근할 수 있는 방법으로 강조되었으므로 그에 따른 실천방안으로 철저한 상을 버리고 다른 이의 고통을 일정기간 구제해 정법으로 이끌기위한 전 단계로서의 그 의미를 조명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입적한 각현스님(연꽃마을 이사장 역임)도 같은 세미나에서 “시신을 기증함으로써 무(無)를 실천하는 구도자가 될 수 있으며, 필요한 사람에게 사용케 함으로써 보시하는 마지막 선업(善業)이 증장되는 결정적 계기를 마련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었다. 

이처럼 장기기증이나 시신기증과 같은 생명나눔은 불교가 가장 강조하는 인간상인 자비보살의 적극적 실천행인 것이다. 이같은 자비를 통해서 상대방에게는 생명의 기쁨을 주며, 사회적으로는 건강하고 평화로운 세상을 만드는데 일조하고 자신은 이를 통해 불교가 말하는 이상적 인간으로서 행복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생명나눔실천본부를 창립하고 당신의 법구도 기꺼이 병원에 기증했던 법장스님 역시 생명나눔의 의미는 보살도에 있음을 역설했었다. 스님은 “진정한 보살은 모든 중생의 병이 낫지 않는 한 자신의 병도 낫지 않는 동체대비(同體大悲)의 사회구원에 설 때만이 그 존재 의의를 갖는다”며 “보살의 중생제도는 목적이 되어야지 수단일 수는 없다. 보살이 다짐하는 사홍서원의 첫째 목표가 중생구원(衆生無邊誓願度)이다. 다시 말해 모든 보살행의 회향점은 중생구원”이라고 강조했다. 

불교의 연기적 관점에서 보면 장기기증은 시혜가 아니라 함께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불교는 아(我)와 타(他)를 나누지 않는다. 나(我)라는 개인은 가깝게는 가족의 일원이며 이웃들과 함께 하며 사회를 이룬다. 자연으로 눈을 돌리면 공기 물을 통해 생명을 영위한다. 나 역시 누군가에게 의지가 된다. 불교는 서로 의존하며 공생하는 존재에 대해 최상의 수식어를 붙인다. 바로 부처의 반열이다. 무비스님은 이를 일러 “사람이 부처”라고 선언한다. 선방의 스님들도 부처님 불상 대신 서로에게 절 한다. 함께 정진하는 도반이 곧 부처라는 뜻이다. 이러한 견해에서 보면 장기기증은 기증이나 시혜가 아니다. 불교는 그래서 ‘생명나눔’이라고 고쳐 부른다. 이수덕 전 불교텔레비전 회장은 생명나눔실천본부 20주년 기념 세미나에서 이를 <금강경>의 환지본처(還至本處)에 비견한 바 있다. 이 회장은 “<금강경> 제1분의 ‘환지본처(還至本處, 본래의 자리로 돌아옴)’의 본처가 바로 동체 혹은 법계일상(法界一相)을 깨닫는 자리”라며, “동체사상의 견지에서 장기기증은 누구에게 주는 것이 아닌, 내 몸 일부분이 필요하는 곳으로 자리바꿈 하는 것뿐이다. 장기기증이 부처님 가르침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불교가 생명나눔에 대해 이처럼 적극적이며 진보적인 교리를 갖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신자들의 동참이 저조한 것은 불자들이 불교보다 유교사상에 더 젖어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학자들의 견해다. 곽만연 동아대 교수는 생명나눔실천본부 20주년 기념 세미나에서 “한국 환우들이 중국에서 장기이식을 받고 오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하며, “투철한 자비정신으로 유교적 육체관을 극복하고 이웃을 위해 장기기증이라는 자비행을 실천해야한다”고 역설한 바 있다. 담마난다 스님은 ”장기 기증과 같이 고귀한 행동에 참여하기를 두려워하는 것은 주로 존재의 실상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기인하는데 자기 몸의 어느 일부나 장기를 떼어내면 그 장기 없이 그 다음 생으로 가야 한다거나 혹은 천국에 들어갈 자격을 잃게 될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일부 있지만 이는 합리적 근거가 전혀 없으며 장기가 썩어 없어져 버리게 하는 대신에, 오늘날 기술과 수술 기법이 발달하여 생명을 살리기 위해 심장과 기타 장기들을 사용하거나 이식할 수 있게 되었으므로 고통 받고 있는 인류를 편안하게 하는 일을 돕기 위한 이 고귀한 목적에 결합하는 것이 이해력이 있는 사람들 모두의 의무“라고 강조하고 있다.  

생명나눔실천본부-불교신문 공동 연중 기획   

[불교신문3300호/2017년5월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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