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지난 3년을 되돌아본다는 것은 저에겐 너무 큰 아픔입니다. 그분들이 최소한의 명예가 회복된다 하더라도 그분들은 다시 살아 돌아올 수 없고 다시는 만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다만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우리가 그분들의 희생을 절대로 잊으면 안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초원 샘 아버님이 늘 말씀하십니다. 우리 딸이 살아 있다면 선생님같은 선배를 만났으면 정말 좋아했을 거라고요. 그래서 저도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는 우리 후배 초원이에 대한 글을 씁니다.

김초원 선생님 아버님을 처음 뵌 것은 참사 그해 11월이었습니다. 공주대학교 민주동문회가 결성되고 나서 공주대학교 민주동문회 이름의 세월호 피켓을 들고 광화문 세월호 광장에서 피켓시위를 하고 있는데, 김초원 선생님 아버님이 피켓을 보고 찾아 오셨습니다. 

공주대학교를 나온(공주사대 환경교육과 07학번), 세월호에서 희생된 단원고 2학년 3반 담임 김초원 선생이 당신의 딸이다. 그런데 정규직 교사와 달리 기간제 교사라서 7반 담임 이지혜 선생님과 두 분만 순직인정에서 제외됐다. 공무 중 사망한 ‘순직’이 아니라 ‘민간근로자’이므로 산업재해에 해당된다는 것이다.

‘기간제 교사’, ‘민간근로자’, ‘산업재해’, 담임선생님으로서 마지막 순간까지 아이들과 함께한 두 분 선생님에 대한 규정은 그것이었습니다. ‘민간근로자’. 그 생소한 단어와 지난 3년간 맞서 싸웠습니다. ‘선생님’으로서 죽음을 인정해 달라고, 죽음에도 차별을 두는, 기가 막힌 현실과 ‘관행’이라는 낡은 기준만을 내세워 ‘순직인정 불가’라고 운운하는 인사혁신처와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한 교육부와 공무원 연금관리공단, 세월호 문제는 단 하나라도 들어줄 수 없다는 불통의 박근혜 정권과 기나긴 싸움을 해나갔습니다.

사실 처음에는 상당히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기간제 교사 순직인정 문제를 떠나 교사들의 희생 문제는 공공연하게 말하기조차 어려운 문제였습니다. 교사는 학생들의 인솔 책임자이고 학생들이 무사히 수학여행을 다녀올 수 있도록 지켜주는 책임자니까요. 그리고 그 책임을 다하지 못하여 그렇게 많은 학생들이 희생되었고, 희생된 학생의 학부모님들한테 원망을 들었고, 한편 그것은 당연한 것이었으니까요.

그럼에도 김초원 선생님의 아버님은 희생 교사 유가족의 대표를 맡아 그 따가운 시선 속에서도 학생 유가족들이 가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따라가 함께 하였습니다. 그 진정성이 통하였는지, 끝까지 아이들 구하다 희생되신 선생님들의 사연이 알려지면서인지, 희생 학생 유가족들께서 조금씩 마음을 열어주셨습니다. 그것이 거의 2년이라는 세월이 걸렸고, 참으로 안타깝게도 참사 후 네 번째 되는 올해의 스승의 날, 희생되신 열두 분의 선생님에 대한 추모식을 처음으로 광화문 광장에서 갖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혼자만 살려고 했으면 비교적 탈출이 쉬운 5층에 있었던 선생님들은 모두 학생들이 있는 4층으로 향했습니다. 아이들에게 구명조끼를 입혀주고 부족한 구명조끼는 자신의 구명조끼를 벗어서 입혀주었습니다. 너무나 당연하게 본능이란 듯이 그렇게 하였습니다. “애들아 너희 먼저 나가. 나는 아이들 구하고 나중에 나갈게.”. ‘나는 살아야하겠다.’는 본능을 이길 수 있는 그분들은 ‘선생님’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까지 아이들과 함께하셨습니다.

4월16일은 김초원 선생님의 생일이었습니다. 전날 밤 아이들이 선물한 귀걸이 목걸이를 한 채로 시신으로 돌아왔습니다. 수학여행 인솔 책임자 강민규 교감 선생님은 그 모든 책임을 자신이 지겠다며 ‘저승에서도 선생 할까?’라는 유서를 남기고 돌아가셨습니다.

서명을 받으면서 느낀 것이지만 처음 이 문제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서 쉽게 해결될 줄 알았습니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비정규직 차별의 극단적인 현실 앞에 많은 분들이 분노하고 공감하였기 때문입니다. 서명을 받는 우리도 너무 서러워 복받치는 감정을 누르면서 설명했고 시민들도 분노의 눈물을 참으며 서명을 하였습니다. 처음에는 교육부총리도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기간제교사도 공무원임을 인정했고 인사혁신처장도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는 답변을 하였는데 3년이 넘게 걸릴 줄 몰랐습니다.

하지만 지난 3년, 우리는 외롭지 않았습니다. 함께하는 분들이 많아서 큰 힘이 되었습니다. 세월호 희생자 김초원․이지혜 선생님 순직인정 대책위원회에는 공주대학교 민주동문회,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윤지영 변호사 무료 변론), 단원고 동료 교사,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네트워크, 416연대,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전국기간제교사연합회, 대한불교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천주교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에서 함께하셨고, 공공운수노조 교육공무직본부, 민주노총, 한국노총, KTX 노동자들, 삼척 시멘트 노동자들, 콜트콜텍 노동자들이 함께하여 주셨습니다. 너무 많아서 기억나는 분들만도 그렇습니다. 참으로 고맙습니다.

서명을 받았습니다. 참사 이듬해 6월부터 다음해 6월까지 305,202명의 서명을 받아 인사혁신처와 교육부에 전달하였습니다. 그리고 올해 10만여 명의 서명을 받아 행정법원에 제출하였습니다. 그간 서명으로 함께해주신 모든 분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오체투지를 하였습니다.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양한웅 위원장이 많이 애쓰셨습니다. 조계사에서 광화문 광장까지 이어지는 다섯 번의 오체투지를 그 추운 겨울에 땅바닥에 몸을 부비며 순직인정을 간절히 바랐습니다. 두 분 아버님과 종교계 분들과 함께하신 모든 분들께 감사 인사드립니다.

순직인정에 관계된 모든 분들을 만났습니다. 인사혁신처 면담, 교육부 면담, 교육부총리 면담, 국회의원 면담, 경기도의회 · 경기교육청 면담, 천주교 추기경 면담, 조계종 총무원장 스님 면담, 여야 원내 대표 면담 등, 관계된 모든 분들을 만났습니다. 그러나 정부에서 돌아오는 답변은 늘 같았습니다. ‘순직 불허’

박근혜 정권 하에서는 정말 앞날이 보이지 않아 최종적으로 행정소송을 진행하였습니다. 정말 암담했습니다. 법리만 따진다는 행정소송에서 이길 수 있을까를 의심하면서도 할 수 있는 것이 그것밖에 없어서 행정소송을 진행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후 1년만에 다시 서명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서명에 시민들이 폭발적으로 호응하여 주었습니다. 1주일 새에 순식간에 3만 명이 서명으로 함께하여 주었고 한 달 즈음하여 10만여 명이 서명으로 함께하여 주었습니다. 너무나 큰 감동이었습니다. 정말 그때의 감동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모두가 잊지 않고 있었구나. 두 분의 숭고한 희생.

그리고 그 긴 겨울의 연이은 촛불 집회, 탄핵. 대선 국면, 2017년 4월 16일, 안산에서 있은 세월호 3주기 기억식. 대선에 가장 당선 유력한 문재인 후보가 ‘김초원‧이지헤 선생님에 대한 순직을 인정해야한다는 약속을 하였습니다. 안철수‧심상정‧유승민 후보도 함께 약속을 하였습니다. 정말 고마웠습니다. 특히 문재인 후보의 진정성에 다시 한번 감동을 받았습니다. 김초원‧이지혜 선생님의 이름을 정확히 언급하는 그 순간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정말 열심히 잘 싸웠구나. 그래서 이런 날도 오는구나. 그 순간 정말 고마웠습니다.

그리고 우리 역사상 처음 있는 1,700만의 전민항쟁에 의한 정권교체. 5월 13일 날 광화문에서 희생 교사 추모제를 끝내고 초원샘 아버님과 식사 자리에서 누군가 내일 모레 스승의 날 선물로 문재인 대통령이 두 분의 순직인정을 발표했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혹시나 해서 아침부터 TV를 켜고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꿈이 이루어졌습니다. “김초원․이지혜 선생님에 대한 순직을 인정한다. 이것은 국가로서의 최소한의 예우다.” 오전 11시 쯤, 그 순간 초원샘 아버님께 전화를 걸어 같이 대성통곡을 하였습니다. 정권교체가 되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지난 겨울 내내, 아니 지난 세월호 참사 이후 3년간 세월호 가족들과 함께한 광화문을 지킨 시민들이 이루어 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렇게 자부합니다. 어찌 보면 기간제 교사 순직 인정 싸움은 그 한 복판에 있었습니다.

이 글을 전국의 4만 명이 넘는 기간제 교사와 1천만 명이 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한을 담아, 사람에 대한 온갖 차별이 철폐되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김초원․이지혜 선생님의 영전에 바칩니다.

“아이들은 딸을 ‘기간제 교사’로 기억하지 않습니다. ‘선생님’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딸아이가 다른 사람과 똑같은 교사였다는 사실, 교사로서 직분을 다했다는 것, 그것을 인정받고 싶을 뿐입니다.” - 김초원 선생님 아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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