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다라 그리는 김성애 작가. 국내 명문대를 졸업하고 훌쩍 인도로 떠나 13년 동안 공동체 생활을 했다. 그런 그녀가 한국에 돌아와 그간의 여정을 ‘만다라’에 담아냈다.

혼신의 힘 들여 만든 만다라

한순간 없애는 모습에 ‘충격’

“치유, 행복, 긍정 기운 담은

만다라 힘 세상에 전하고파”

삶의 절반을 만다라를 그리며 보낸 김성애 작가가 오는 27일까지 종로 인사동 갤러리 이즈에서 개인전을 연다. “만다라는 내게 삶의 나침반, 안내자와 같다”는 김성애 작가를 지난 13일 서울 조계사 인근서 만났다.

인도 타지에서 뒤늦게 시작한 만학도의 삶, 김성애 작가와 만다라와의 운명적 만남은 네팔과 히말라야 사이 깊숙이 위치한 라다크에서 시작됐다. “1990년 초반, 인도 캘커타 타고르국제대학원에 다니던 때였어요. 방학 때 라다크를 간 적이 있는데 라마들이 만다라를 만드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죠.”

‘만드는 모습’이라기보다 ‘사멸시키는 모습’에 가까웠다. “정성껏 만든 만다라를 강에 뿌리는 모습을 봤죠. 충격이었어요. 만다라를 한번 완성하려면 적어도 4명 이상의 라마들이 한 달 이상을 매달려야 하거든요. 티베트 라마들은 대롱을 통해 여러 색의 돌가루를 채워나가는 방법으로 만다라는 만드는 데 때문에 그 기간 동안 숨 한번 제대로 쉬지도 못해요. 혹여 가루가 바람에 날릴까봐요. 그런데도 일정 시간이 지나면 미련 없이 떠나보내는 거에요. 그것도 아주 덤덤하게.”

이화여대 조소과를 나왔지만 대학시절부터 불교에 관심을 가진 덕에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떠난 인도 유학이었다. 갈 길은 여전히 찾지 못했다. 그 때 라다크에서 만다라를 만났다. 방황은 거기서 멈췄다.

“아, 이런 게 제행무상, 색즉시공이구나”하는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깨달음은 곧 “제일 잘 하는 것으로 세상에 희망을 전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다짐으로 이어졌다. 어린 아들의 손을 잡고 인도 공동체 오로빌(Auroville)에 들어가 세계 각국에서 온 수천명의 사람들 사이에서 ‘만다라를 그리는 사람’으로 이름을 알린 것도 그때다.

“라마들이 만다라를 없애는 모습을 본 그날 이후 제 인생도 많이 바뀌었어요. 어깨에 진 짐이 조금은 가벼워졌다고 할까요. 만물은 결국 머물다가 무너져 허공으로 가는 것, 누구나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다는 것을 깨달은 거죠. 우리네 인생도 결국 한 줌 흙이잖아요.”

13년 동안 오로빌에서 공동체 생활을 해 온 그녀의 또 다른 이름은 김성애가 아닌 ‘사라시자’. ‘물에 핀 연꽃’이라는 뜻이다. 그래서인지 김 작가의 만다라는 복잡하고 어렵지 않다. 한눈에도 단순하고 소박하면서도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가 넘친다. 행복, 창조, 치유 등의 메시지를 담기 위해 따뜻한 색을 주로 쓰는데, 빛을 내뿜으면서도 차분하고 깊이가 있다. 행복한 기운이 넘치는 그녀의 만다라를 바라보다 보면 어느새 긍정의 기운이 몸 안에 가득하다.

“만다라는 힘이 있어요. 만다라를 그리며 저는 마음의 안정을 찾거든요. 치유의 시간인거죠. 마찬가지로 만다라는 바라보는 이의 내면까지 움직여요. 누군가 제가 그린 만다라를 보고 잠시나마 행복과 평화를 느낄 수 있으면 그걸로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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