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선지식 구법여행] 20. 조계종 백년대계본부 사무총장 일감스님

53선지식 구법여행 스무 번째 법사로 나선 백년대계본부 사무총장 일감스님이 조계사 대웅전을 찾은 불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이날 구법여행은 딱딱한 법문이 아닌 ‘내비둬 콘서트’와 같인 불자들의 눈높이에 맞춰 쉬운 언어로 진행됐다.

“나라는 것은 고정돼 있는 것이 아니다. 공기와 바람과 물과 흙 모든 것이 합해져서 나란 존재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늘 주변을 살피고 함께 살아야 행복도 있고, 깨달음도 있다. 주변에 있는 사람을 어떻게 행복하게 해줄까 하는 그런 것을 생각하는 속에 바로 행복한 삶의 향기가 있다.” 조계종 백년대계본부 사무총장 일감스님은 지난 23일 서울 조계사 대웅전에서 열린 53선지식 구법여행에서 법문을 통해 이같이 강조했다. 

53선지식 구법여행 스무 번째 초청법사로 나선 일감스님은 이날 ‘행복한 삶의 향기’를 주제로 법문했다. ‘내비둬 콘서트’를 열어 대중들에게 쉽게 불교를 전했던 것처럼 이날 법문 역시 불자들의 눈높이에 맞춰 쉬운 언어로 진행됐다. 스님은 불자들과 편안하게 소통하기 위해 법상이 아닌 낮은 곳으로 내려왔다. 자연스레 불자들도 스님 주변으로 모여 들었다. 행복한 삶에 대한 스님의 이야기에 불자들은 박수갈채로 화답했다. 다음은 이날 법문내용을 요약, 정리한 것이다.

상대방이 기분 좋아하면 그것이 바로 큰 법문이다. 어디에 가서 옷을 살 때 조금 속아서 비싸게 사더라도 파는 사람이 내 기분을 좋게 해주면 좋은 법이다. 조금 손해를 보는 일이 있더라도 늘 상대방을 기분 좋게 하고 배려하면 된다. 부처님께서는 매번 쉬운 이야기를 하셨지, 어려운 이야기를 하지 않으셨다. 너무 어려운 이야기들은 잘 몰라도 된다.

스님은 출가했으니까 불교 전문가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출가한 스님들도 모르는 일이 많다. 행복하게 잘 살면 된다. 남을 행복하게 해주고 그것으로 내가 행복하면 곧 부처님의 길이자 보살의 길이다. 부처님의 법이 어려운 곳에 있지 않다. 그런 것들은 어려운 분들에게 맡겨두면 된다. 쉬운 것 해야 하겠다 생각하면 불교가 재미있어 진다. 어려운 진리를 깨치려고 하면 어려울 뿐이다. 어려운 것은 조금 몰라도 괜찮다.

조계종에서 일감스님을 아는 분들이 조금 있다. 내가 하는 것 중에 ‘내비둬 콘서트’라고 있다. 잘 하려고 하는 마음, 아이들도 잘 키우려고 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 그러면 나도 스트레스이고, 아이들도 스트레스다. 그러니 그냥 믿고, 잘 하고 있으니 그냥 내버려 두라는 것이다. 여러분도 어렸을 때 말을 잘 듣지 않고 자랐다. 그래도 잘 살았다. 잘하던 못하던 내버려 두면 된다. 우리는 잘 하려고 하는 마음으로 스트레스를 받는다. 걱정하지 마시고 내버려 두면 된다.

오늘은 편안하게 여러분과 이야기를 나누려고 한다. 그래서 오늘 가사를 입지 않고 편하게 하려고 왔다. 53선지식을 찾아가는 것은 선재동자가 찾아가서 묻고, 선지식이 답하는 형식이다. 일방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53선지식 법회에 맞지 않는 것 같아 오늘은 그냥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

출가할 때 이야기로 시작하겠다. 책을 잘 보지 못해서 출가를 하게 됐다. 젊은 날에 이런 저런 문제로 고뇌가 많았던 것 같다. 고뇌가 있을 때면 강원도 월정사에 자주 갔다. 12월31일에 동해 바닷가를 가서 밤새 바다를 바라보았다. 다음날 첫 차를 타고 월정사에 갔다. 무슨 고민이 있었는지 시간만 나면 산에 가고, 절에 자주 갔다.

예불을 마치고 온 스님께서 공양간에 가서 밥을 챙겨주셨다. 그리고 차 한 잔하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쉬고 있으라고 방을 하나 내 주셨다. 그리고 저녁 늦게 나타난 스님께서 책을 한 권 주셨다. 서산대사의 <선가귀감>을 주셨다. 책을 보니까 책이 잘 읽혀졌다.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이 다른 것은 다 안 해도 된다, ‘이뭣꼬’ 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 당시 여러 가지 일로 복잡했다. 서산대사의 말씀처럼 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때부터 ‘이뭣꼬’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됐다. 그날 저녁 책을 3분의 2이상 읽었다. 다음날 아침에 스님이 건너오라고 해서 차 한잔을 하게 됐다. 차를 마시는 도중에 하늘에서 눈이 꽃처럼 내렸다. 눈이 내리는 모습을 물끄러미 보면서 내가 출가를 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출가를 생각하고 나니 부모님이 마음에 걸렸다. 내가 출가를 하면 부모님이 슬퍼하시겠구나 고민을 하고 있는데 마치 스님께서 내 마음을 꿰뚫어 본 것 같다. 스님께서 “모든 것이 인연따라 이뤄진다”고 하셨다. 부모님도 인연으로 만났다고 생각하니, 인연따라 헤어질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겁게 생각하지 말고 출가를 결심하게 됐다.

돌아보면 사실 내가 편리한대로 생각한 것이다. 언제 이야기를 할까 기회를 보고 있었는데 아버님께서 갑자기 아프셨다. 기회라고 생각했다. 아버님 간호를 위해 직장을 그만두고 시골집으로 내려왔다. 아버님께서 난리를 하셨다. 어머님도 마찬가지였다. 사표를 쓰고 왔다고 하고 며칠을 버텼다. 그렇게 부모님 마음을 아프게 했다. 그리고 한 달 동안 부모님을 설득하고 출가를 하게 됐다.

출가를 생각하고 바로 출가를 하지 못했다. 출가가 무엇일까. 궁금했다. 그래서 서울로 올라와 조계사에 갔다. 조계사 청년회 내에 구도부가 있다. 당시 구도부는 누구보다 열심히 정진했다. 나중에 수선회로 발전했다. 구도부에 따라다니면서 주말마다 산에 가서 참선을 했다. 그 때는 조계사에서 선사 스님들이 법문하셨다. 법문 뒤에는 용맹정진 참가자를 모집했다.

당시 불교는 잘 알지 못했지만 용맹정진을 모집하는데 원서를 썼다. 나중에 보니 나만 초보자였다. 나머지는 모두 경험이 많았다. 일주일 용맹정진을 하는데 출가를 앞두고 있다 보니 잠이 오질 않았다. 절박함이 있어서였다. 무슨 일을 하더라도 절박함이 있으면 잠이 오질 않는 법이다. 진짜 고민이 생기면 머리가 아니라 온몸이 같이 고민하는 법이다.

부처님이나 관세음보살님이나 미륵보살님께서 항상 평안하실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여러분이 할아버지, 할머니라고 생각해보자. 항상 편안할 것인가. 그렇지 않다. 손자손녀들 생각에 늘 걱정이 있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손자소녀들을 늘 걱정한다. 걱정이 없으면 할아버지, 할머니 자격이 없다. 손자가 없는 할아버지를 봤는가. 손자가 없으면 그냥 아버지다. 그 자체로 대단한 것이다. 걱정을 하다보면 긴장되는 부분이 있다.

참선도 마찬가지다. 참선을 할 때도 화두를 드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차이가 나기 마련이다. 어떻게든 화두를 든 사람은 표가 난다. 몸이 긴장이 돼 있다. 그렇게 몸을 깨어 있게 하는 것이다. 몸동작은 긴장시키고 마음의 눈은 배꼽 밑에 단전에 두고 화두를 드는 것이다. 살아있음이 없으면 상기가 된다. 공부도 옳게 되질 않는다. 항상 어떤 수행을 하던지 머리가 배꼽 밑 단전에 있다고 생각하고 수행을 해야 한다.

부처님 법은 어디에나 있다. 법당 안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깨달은 큰 스님이나 우리 모두에게 부처님 법이 있다. 다만 깨닫지 못해서 그것을 발견하지 못했을 뿐이다. 부처님 법은 여기도 있으면 저기도 있다. 산 사람에게 있으면 죽은 사람에게도 있다. 스님에게 있으면 목사에게도 있다. 불교에 있으면 불교 아닌 곳에도 있다. 지구 안에 있으면 지구 바깥에도 있다. 그래야 우주에 가득한 부처님 법이다. 그래서 부처님 법은 보편적이다, 우주에 가득하다 이야기하는 것이다. 부처님 법은 우주에 늘 가득하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문제는 내 입장에서만 생각하면 부처님 법을 잘 모른다는 것이다. 기준을 어떻게 세우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내 입장을 벗어나서 생각해보면 기준이 없기 때문에 쉽게 답을 이야기 할 수 없다. 다른 사람에서 입장을 모르니까 쉽게 대답할 수 없는 것이다. 기준에 따라 다른 것이다. 기준을 어떻게 세우느냐에 따라 답이 달라진다. 내 입장을 벗어나서 생각하면 어떤 것도 기준이 없으니 답이 없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이냐. 보편적인 생각이라는 것이 있다. 

해인사 일주문에 가면 ‘역천겁이불고(歷千劫而不古) 긍만세이장금(亘萬歲而長今)’이라는 주련이 있다. ‘수많은 세월이 지났으나 과거라고만 할 수 없고 앞으로 한량없는 미래가 있으나 지금 여기에서 출발한다’는 뜻이다. 내 조상님들 돌아가셨지만 조상들의 지혜와 경험이 아버지, 어머니를 통해 내게 그대로 다 있다. 또 그대로 후손들에게 전해진다. 내가 지금하는 행동, 생각은 내 것이기도 하지만 부모님의 인생이기도 하고, 후손들의 인생이기도 하다. 그래서 내 인생을 즐겁다고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절제해야 할 때도 있고,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어도 견디고 해야 할 때도 있다. 

부처님께서는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잘 구분하는 것, 이것을 계율을 지킨다고 말씀하셨다.<금강경>에 ‘무유정법(無有定法)’이라는 말이 나온다. ‘하나로 정해진 것은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뜻이다. 이것이 무유정법이다. 정해진 것이 없으니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것은 아니다. 이것이 좋은 일인가, 아닌가. 도움이 되는 일인가, 아닌가. 나와 남을 좋게 하는가, 나쁘게 하는가. 깨달음을 얻게 하는 길인가, 무명으로 떨어지게 하는 길인가. 괴로움이 생기는 일인가, 즐거움이 생기는 것인가. 이것은 생각해 보면 기준이 나온다. 어떤 일을 할 때, 그 일을 해야 하는가, 안 해야 하는가는 옆의 사람에게 물어보면 된다. 어려운 문제는 부모에게 물어보면 된다, 자식들에게 물어보면 된다. 그런 것이 기준이 된다. 기준을 잡을 때 내게 기준을 두지 말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기준을 두게 되면 답이 쉽게 나오는 법이다.

진정한 삶의 향기는 무엇일까. 살면서 탐욕과 욕심과 어리석음을 늘 내려놓는 것, 그런 노력을 늘 하는 것, 그런 속에 삶의 향기가 우러나는 것, 이것이 삶의 향기다. 진정한 행복은 사람에 따라 다 다를 수 있다. 될 수 있으면 과도한 성냄, 잘못된 성냄을 내려놓는 것이 좋다. 욕심도 마찬가지다. 욕심도 너무 과도하면 안 된다. ‘욕심을 전혀 내지 말라’고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다. 욕심을 내다보면 마음에 괴로움이 생길 때가 있다. 힘들지 않을 정도로 적당하게 너무 과도하게 내지 말아야 한다. 어리석은 생각도 늘 돌아보고 내려놓는다. 쉽게 말해 탐진치(貪瞋癡)에 대해 늘 생각해야 한다. 거기에서 행복을 찾기 쉽다.

부처님께서는 깨달음이나 행복을 내 몸에서 찾으려고 하는 사람은 어리석다, 남을 남이라고 하는 사람은 어리석다, 우리끼리라고 하는 사람은 어리석다, 나라고 하는 존재가 영원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어리석다는 말씀을 하셨다. 나라는 것은 고정돼 있는 것이 아니다. 공기와 바람과 물과 흙 모든 것이 합해져서 나란 존재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늘 주변을 살피고 함께 살아야 행복도 있고, 깨달음도 있다. 보살행을 하는 사람은 주변에 있는 사람을 어떻게 행복하게 해 줄까 그런 것을 생각하는 속에 행복한 삶의 향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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