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29일 봉행된 정토재. 불교문화재연구소는 오는 11월까지 서울 도봉구 도봉동 512 일원에 소재하는 도봉서원 즉 옛 영국사지 하층 발굴정밀조사를 실시한다.

조선시대 유교 문화 중심지 도봉서원

복원 사업 도중 불교 유물 대거 출토

정밀조사필요 판단, 2014년 사업중단

 

불교문화재연구소, 지난달 재조사 착수

오는 11월 조사결과에 따라 논쟁일 듯

3년 전 유교 서원에서 불교 의식에 쓰는 금동제 금강저와 금강령 등 국보급 유물이 대거 발굴됐다. 청동제 뚜껑항아리와 뚜껑합, 현향로·부형대향로·수각향로 등 다양한 형태의 향로, 세(세숫대야형 용구), 향완(향 피우는 그릇), 대부완(굽 달린 사발), 발우, 대접, 숟가락 등 종류도 다양했다. 출토된 불교 유물은 모두 77점. 조선 시대 유교 문화의 구심점이었던 도봉서원이 영국사를 허물고 지어졌다는 사실이 처음으로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불교문화재연구소가 지난 6월29일 정토재를 시작으로 서울 도봉구 도봉동 512 일원에 소재하는 도봉서원 즉 옛 영국사지 하층 발굴정밀조사에 들어갔다. 계획대로라면 이르면 오는 11월 조사를 마치게 된다. 서원 터에서 고려 시대 불교 유물이 대거 출토된 사례는 국내선 처음인데다 지난 2014년 불교와 유교 간 의견 차로 사업이 잠정 중단 됐던 터라, 이번 재조사 결과에 따라 도봉서원 복원 사업은 전환기를 맞게 될 예정이다.

도봉서원은 조선 시대 숭유억불 정책으로 영국사를 허물고 지어진 유교 서원이다. 서울에 소재한 현존하는 유일 서원으로 도봉산 입구 등산길에 오르다보면 우측 옛 영국사터에 위치해있다. 조선 시대 유교 사상가 조광조를 추모하기 위해 창건했다고 알려져 있으며 송시열을 추가로 배향(공신의 신주를 모시는 일)한 서원이다. 임진왜란으로 전소됐다 1871년 서원철폐령으로 헐어내기까지 약 260여 년간 유지됐으며 1970년 사우(제향 장소)가 복원되면서 유림들이 복설을 주장해왔다.

이 같은 요구에 도봉구도 총면적 4129㎡에 이르는 이 도봉서원 터를 유교문화관광자원으로 활용할 계획을 세워왔다. 도봉구가 세운 복원정비계획에 따라 서울문화유산연구원은 지난 2012년 5월부터 9월까지 유적 성격을 파악하는 시발굴 조사를 실시했다. 그러나 조사 중 산기슭 터에서 뜻밖에도 불교 유물이 대거 출토 됐고 2014년 이같은 조사 결과가 알려지면서 유교와 불교 간 의견 차가 발생하며 사업은 중단됐다.

실제로 율곡 이이(1536~1584)의 <율곡전서>와 고산자 김정호(미상~1866)의 <대동지지> 등의 상당수 문헌들은 “영국사 옛 터에 도봉서원이 세워졌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당시 출토된 불교 유물 중에는 고려 시대 금속 미술의 높은 수준을 보여주는 국보급 불교의식 용구도 있었다.

도봉서원 터에서 출토된 불교 유물들. 사진=서울문화유산연구원 학술총서 <도봉서원> 발췌.

그중에서도 불교 유물이 대거 발굴된 장소는 5호 건물지 기단. 출토된 유물 가운데는 영국사 이전에 있던 것으로 추정되는 ‘도봉사(道峯寺)’의 흔적을 간직한 청동제기도 있었다. 서울문화유산연구원은 “발굴된 청동제기들은 도봉사의 유물로 영국사가 건물을 조성할 당시 종교적 제의 행위를 위해 ‘도봉사’ 제기들을 이용하고 매납한 것으로 추정된다”며 “도봉서원 유적은 이전 시기 존립하던 영국사를 상당 수준 파괴하고 조성된 조선시대 서원건물지로 볼 수 있다”는 결과를 내놨다. 서원을 짓기 위해 영국사를 폐사했고 그 이전에는 또 다른 사찰, 도봉사가 있었음을 시사한 것이다.

이를 두고 조계종은 불교탄압의 상징으로 복원사업의 전면 재검토와 추가 조사를, 도봉서원 유림은 서원 복원을, 서울시 문화재위원회는 추가 조사의 필요성을 역설해왔다. 서울문화연구원 또한 당시 도봉서원 복원 방향으로 영국사 유물 발굴지를 중심으로 불교 유물 전시실을 따로 마련하고 도봉서원 주요 시설을 복원하는 절충안을 제안한 바 있다.

지난달부터 불교문화재연구소가 정밀 발굴 조사에 들어감에 따라 중단됐던 도봉서원, 옛 영국사 터 조사 사업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될 전망이다. 불교문화재연구소장 제정스님은 “서원을 짓기 위해 고려시대의 중요한 사찰을 폐사시켰다는 사실이 확인됨에 따라 역사적 진실과 정체성을 찾기 위한 추가 조사가 이뤄질 것”이라며 “근거 없는 성급한 복원 보다는 추가 조사에 따른 명확한 사실 관계 확인이 우선 이뤄져야 한다는 점에 기반해 정밀 조사를 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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