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주 광동고 ‘청소년 마음찾기 북 콘서트’ 현장

야자에 학원에 잠못자고 입시에만 매달려도 좋은 대학은 꿈도 못꾸고 나날이 지쳐가는 대한민국 ‘고딩’에게 어른들이 기껏 힐링 차원에서 하는 말. “너는 이 세상 주인공이야”, “꿈을 포기하지마!”, “아프니까 청춘이고”…. 불교심리상담가 임인구 씨는 잠깐 위로에 그치는 말잔치는 의미없다고 말한다. 이어 추운 겨울 길거리를 떠도는 굶주린 새끼고양이 이야기를 꺼냈다.

“후덜덜 떨고있는 아깽이(아기고양이)를 보면, 가난한 호주머니라도 털어 따듯한 우유나 참치통조림이라도 사먹이고 싶을 겁니다. 고양이를 푸근하게 감싸주고 집에 데려가 하룻밤 뜨시게 쉴 수 있도록 보살피고 싶죠. 만약 아기고양이가 이런 배려와 정성을 받는다면 고양이의 삶은 분명 달라질 겁니다. 건강하고 행복해지겠죠. 하지만 춥고 배고파 죽어가는 아기고양이 앞에서 두 주먹 불끈 쥐고 ‘아자 아자! 힘내!’ ‘너는 할 수 있어’ ‘이 시련만 넘기면 변호사 고양이가 될 수 있어!’ 이런 말들이 무슨 소용일까요? 여러분은 바로 이 아기고양입니다. 내 자신이 불우하고 슬프고 안쓰럽다는 말을 실감하고 스스로를 정성으로 귀하게 대해 보세요.”

가장 행복한 추억으로 물들여야 할 고교시절이지만, 요즘 학생들은 대학입시와 불안정한 미래로 인해 우울해 하고 아픈 삶을 살고 있다. 사진=신재호 기자

불우하다는 말이 영 마음이 걸렸는지 고3 세린이가 마이크를 청하더니 “내가 불우한 삶을 산다고 생각하진 않는다”며 “그렇다고 성적은 나락으로 떨어지는데 무작정 귀하다고 최면을 걸기도 어렵다”며 울먹였다. 

임인구 씨는 세린이의 용기에 일단 박수를 보내면서, “내 기분과 감정, 느낌을 소외시킨 채 다른 누군가를 만족시키려고 우리 스스로 만들어놓은 기준에 달성하려는 욕심, 그래서 우리는 불우한 것입니다. 시험을 망쳤다 해도 내 한계에서 최선을 다한 결과라면 비난 따위는 무시해도 됩니다. 우리 부모님이 재벌이 아니어도 그 한계에서 나에게 할 수 있는 건 다 주려고 하시잖아요. 비록 망친 시험이라도 스스로 고생했다 하면서 떡볶이 먹을 때 순대라도 덤으로 시켜먹고 예쁘고 멋진 티셔츠 하나 사입고….” 세린이가 웃자 객석 학생들 표정에도 웃음이 번졌다.

불교심리상담가 임인구씨가 광동고 학생 150여명과 집단상담 형식의 ‘마음찾기 콘서트’를 하는 모습.

지난 18일 남양주 광동고 소강당에서 열린 ‘청소년 마음찾기 북콘서트’ 현장이다. 불교신문이 조계종 포교원과 백년대계본부 등과 손을 맞잡고 연 자리에는 광동고 학생 150여명이 모여 앉았다. 최근 나온 책 <내 마음, 어디까지 알고 있니?(불교신문 刊)>의 저자이자 불교사상을 접목한 ‘실존상담’으로 불교상담계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임인구 박사가 무대에 올라 ‘150:1’로 학생들과 마음을 나눴다. 선착순으로 참가한데다, 사전에 익명으로 자기 고민을 털어놓은 후라 참가자들의 눈빛은 반짝였고 분위기는 금세 달아올랐다.

아주 어렸을 때 교통사고로 부모님을 잃고, 부모 없는 사실을 들키는게 부끄러워 친구도 없이 오락실만 전전하며 보냈던 임 씨의 유년시절 이야기 앞에서는 모두 숨을 죽였다. “부모도 없는데 이번생은 망했다고 생각했죠. 다시 태어나고 싶었고. 애초부터 금수저로 태어나 잘사는 애들은 따로 있는데 내 인생은 답이 보이지 않는다며 홀로 서럽게 울면서 쓰러졌습니다.” 

취업도 안되고 바닥까지 떨어져 나간 뒤 서른이 다 돼서야 “내가 아주 조금 좋아하는 거라도 하고 죽자”는 생각이 들었고 뒤늦게 상담의 길에 접어들어 비로소 “내 스스로가 좋아하는 일로 삶을 채색했다”고 고백하자 학생들은 너나없이 박수갈채를 보냈다.

이번에는 또다른 고3 수험생 은미가 마음을 열고 긴 얘기를 털어놓았다. “…못가도 ‘인(in) 서울’은 가겠지 하고 장담했는데, 4년제라도 하다가, 이제는 전문대는 갈 수 있을까 걱정이 많아요. 부모님과 친구들에겐 아무렇지 않게 대하지만, 스스로는 갈수록 위축되는 것 같아 힘들어요….” “은미는 이야기하니까 기분이 어때요?” “후련하면서 부끄러워요.” “참 좋은 상태군요.” 우울한 이야기인데도 좌중은 웃음바다.

남양주 광동고 학생들이 마음찾기 콘서트에 앞서 익명으로 제출한 자신의 고민거리들. 대부분 학업스트레스와 진로에 불안정에 관한 고민이다.

이쯤되자 임인구 씨는 이른바 진학심리상담가로 돌변했다. “여러분은 어린 나이에 어쩌면 그렇게 마음 따듯하고 상냥하신가요? 부모님의 기대, 선생님의 기대, 다른 어른들 친구들 주변 사람들까지 다 만족시키려 하시고. (갑자기 주머니에서 꺼낸 동전 몇 개를 손에 담더니) 이렇게 하면 동전소리가 짤랑대고, 이렇게 꽉 쥐고 있으면 소리가 나지 않지요. 여러분이 짤랑대는 고민이 많다는 것은 마음의 여유가 그만큼 넉넉하다는 증거입니다. 문제가 아니고 아픔이 아니에요. 스스로 엄청나게 큰 존재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인 서울’ 대학에 들어간다고 해서 풍요로운 삶이 보장된 것도 아니요, 지방대 전문대를 나왔다고 가난하고 허접한 삶이 기다리는 게 아니란 사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접어두고 다른 사람들이 쳐주는 일을 해주려는 ‘착한’ 마음이 스스로의 인생을 뒤편으로 미루는 행위라는 것에 아이들은 조금씩 수긍했다.

2부로 넘어가면서 임인구 씨는 또 한번 ‘화두’를 던진다. “여러분 스스로가 얼마나 귀한지 망각했을 때 일어나는 여러 가지 문제들이 바로 지금 여러분의 고민입니다.”

아이들의 고민은 대부분 학업스트레스와 진로에 불안정이다. 부모가 자신에게 들이는 사교육비가 적지 않은데다, 지금까지 남부러울 것 없이 키워줬는데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자신을 탓하는 목소리들이다. 임인구 씨는 과거에 만났던 청소년들과의 상담사례를 소개했다.

“공부도 안하고 운동도 안하면 부모님 기준으로는 아무것도 안하는 아이로 취급받죠. 하지만 우리는 아무것도 안하는 듯 하지만 뭘 하고 살아요. 틈나면 아이돌 뮤직비디오만 봤던 J는 그들이 옷입은 거에 유독 관심이 많더니 코디네이터가 됐고, Y는 케이온 광팬인데 기타사운드만 집중하다 뮤지션이 됐어요. 부모님도 알고보면 여러분의 편이 되기 위해 준비하고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성적에 매어서 압박감에 쫓기면서 무작정 달려가는 것보다 내 일상에서 내가 무엇을 가장 많이 하고 있는가, 그토록 좋아하는 일이 곧 진로가 됩니다. 너무 쫄지말고 걱정하지 마세요. 그렇게 먹고 살게 됩니다.”

고2 현정이는 여전히 갸웃거리면서 “그래도 부모님의 마음을 따르기도 돌리기도 쉽지 않다”고 한다. 

“부모님과 내가 같은 것을 좋아하면 문제가 없어요. 어릴 때는 줄곧 부모님이 좋다는 거 해주면 나도 좋았는데 이제 부모님의 행복지점이 나와 다름을 느낄 겁니다. 우리는 부모님과 다른 것을 좋아하는 내 자신도 부모님께 사랑받을 수 있을까 두려워하죠. 겁먹지 마세요. 일단 부모님 마음을 이해하세요. 우리도 친구가 내가 싫어하는 애랑 친해지면 그러지 말라면서 억압하잖아요. 그런 마음을 너그럽게 이해하고 내가 어떤 걸 좋아하는지 명확하게 알리고 잘 설득해 보세요. 사춘기는 내가 부모님보다 더 큰 어른이 될 수 있구나 발견하는 순간입니다.”

고등학교 들어와 첫 학기를 보낸 경화는 “친구들은 괜찮은 것 같은데 나만 아직 학교적응을 못하고 공부집중도 안되고 영혼없이 학교와 집을 오가는 것 같다”며 “엄마한테 괜찮은 척 하려니 더 지치고 이제는 어디 멀리 도망가고 싶다”고 말했다. 

“힘든데 괜찮은 척 한다고 부모님이 모를까요? 괜찮은척 한다고 부모님이 마음을 놓는게 아니라, 내 딸이 생생하게 웃으며 태어나서 행복하고 세상이 이렇게 재밌는줄 몰랐다는 표정이 진정 부모님이 원하는 경화의 모습 아닐까요?” 경화의 고민은 물론이고 앞서 현정이 은미 세린이의 걱정도 사실 모두가 안고 사는 아픔들이었다.

“엄마 아빠가 널 키우려고 엄청나게 희생했다는 말을 들으면 여러분은 행복한가요? 죄인같은 기분만 들지요. 누군가의 불행이나 희생으로 누군가가 행복해질 수는 없습니다. 오늘 집에 가서 엄마에게 솔직하게 말해 보세요. 요즘 힘들다고. 세상에 아무도 내 편이 없는데 어떻게 해야 하냐고. 마음편히 쉬고 기댈 곳이 없는 외로움과 힘겨움이 바로 여러분이 부모님에게 전해야 할 가장 중요한 마음입니다.”

150분이 넘는 시간 동안 불교심리상담가 임인구 씨는 ‘불교’라는 말을 한번도 쓰지 않았다. 다만 “끊임없이 여러분의 삶에 대해 의심해 보라”고 조언했다. “내가 못나고 부족해서 무조건 잘나져야 하고 유능해져야 한다고 추궁하기보다, 내가 정말 못난 존재인지, 어쩌면 괜찮은 존재로 나아질 수는 없는지, 못난 나 자신을 드러내면서 못난 나도 괜찮을 수 있다고 여기면서 평온하게 숨쉴 수 있는 자리를 발견해보자”고 힘주어 말했다.

콘서트는 막을 내렸지만 아이들은 무대 뒤까지 찾아와 종종걸음으로 자기 마음 속 아픈 응어리들을 풀어헤쳤다. 임인구 씨는 한명씩 정성을 다해 상담했고, 인터넷 카페와 이메일을 전하면서 이들의 손을 놓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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