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도 각자 연령대별로 

역할과 책임이 다르다

시간과 더불어 역할도 

변해야 하는 것이지 

시간의 흐름에도 세대 간의 

선순환을 무시하고 

자신만을 고집할 일은 아니다

사회 각 분야가 적기에 

세대 간의 역할 교체가 

활발히 이루어질 때 

구조적 선순환으로 진정한 변화와 

발전도 가능할 것이다

미국 노스케롤라이나 듀크대학 연구진이 문명과 동떨어져 사는 아프리카 탄자니아 하드자족의 생활상을 관찰한 결과, 50~60대가 새벽에 일찍 깨어있는 현상을 발견했다. 이는 초기 인류에게 야행성 맹수가 가장 큰 위협이었을 것이며 부족의 주축에서는 물러났지만 나름 노인의 다른 역할을 위해 나이가 들면서 잠이 줄어드는 것으로 봤다. 이는 몸의 이상이 아니라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생긴 인류 진화의 유산이라고 하면서 이를 ‘잠 못드는 조부모 가설’이라고 했다는 기사다. 즉, 할아버지의 새벽잠이 없어진 건 맹수로부터 가족을 지키려는 공동체 보호 본능이라는 것이다.

영화 ‘집으로’는 깍쟁이 같은 도시 소년이 어느 날 엄마와 헤어져 산골 오지에서 벙어리 외할머니와 살게 되면서 겪게 되는 애환을 훈훈하게 그려낸 자연주의 영화다. 늙고 허리 꼬부라진 할머니는 낯설고, 툇마루는 더럽다는 아역 배우는 외할머니와 크고 작은 갈등을 겪으면서 나중에는 70년의 세대 간 간극을 극복하는 자연 속의 휴머니티를 그리고 있다. 치킨을 먹고 싶어 하는 손자를 위해 솥에 닭을 넣고 푹 끓여 백숙을 내놓는 할머니에게 손자는 기겁을 한다.

얼마 전, 1년여 만에 미국에 사는 두 돌 지난 외손녀가 딸과 함께 왔다. 보내주는 동영상으로만 보던 녀석을 직접 볼 수 있다고 생각하니 버선발로 내달리듯 공항으로 마중 나갔으나 만나는 순간부터 기대는 어긋났다. 내 생각만으로 덥석 안았다가 싫다고 소리치며 우는 바람에 깜짝 놀랐다. 낯을 몹시 가리는 턱에 엄마 뒤꽁무니에 숨을 뿐, “노(No), 노(No)”하면서 도무지 접근할 수 없었다. 보름여 같이 지내는 동안 결국 잠 잘 때만 겨우 손이라도 만져 보았을 뿐 재롱조차 없이 다시 미국으로 보내야만 했다. 그런데 작은 딸과는 금세 친해져서 헤어지고나면 이모 재미있다고 찾는 것을 보니 서운하기도 하지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천진한 어린애의 눈에 모든 것이 정확하게 있는 그대로 투영되는 것이다.

우리 사회도 각자 연령대별로 역할과 책임이 다르다. 젊은이는 젊은이대로, 노인은 노인대로 시간과 더불어 역할도 변해야 하는 것이지 시간의 흐름에도 세대 간의 선순환을 무시하고 자신만을 고집할 일은 아니다. 전성기의 주연 배우도 세월이 가면 조연으로 물러나지만 농익은 연기력으로 작품에 활력과 재미를 줄 수 있는 것이다. 주연보다 더욱 빛나는 조연을 흔히 본다. 할아버지가 돼 주역에서는 물러나도 새벽에 일찍 일어나 공동체의 안전을 위해 경계를 서듯이 세월의 흐름에 따라 배턴을 물려주고 또 다른 역할을 찾는 것이 마땅하다.
 새 정부 출범 후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상당한 비판이 있었으나 그런대로 새 얼굴들이 등장하니 전 정권에 비해 그나마 다행이다. 적어도 80 산수(傘壽)를 바라보면서도 비서실장이라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나서는 이는 없어서 다행이다. 정부의 장차관 인사가 어느 정도 마무리 되고 이제 공공기관장 인사를 앞두고 있다. 앞으로도 시간과 세월의 흐름을 인정하지 않고 남은 여생동안 마지막 봉사의 기회라 생각하고 최선을 다하겠다는 허황한 수사로 배턴을 내놓지 않고 버티는 인사가 없었으면 한다. 

역할이 끝난 세대의 최선은 후진들에게 길을 터주는 것이다. 특히 공공기관을 비롯한 공직의 길은 때가 되면 당당한 뒷모습으로 홀연히 다른 길로 들어서는 것이 후진에 대한 도리이다. 공공부문을 비롯한 사회 각 분야가 적기에 세대 간의 역할 교체가 활발히 이루어질 때 구조적 선순환으로 진정한 변화와 발전도 가능할 것이다.

[불교신문3317호/2017년7월26일자] 

하복동 논설위원·동국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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