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현대 단절 없이 이어온 불교의식

2014년 처음으로 일반에 공개된 전통불복장 의식의 한 장면. 불교신문 자료사진

문화재청, 종목 지정 결정
고려부터 700년 전통 이은
독자성과 형식미 높이 평가

한국 독특한 ‘살아있는 문화유산’ 
전승자 부재 제각각 의식은 한계

불상이나 불화를 조성하기 앞서 그 안에 여러 물건을 봉안하는 불복장 의식이 국가무형문화재에 이름을 올린다. 전수자 고령화와 전승자 감소에 따라 한국의 독자적 전통을 지켜왔던 불복장 명맥이 끊어질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불복장 전통을 되살릴 수 있는 기반 마련과 함께 이를 계기로 세계문화유산 등재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점도 긍정적이다. 

문화재청은 지난 10일 ‘불복장 작법 종목 지정 및 보유단체 인정 조사 공모’를 마쳤다. 심의를 마치고 나면 한달 간의 예고기간을 거쳐 ‘불복장 작법’의 국가무형문화재 종목 지정이 확정된다.

문화재 신규 종목으로 지정될 불복장 의식은 불상 내부에 봉안하는 여러 물목, 그리고 물목을 불상 내 납입하며 행해지는 의식 과정을 통칭한다. 부처님 사리를 비롯해 오보병, 오곡, 오약, 오향, 오색사 등 13가지 물목 100여 개가 일정 의식을 통해 봉안됨에 따라 불상은 비로소 예배의 대상으로서 의미를 가지게 된다. 사찰에서 내밀하게 세대 간 전승돼 온 이 복장의식은 조선시대 경전 <조상경> 등에 따라 스님을 통해 개별 전승돼 왔다. 

문화재청의 이번 종목 지정 결정은 대대로 이어온 기술과 지식, 의례 등 불복장 의식과 관련된 문화 전체를 아우른 판단이다. 역사성, 예술성, 고유성 등 여러 측면에서 보호해야할 가치가 높다고 판단한 불복장 의식을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해 이를 체계적으로 보존하고 전승하기 위함이기도 하다.

앞서 지난 4월 문화재청 무형문화재위원회는 불복장 작법의 국가무형문화재 종목 지정 가치에 대해 논의한 바 있다. 문화재청 무형문화재위원회는 불복장 의식이 ▲고려시대부터 현재까지 맥을 이어오고 있는 의례로 700년 이상의 전통을 지녔다는 점(역사성) ▲무형(의식)을 통해 유형(불복장)의 전승을 이어가는 독특한 한국문화로 미술사, 서지학, 사학, 불교사상, 복식분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접근이 이뤄지고 있다는 점(학술성) ▲<조상경>을 통해 이른 시기부터 의궤로 정립, 하나하나마다 사상적·교리적 의미가 부여돼 있다는 점(예술성) ▲불복장 의식이 확립된 나라는 티베트와 한국 두 곳 뿐인 상황에서 한국 전통문화로서의 대표성이 높다는 점(대표성) 등 국가무형문화재로서의 가치를 높이 샀다.

한국의 복장물과 복장의식은 다른 불교 국가에서도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독자적 문화유산임에도 그동안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 고려시대부터 사찰을 중심으로 스님들이 그 명맥이 끊어지지 않도록 개별로 노력해왔음에도 시대 변화 속에서 점차 희미해져갈 수밖에 없었다. 특히 일제강점기와 근대화를 거치며 복장 물목은 소박해졌다. 절차 또한 간소화됐다. 

전승의 맥은 점차 사라져갔다. 복잡하고 어려운 설행 의식을 배우려는 스님은 많지 않았다. 의식을 익힌다고 해도 설행하는 데 있어 제대로 된 물목과 의식구를 갖추기 힘들었다. 불복장을 구성하는 13가지 물목 가운데 오보리수엽과 오길상초 등은 한국에서 구할 수 없는 품목. 제각기 다른 물목과 의식으로 설행되면서 의식의 통일화도 시급해졌다.

불복장 전통을 경시하는 풍조도 생겨났다. 팔엽도, 천원도 등 복장물에 들어가는 물목을 모두 스님이 직접 쓰고 색을 칠했던 예전과 달리 요즘에는 인터넷에 접속해 클릭 몇 번으로 복장 유물을 손쉽게 구하기도 한다. 불복장 의식 전수자들은 “칼라 복사를 하거나 공장에서 일괄로 찍어낸 물목과 의식구를 사용해 복장물을 납입한다면 불복장 의식의 의미와 취지를 스스로 퇴색시키는 것과 다름 없다”고 입을 모은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에 따르면 복장의식을 제대로 설행할 수 있는 스님은 5명에 불과하다. 2014년 설립된 대한불교전통불복장및점안의식보존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무관, 성오, 도성, 경암스님과 태고종 수진스님이 전부. 

종단에서는 2013년부터 불복장 의식의 안정적 보존과 전승에 나서기 시작했다. ‘불교무형문화유산 보호 및 전승에 관한 령’을 제정해 제도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고, 그 다음해인 2014년에는 그 첫걸음으로 보존, 전승에 필요한 기초자료 구축에 나섰다. 같은 해에는 종단 최초로 전통 불복장 의식 시연회를 통해 그간 사찰에서 내밀하게 세대 간 전승돼 왔던 불복장 의식을 일반에 공개하기도 했다. 국보나 보물에 가려 관심 밖에 밀려 있었던 무형문화유산을 제대로 평가하기 시작한 것이다.

문화재청의 국가무형문화재 종목 지정 결정에 따라 불복장 의식의 가치가 재조명되고 있지만 아직까지 보존과 전승을 위한 체계적 틀을 갖추기에는 할 일이 많다. 대한불교전통불복장및점안의식보존회 스님들은 마땅한 전수자가 없다는 점을 공통적으로 지적한다. 불복장 의식이 후대까지 이어지고 제대로 된 평가를 받으려면 무엇보다 전통의식을 보존하고 전승하기 위한 전수자 양성이 시급하다는 뜻이다. 

전승자 스님들마다 차이가 있는 의식 과정이나 복장에 들어가는 물목 등에 대해 일관되고 통일된 기준안을 마련하는 것도 과제다. 점안의식은 근대 불교의식을 집대성한 <석문의범> 발간 이후 체계적으로 정리되고 통일됐지만 불복장 의식은 아직까지 그렇지 못하다. 

대한불교전통불복장및점안의식보존회장 경암스님은 “사찰에서 복장 의식을 행할 때 물목을 어느 정도 통일하고 설행 의식에 있어서도 체계성을 갖출 수 있도록 하는 일이 시급하다”며 “이번 무형문화재 종목 지정을 계기로 이를 지속적으로 정립하는 작업을 해나가야 한다”고 했다. 

불복장 의식은 고려시대 시작된 이래 조선을 거쳐 근대와 현대에 이르기까지 단절 없이 이어져 내려온 불교의식이다. 스님은 “티베트를 제외하면 현재 동북아 삼국에서 체계적이고 확고한 의식으로 정립돼 전승되어온 경우는 한국이 유일하다”이라며 “이웃나라 일본이나 중국의 경우 이 의식이 지속적으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일정 정도 정형화 작업 등을 거치면 무형문화재 뿐 아니라 세계문화유산도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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