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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신문이 만난 사람] 권성하 서예가

기사승인 2017.09.11  11:3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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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필로 인정받는 날까지 연습 또 연습”

경허스님의 선시를 써내려가는 권성하 서예가.

“화선지를 펼쳐 놓고 붓을 들고 있으면 백척간두에 서 있는 기분이 들어요. 무엇으로 하얀 종이를 채울까 하는 고민과 동시에 백지를 채울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제 자신뿐이기 때문입니다. 글씨를 잘 써야한다는 마음까지 내려놓고 집중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서선일여(書禪一如)가 됩니다.” 최근 한국미술협회가 주최한 제36회 대한민국미술대전 서예부문 2차 심사위원장을 지낸 권성하(66, 법명 선당) 서예가를 지난 8월31일 서울 하계동 연촌서예학원에서 만났다. 불암산 붓대바위가 보이는 이곳에서 30년 가까이 서실을 운영하고 있는 그는 지금까지 배출한 학생제자만 1000여 명에 달한다.
자랄 때 글씨를 잘 쓴다는 칭찬을 들었지만 스스로 서예가가 되겠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다고 한다. “칭찬을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처럼, 칭찬을 받으면 받을수록 더 잘 써야겠다는 욕심이 생겨서 연습하던 게 시작이었다. 일찌감치 집안에서 필력을 인정받아 어른을 대신해 지방까지 도맡아 쓰게 됐다. 그의 실력은 군대에서도 두각을 드러냈다.
요즘이야 컴퓨터가 발달하면서 PPT 프로그램으로 발표하는 게 일반화됐지만, 1970년대만 해도 커다란 전지로 차트를 만들어 보고하던 시절이었다. 그러다보니 글씨를 잘 쓰는 사람은 어디를 가나 각광을 받았다. 그 역시 마찬가지다. 함께 입소한 논산 육군훈련소 훈련병 가운데 가장 글씨를 잘 쓰는 병사로 뽑혀 훈련소장 비서실에서 근무를 했다. “옛날에는 차트에 한문을 많이 사용했어요. 유교집안에서 자란 저는 서당을 하는 큰아버지로부터 천자문을 배웠고, 글씨도 제법 쓰니 자연스럽게 제가 부대 차트담당이 되더라고요.” 훈련소장을 보필하는 업무를 맡아 늘 긴장해야 했지만, 돈독함은 남달랐다. 34개월 군 생활을 마치고 제대한 후에도, 1년간 비서실에서 군무원으로 생활했을 정도니 각별함을 짐작할 수 있다.
그 시절 불교와 인연도 깊어졌다. 군무원으로 일할 때 그의 숙소는 호국연무사 요사채였다. 당시 호국연무사 주지 법사는 전 화계사 주지 성광스님이었고, 군종병은 정다운스님이었다. 그는 정다운스님과 1년간 한 방에서 기거하면서 특별한 인연을 쌓았다. 군을 막 제대한 26세 청년에게 정다운스님은 많은 얘기를 들려주며 꿈과 용기를 심어줬다. 그의 작품에 유독 정다운스님이 글이 많은 이유이기도 하다. 1990년 그가 여의도에서 서실을 운영할 때 정다운스님이 도움을 청해와 서울 적조사에서 경리부장을 살기도 했다. 6개월 동안 적조사에서 일하면서 사찰살림 살기가 보통일이 아님을 체감한 그는 본업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화선지 앞에서면 저절로 하심 돼 
백지 채우는 건 누구도 대신 못해 
집중하다보면 자연스레 ‘서선일여’

연무대서 본격적으로 필경 연습해 
국전 5번 낙방 후 내리 10년 수상
86년 불미전 서예부분 특선하기도

글씨 쓸 때마다 어렵고 매번 달라
순간순간 최선을 다해서 써내려가
작품 마감하고 나면 희열 느껴져

제대하면 군복무 하던 곳은 돌아보지도 않는다는 말과 달리 연무대생활은 그에게 잊지 못할 시간이다. 그 시절 함께 부대끼며 산 전우들과는 지금까지 연락을 이어오고 있다. 뿐만 아니라 지난 2016년에는 육군훈련소에서 서예작품 기증전시회까지 열었다. “입대해서 시간 날 때마다 글씨연습을 했어요. 처음엔 제 깜냥대로 썼는데 실력을 늘지 않더라고요. 잘 쓴 글씨를 따라하면서 연습을 해야 했어요. 그 때는 중국과 수교 전이라 중국 유명 서예가들의 서첩을 구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일본에서 들여온 법첩(法帖) 한 권이 당시 돈으로 1만 원이 넘었으니 정말 비쌌죠. 그걸 구해서 따라 쓰고, 서예 월간지를 정기구독하면서 연습을 했습니다.” 서예가로서 기량을 닦은 연무대는 그에게 고향과 같다. 쌓아뒀던 마음의 빚을 조금이라도 갚는다는 생각에 그는 연무대 발전을 위해 100여 점의 작품을 기증했다. 그의 서예작품은 육군훈련소 연무관에 전시돼 있다.
지난 40여 년간 매일 붓을 들었지만, 처음부터 순탄하지는 않았다. 군무원 생활을 마치고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그는 신인작가 등용문인 대한민국미술대전 출품을 결심하고 초정 권창륜 선생을 찾아갔다. 권창륜 선생은 현대 서예계를 대표하는 일중 김충현 선생에게 사사를 받은 서예 대가로, 우리나라 다섯 번째 국새 글씨의 주인공이다. 운현궁, 청와대 춘추관 현판을 썼고, 청도 운문사, 문경 김룡사, 원주 구룡사, 구미 도리사에서도 그의 글씨를 볼 수 있다. “퇴근하고 2~3시간씩 서실에 들려 글씨 연습을 했어요. 바쁜 시간 쪼개서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 국전에 내리 5년을 낙방을 했어요. 스승님이 심사위원인 해에 내심 기대했는데, 낙방의 쓴 맛만 봤습니다.”
부평에서 서울로 출퇴근하다보니 시간내기가 여의치 않았다. 지금이야 지하철 급행도 있어서 오고가는 게 편하지만 그 때만 해도 출퇴근하느라 하루 3~4시간을 길에서 보내야 했다. 주말도 없이 일하다가 이래선 안 되겠다 싶은 마음에 1985년에는 아예 직장에 사표를 던지고 글씨만 썼다. “5개월 동안 원 없이 글씨만 썼어요. ‘이번엔 내 이름이 있겠지’ 하고 대한문에 붙은 국전 수상자 명단을 확인하는데 웬걸 또 떨어졌습디다. 그날로 회사에 연락을 했어요. 다시 출근하겠다고요.(웃음) 직장은 10년을 채우고 그만뒀습니다.” 노력한 보람은 있었다. 이듬해인 1986년부터 10년간 국전 특선과 입선을 번갈아 하며 낙방의 한을 풀었다.
요즘 신세계백화점 문화센터에서 성인을 대상으로 서예를 지도하는 그는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 “몇 개월 다니면 글씨를 잘 쓰냐”는 것이다. “서예계에서는 5~6개월은 해야 붓을 세울 수 있다고 합니다. 붓을 누르면 선은 굵어지고 들면 가늘어집니다. 그게 익숙해지려면 인내심을 가지고 연습해야 돼요. 하루아침에 성과를 이루겠다고 조바심을 내면 쉽게 포기하게 되죠.” 40년간 글을 쓴 그도 어떻게 하면 더 잘 쓸까 고민하고 날마다 연습을 한다. 전서, 예서, 해서, 행서, 초서 등을 두루 써내려가며 실력을 닦는다. 1주일만 쉬어도 붓놀림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연습하면 나아질 거란 희망을 갖고 노력한다.

그가 직접 쓴 반야심경등

그는 글씨를 잘 쓰려면 인내심과 끈기가 중요하다고 했다. 글씨를 쓰는 행위 자체를 만족할 줄 아는 여유가 있어야 한다. “나무가 자라는 것을 날마다 알아차릴 수 없지만 어느 순간 보면 자라 있잖아요. 서예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말고, 자신만의 페이스로 써야 합니다. 저도 마찬가지로 고비가 있었지만 붓을 내려놓진 않았어요. 지금도 글씨를 쓰면 즐겁고, 스트레스가 풀려요.”
그는 서예가 수행과 다름없다고 말한다. “붓은 묘해서, 다른 생각하면 금방 붓이 돌아가요. 그래서 글씨를 쓸 땐 딴 생각을 할 수 없어요. 서예 할 때 나쁜 말을 쓰진 않잖아요. 불교경전 속 부처님 말씀을 쓰면서 뜻을 새기다보면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무엇보다 그는 백지를 앞에 두면 저절로 하심하게 된다고 한다. 서예에 완제품은 없다. 글씨 쓸 때마다 어렵고, 쓸 때마다 달라 매번 최고라고 자부할 수 없다. 또 다른 사람이 대신 할 수 없고 오로지 자신 스스로 백지를 채워가야 하기 때문이다. 무엇을 쓸까에 대한 고민도 크다. 그의 서실에 <법화경>과 같은 불교경전 외에 <월인천강지곡> <농가월령가> 등 다양한 고전이 꽂혀있다. 그런 책들을 읽으면서 어떤 글을 쓸지에 대해 항상 고민한다. 
그는 서예를 하길 정말 잘 했다고 생각한다. 돈은 크게 벌지 못했지만, 글씨를 써서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재적사찰인 하계동 정혜선원에서는 그의 작품이 많다. 작품을 신도들과 나누며 즐거움과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글씨를 잘 쓰고 싶다는 생각은 지금도 해요. 불교공부를 하면서 선당이란 법명도 받았는데, 이름에 맞게 선필로 인정받을 수 있는 글씨를 썼으면 하는 게 바람입니다.”

권성하 서예가는
1952년 제천에서 태어났다. 1983년 동아일보사 주최 동아미술제에서 입선을 시작으로 각종 공모전에 입상하면서 두각을 드러냈다. 특히 1986년부터 1995년까지 10년 동안 대한민국미술대전 서예부분에서 특선 2회, 입선 8회를 했다. 1986년에는 조계종이 개최한 ‘86 아시아경기대회 기념 불교미술특별전시회’에서 서예부문 특선을 차지하기도 했다. 각종 단체전과 초대전은 물론 개인전도 열었다. 2004년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제1회 서화아트페어전 초대전을 진행했고 2011년 인사동 한국미술관에서 ‘유정 권성하 필정전’을 열었다. 지난 2016년 육군훈련소 창설 65주년 기념 서예작품 기증전을 한국미술관과 논산 육군훈련소에서 개최하기도 했다. 각종 서예공모전 심사위원 및 운영위원으로 활동했으며 최근에는 한국미술협회 주최 제36회 대한민국미술대전 서예부문 2차 심사위원장을 맡았다. 현재 서울 노원에서 연촌서예학원을 운영하고 있으며, (사)초정서예연구원 이사로 활동 중이다.

[불교신문 3330호/ 2017년 9월16일자]

 

 

어현경 기자 eonaldo@ibulgyo.com

<저작권자 © 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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