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 극락왕생 발원, 가족들 위안 얻어”

49재나 천도재 뿐만 아니라, 추석, 설 같은 명절차례를 사찰에서 지내는 이들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서울 조계사는 추석 당일인 10월4일 오전8시와 11시, 오후1시에 각각 합동다례재를 올리며, 봉은사도 오전8시, 10시에 각각 합동차례를 올리는 등 사찰에서 제례의식을 하는 불자들이 늘어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사진은 지난 2016년 서울 불광사에서 봉행된 추석합동차례 모습. 불교신문 자료사진

“제사 지내기 싫어 기독교로 개종했다”는 우스갯소리가 며느리들 사이에서 회자되기까지 했을 정도로 제사는 부담스런 행사다. 한국사회에만 존재할 것 같은 ‘명절증후군’이란 말이 생겨난 것도 이런 심정을 대변한다. 10년 전만 해도 제사를 지내지 않으면 큰일 날 것처럼 생각했지만, 갈수록 제사의 의미는 점차 퇴색되고 있다. 그만큼 세상이 달라졌음을 시사한다.

집성촌을 이루며 살던 농경사회에서 제사는 마을의 중요한 의식이었다. 조상에게 효를 행하는 것으로 여겨 사람들은 제사를 지내는데 정성을 쏟았다. 고조부모까지 기제사를 챙기고, 때마다 사당제사까지 챙겼다. 제삿날 서로 일손을 돕고, 제수를 나눠먹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지금은 이런 문화가 모두 옛말이 됐다. 핵가족화와 함께 가부장적인 문화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제사지내줄 장손을 각별히 우대하고, 유산을 물려줬던 문화가 바뀌어 장손의 의무감이 사라졌다. “조상님 덕분에”라고 생각하기보다 얼굴도 기억나지 않은 조상을 위해 마음을 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여성들이 겪는 고통 또한 배제할 수 없다. 제사는 남자들이 지내지만, 준비는 여성의 몫이다. 음식을 준비하는 것부터 제기를 씻어 정리하는 것까지 여성들이 실질적으로 제사준비를 도맡아온 셈이다. 그러나 직장생활까지 병행하는 여성들이 제수음식 장만까지 책임지기엔 버겁다. 게다가 홍동백서, 조율이시 같은 격식만 따지는 오늘의 제사문화도 큰 몫을 했다. 적지 않은 비용을 지출해 식구들이 좋아하지도 않은 음식을 오로지 상에 올리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은 힘들게만 느껴진다. 조상에 대한 추모와 공경으로 제사를 지내기 시작했던 처음의 의미는 퇴색되고 형식만 남아 제사를 굳이 지내야 하는지에 대한 회의감까지 들게 한다.

준비하는 ‘고통’ 때문에 제사를 터부시하는 젊은이들이 많아졌지만, 제사의 시작은 단순했다. 돌아가신 부모나 조부모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표현한 것이 그 출발이었다. 그러다 유교적 의미가 더해지면서 제사는 엄격한 절차와 격식을 갖추게 됐다. 조선시대만 봐도 종묘를 짓고 선왕의 초상과 위패를 봉안했다. 제사에 사용하는 음식과 제기하나 허투루 대하지 않았고, 위패를 사람처럼 귀하게 보관해 온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조상을 모시는 의식이 보편화되면서 일반 가정에서는 지방을 써 제사를 지내왔다. 위패도 안치했는데,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일본과 중국에서 지금까지 행해지는 중요한 조상숭배의식이기도 하다.

열심히 제사를 지냈던 데는 핏줄과 뿌리를 확인하고 유대를 공고히 하기 위해서라고 볼 수 있다. 오늘날 자신을 있게 한 어머니, 아버지와 할머니 할아버지 등 세상을 떠난 집안 어른의 면면을 되새기고, 고마움을 표했다. 우리 핏줄이 대대손손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도 담았다. 더 나아가 지금을 사는 후손들의 건강과 번영을 비는 자리다. 제사 때 읽는 축문을 보면 고인의 명복을 빌기도 하지만, 자손들을 잘 보살펴달라는 당부가 빠지지 않는다. 현대에 와서는 소통의 자리가 됐다. 떨어져 지내던 친척들이 서로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형제자매는 물론 사촌들이 제사 때마다 만나 안부를 물으면서 가족이 화합하는 시간으로 활용하기도 했다.

사찰에 조상영구위패 봉안하고
차례 절에서 지내는 불자 늘어
스님이 직접 축원하고 기도하며
영가에 부처님 가르침 전해줘

조상 추모하고 공경하는 마음
자식에게 가르쳐주는 자리 돼

이처럼 제사는 가족관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럼에도 집에서 제사를 지내기 힘들어진 세태를 부인하긴 어렵다. 불교가 제례문화의 대안으로 떠오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조상을 공경하는 마음을 자식들에게 알려주고 싶고, 가족 간 유대감을 이어오고 싶은 이들을 위해 사찰에서는 위패를 봉안하고 영가를 위해 기도해준다. 매년 기일에 맞춰 제사를 지내는 것은 물론 지장재일과 천도재, 백중기도 때마다 독경과 축원을 해준다.

몇 년 전부터 절에 위패를 봉안하고 명절 차례는 형제자매들과 함께 절에서 지낸다는 한 불자는 “젊을 때는 직접 제사상을 차렸지만 칠순이 가까워오면서 그마저도 어렵고, 자식들에게 부담을 물려주는 것도 싫어서 사찰에 위패를 봉안했다”고 한다. 이제 명절이면 형제자매를 불러 같이 절에서 기도하고 공양하고 돌아가는 게 연례행사가 됐다. 기제사도 사찰에서 지낸다는 한 불자는 “비용은 들지만 사찰에서 날마다 기도해주는 것도 좋고, 제사음식부터 일체를 준비해줘서 편한 것도 사실”이라며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스님이 알아서 잘 해주겠지’ 하는 마음에 불참하는 가족들이 가끔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찰에 위패를 봉안하는 또 다른 이유는 고인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동시에 남은 가족들이 마음의 위안을 얻으려는 뜻이 담겨 있다. 고인이 불자라면, 세연을 달리했더라도 염불과 독경소리를 듣길 바라는 가족들의 염원이 담겨져 있다. 무엇보다 재적사찰에 위패를 봉안하면 시간 날 때마다 찾아올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납골당이나 산소를 찾아가려면 큰맘을 먹어야 하지만 집 근처 사찰 가는 길은 순조롭다. 고인이 생각나면 언제나 절에 가서 기도할 수 있다는 점이 유족들에게는 위로가 된다.

고인을 위해 위패가 아닌 원불을 모신 의미도 크게 다르지 않다. 청계사 신도 박경선(52, 법명 문성행)씨는 지난해 돌아가신 어머니의 극락왕생을 발원하며 사찰에 원불을 봉안했다. “기일에는 손수 음식을 장만해 오빠와 함께 제사를 지내면서 가족들과 같이 어머니를 떠올렸다”며 “돌아가셨지만 절에서 부처님 가르침 늘 접하고, 스님의 독경소리 듣고 계시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늘 한다”고 말했다.

위패봉안이 남은 가족들에게 부처님 가르침을 전하는 계기가 된다. 서울 정혜사를 재적사찰로 둔 한 불자는 시부모 위패를 사찰에 봉안한 게 계기가 돼 신행활동을 하게 됐다고 한다. 제사와 차례를 지내기 위해 사찰에 오갔던 인연이 쌓여 불자가 됐다는 것이다. 가끔 절에는 장례를 치르고 난 뒤 어머니 또는 아버지 위패를 보기 위해 오는 사람들도 있다. 본인은 신행활동을 하지 않지만 어머니가 생전에 다니던 절에 위패를 봉안했다는 유언을 떠올리고 온 경우다. 고인이 생각날 때마다 위패를 찾아 사찰에 오면서 자연스럽게 불교에 귀의한다는 것이다.

또 불자라면 자식들에게 위패봉안을 당당히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50년 이상 신행활동을 하다가 세상을 떠난 노 보살의 사연은 귀담아들을 만하다. 불교에 귀의해 오랫동안 신행생활을 했음에도 자식들은 어머니 장례만 치르고, 49재도 챙기지 않았다. 절에서 같이 기도하던 신도 몇몇이 이 사실을 알고 가족들 대신 49재도 지내주고, 사찰에 위패도 봉안해줬다고 한다. 생전에 신행활동만 열심히 했지, 자신의 죽음에 대한 준비가 전혀 없었던 탓이다. 자식들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은 불자나, 자식포교에 실패한 60~70대 불자라면 미리미리 준비할 필요가 있다.

여전히 많은 가정에서는 제사와 차례를 지내고 있지만, 또 한 편에서는 제사에 대한 간절함이 점차 퇴색돼 가는 현실이다. 그러나 가족이 모여 고인을 추모하고 극락왕생을 비는 제사를 무조건 폄하할 필요는 없다. 다만 제사에 대한 선입견과 부담을 조금 내려놓을 필요는 있다. 지금까지 봐왔던 유교식 제사만이 능사가 아니다. 꽃과 향과 초와 차와 과일, 밥만 올린 불교식 제사상을 차리면 된다. 장남, 장손만 고집할 필요도 없다. 고려시대는 물론 조선시대 초기에는 윤회봉사라고 해서 아들, 딸이 돌아가며 제사를 지냈다. 사찰에 위패를 봉안하고 스님과 함께 고인을 위해 기도하면 좋다. 조계종 포교원 포교국장 원묵스님은 “위패를 절에서 모시고 절에서 제사를 지낸다면 준비하는 번거로움을 피할 수 있고 불교에 귀의하는 인연도 될 수 있다”며 “다만 현재 사찰에서 행해지는 제사 의식문에 대한 보완이 필요하다. 불자가족들이 제사의 의미와 가치를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불교신문 3332호/ 2017년 9월2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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