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서 특수학교 설립’ 갈등

장애아를 위한 특수학교 설립을 두고 학부모와 지역주민간의 갈등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난 9월5일 열린 ‘강서지역 특수학교 설립 주민토론회’에서는 장애아를 둔 학부모들은 특수학교 설립을 반대하는 주민들을 향해 무릎 꿇고 사정하는 모습이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 무릎까지 꿇는 모습이 언론 보도를 타면서 세간의 이슈가 됐지만 아직 합의에 이르지는 못했다. 이 가운데 김남연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서울지부장은 발달장애인 아들의 교육을 위해 개종할 수밖에 없었던 가슴 아픈 사연을 털어놓으며 불교계의 특수학교에 대한 관심을 부탁했다. 그 가슴 아픈 고백이 불교가 장애인들과 더 가까워지는 인연으로 작용하기를 발원하며 글을 싣는다.

‘발달장애’에 대해 많은 분들이 생소하다고 말씀하십니다. 발달장애인은 세 종류로 분류합니다. 과거 정신지체, 지진아 등으로 불린 ‘지적장애인’과 과잉행동장애를 안고 있는 ‘자폐성장애인’, 지적·자폐성장애를 가지며 신체적 장애를 동반한 ‘중증중복장애인’입니다.

스무 살인 제 아들은 지적장애와 자폐성장애를 동반한 발달장애 1급으로 지적수준은 두 돌이 채 되지 않으며 대화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빨강, 초록 같은 색깔이 뜻 하는 바를 모르기 때문에 신호등을 구분하지 못해 보호자 없이는 집 밖을 나갈 수도, 그렇다고 혼자 집에 둘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신체 기능은 별문제가 없어 88kg의 육중한 몸매로 집안을 끊임없이 폴짝폴짝 뛰어다닙니다.

발달장애인을 가장 잘 표현하는 말은 ‘힘센 치매노인’인 듯합니다. 발달장애아를 둔 부모는 ‘치매에 걸린 힘센 자녀’를 매일 고통 속에 평생 감당하는 셈입니다. 그러나 그 고통이 아무리 크고, 죽을 때까지 ‘사람 구실’ 못할지언정,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애틋한 내 자식입니다. 아주 느리지만 교육을 통해 조금씩 나아지는 아이를 보며 한없는 기쁨과 삶의 보람을 느낍니다.

유치원 7곳서 입학 거절 ‘아픔’

15년 전, 아들을 비장애인들과 똑같은 환경에서 키우고자 집 주변 7군데 유치원에 입학원서를 냈지만 장애를 이유로 모두 거절당했습니다. 장애아들을 냉대하는 우리 사회의 속살을 처음 대면한 순간이었습니다. 좌절하지 않고 언젠가 엄마가 없어도 아이가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희망하며 장애인인권운동에 참여했습니다. 아이가 커가면서 주위의 냉대와 차별은 더 심해졌습니다.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보거나 피하였습니다. 통합교육을 원해 일반 초등학교에 보냈지만, 학교는 수업에 방해된다며 특수학교 전학을 종용했고 담임교사는 다른 아이에게 피해를 끼치거나 학교물품을 손상시키면 변상하라는 ‘각서’를 요구했습니다. 하는 수 없이 아이의 장애 특성에 맞는 학교를 찾아다녔지만 집 주변 5개구 특수학교 모두 정원이 꽉 차 들어갈 곳이 없었습니다. 장애아 수에 비해 특수학교 수가 턱없이 부족한데다 장애별 특성을 맞춘 학교가 별도로 각각 있기 때문입니다.

등 떠밀며 나가라고 재촉하는 일반학교와 사정은 안타깝지만 정원이 꽉 차 받아줄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는 특수학교 사이에서 저와 아이는 길을 잃었습니다. 대한민국 어디에도 우리 모자를 받아줄 곳은 없었습니다. 학교 눈치를 보며 1년여를 버틴 끝에 간신히 입학하는 행운을 얻었습니다.

제 아들은 정말 운이 좋아 입학했지만 행운으로 여기며 만족할 일이 아니었습니다. 서울의 장애학생 3분의 2가 통합 환경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일반학교 특수학급에서 눈높이에 맞지 않은 교육을 받고 있으며, 통합이 어려운 중증 아이들 중 일부는 아예 학교를 못 다니는 눈물겨운 실상은 모두 서울에 특수학교가 부족해서 일어난 일입니다.

저는 특수학교 설립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습니다. 특수학교 입학이 우연에 의한 행운이어서는 올바른 사회가 아니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장애를 가진 모든 아동이 자신의 특성에 맞고 집 가까운 곳에 있는 학교를 다닐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했습니다.

지난 2013년부터 서울시교육청은 강서, 서초, 중랑구에 특수학교 설립에 나서 강서 공진초 이적지에 특수학교 설립 행정예고를 했습니다. 그런데 2015년 10월 김성태 국회의원이 국립한방의료원 설치를 공약으로 내세우고 주민들은 특수학교 설립을 반대하고 나섰습니다. 교육청은 학교 설립 의지를 굽히지 않았고 주민들은 대놓고 저희들을 적대시했습니다. 아이와 부모 면전에서 욕하고 신체 특성을 들어 폄하하는 잔인한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었습니다.

버스정류장에 서있는 7살짜리 다운증후군 아동 더러 “저런 병X들이 동네를 헤집고 돌아다니니 동네가 망가진다”고 욕하는가 하면, 주민토론회에 나온 학부모 패널들을 향해 의자를 집어 들고 “장애인이 왜 학교가 필요해? 시설로 보내면 되지!” 등의 막말을 쏟아냈습니다. 이런 소리를 듣는 날은 억울함과 자식에 대한 염려로 부모들은 끝내 잠들지 못합니다.

9월의 2차 토론회 역시 고성과 막말이 난무했습니다. 반대 측 주민들은 ‘우리는 특수학교를 반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 동네에는 설립할 수 없다’며 2시간 반이 지나도록 반대 의견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그 때 모든 언론을 장식하고 정치권과 시민들의 여론을 이끌어 낸 광경이 일어났습니다. 장애학생 어머니 한 분이 에워한 주민들 앞에 무릎을 꿇었고 금세 다른 부모들 수십 명이 따라서 무릎을 꿇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합리적인 대화가 막힌 상황에서 장애부모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무릎 꿇고 비는 것 말고 다른 어떤 것을 할 수 있었을까요?

특수학교가 부족해 생기는 문제는 고스란히 중증 장애를 가진 아이를 둔 가정이 짊어집니다. 등교 준비는 그야말로 전쟁입니다. 운 좋게 입학한 아이도 등교 시간이 2시간 가량 걸릴 정도로 먼 거리에 학교가 있는데다 양말 한 짝 신기려 해도 아이가 말을 듣지 않아 진이 다 빠질 정도로 많은 시간이 드니 새벽부터 일어나 부산을 떨어야 겨우 등교 시간을 맞춥니다.

아이는 버스 안에 있는 시간이 길다보니 대소변을 가리지 못해 엉덩이가 무르기 일쑤입니다. 준비 시간을 아끼고 일어나기 싫어하는 아이를 좀 더 재우려고 아예 양말을 신기고 재우는 부모도 있습니다.

불교가 우리 짐 나눠 질 수 없을까

장애아이들에게 학교는 가정과 더불어 자신을 편안히 맞아주고 보살펴주는 유일한 공간입니다. 이 아이들에게는 방과후니, 학원이니, 아파트 놀이터니 하는 가정과 학교 이외 공간과 쉼터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유일한 희망은 아이가 새벽 잠 설치지 않고 버스 안에 오래 있지 않아도 되는, 가급적 집 가까운 곳에 특수학교가 생기는 것뿐입니다. 이를 위해서라면 부모들의 자존심 정도는 아무 문제가 아닙니다.

다음날, 무릎 꿇은 엄마들은 비장애 아이들과 친정어머니로부터 원망과 안타까움에 울부짖는 소리를 면전에서 또는 전화로 들으며 다시 눈물지어야 했습니다. 도대체 왜 이토록 우리 아이들을 미워하고 당신들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밀어내려 하는지 원망과 한숨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시민들은 희망과 용기를 주셨습니다.

장애부모들 사연을 들은 생면부지의 시민들이 이메일로 위로 편지를 보내거나 특수학교 설립 서명운동에 기꺼이 동참함으로써 힘을 보태주셨습니다. 응원과 관심을 보내주신 여러분들 덕분에 장애운동을 시작한 지 12년 만에 처음으로 ‘세상이 바뀔 수도 있겠구나’라는 안도감을 느꼈습니다.

저는 2년 전 동대문 발달장애인직업훈련센터를 지을 때도 반대하는 주민들 앞에 무릎 꿇고 눈물로 호소한 적이 있습니다. 그 때도 강서처럼 반대하는 주민들과 몸싸움도 하고 무릎 꿇고 눈물로 호소했었습니다. 그럼에도 1년이나 늦었었는데 이번에는 달라졌음을 느낍니다. 시민들이 같이 분노하고 걱정해 주셔서 몸 둘 바를 모를 정도로 눈물 나고 감사했습니다.

집안대대로 독실한 불교집안에서 태어난 저는, 같은 불교집안 청년을 만나 결혼해 아들을 낳았습니다. 장애를 지닌 것을 알고 종교에 의지해 일어나도록 아들에게 법명까지 줄 정도로 불교를 믿고 따랐습니다. 그러나 불교계는 우리 가족을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아들에게 필요한 복지서비스를 받기 위해 찾아다닌 기관은 모두 불교가 아닌 다른 종교였습니다. 종교가 불교라고 하면 본인들과 종교가 다른데 괜찮겠느냐고 물었습니다. 입소한 아이와 부모도 종교 생활을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종교와 아이의 장래 사이에서 우리 가족은 많은 시간을 고민했습니다.

불교신자는 왜 아이의 장래를 놓고 종교를 걱정해야 하는지 지금 생각해도 속상하기 짝이 없습니다. 많은 논의와 고민 끝에 결국 저와 제 아들 둘이 불교를 떠나 그 시설에 적응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뭔가에 익숙해지면 이를 바꾸기가 힘든 우리 아이의 장애특성상 불교를 도저히 유지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정말 힘든 결정을 내린 것입니다.

개인이 짊어지기 어려운 고통을 국가와 종교가 나눠 짊어지고 위로를 받을 수 있다고 배웠습니다. ‘장애중의 장애’로 불리며 가장 고통 받는 삶을 사는 발달장애인들과 그 가족의 짐을 불교계가 나누어 질 수는 없는 걸까요?

김남연 지부장은…

김남연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서울지부장은 장애인 학교 설립운동을 기획하고 학부모들을 조직해 사회적 공론을 이끌어 내는데 중추 역할을 맡고 있다. ‘전국특수학교학부모협의회’를 조직했으며 ‘함께 가는 서울장애인부모회 대표’, ‘서울시교육청 특수교육운영위원’ 등 특수학교 관련 직함만 10여 개에 이를 정도로 이 분야 전문가이며 활동가다. 평범했던 서울 강남 중산층의 독실한 불자였던 필자는 장애를 지닌 아들을 통해 우리 사회의 아픈 단면을 들여다보고, 장애·비장애 구분 없이 더불어 함께 사는 사회를 만드는데 온 힘을 쏟고 있다.

[불교신문3335호/2017년10월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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