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터널 지나 돌계단 오르면 푸른 ‘영겁의 숲’ 펼쳐지네

내장사 산내암자인 원적암 일대에 형성돼 있는 비자나무 숲.

녹음이 지천이다. 곧 초록이 지쳐 단풍이 들겠지만. 9월 말 내장산은 초록터널을 이루고 있었다. 전국 제일의 단풍경관을 자랑하는 내장산 내장사. 해동제일의 명승지요, 영험 있는 관음도량이다. 

내장사하면 으레 단풍을 보러 오는 사찰로 알려져 있다. 전국 최고의 경관으로 내장산 내장사를 손꼽는데 주저하는 이가 없기 때문이다. ‘내장사는 단풍철 한 달로 1년을 산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하지만 내장사는 단풍만 유명한 게 아니다. 이곳에 천혜의 비자나무 숲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드물다. 주목과에 속하는 비자나무가 내장산에 군락을 이루고 있는 사실도 이례적이고, 주로 남부지방 바닷가에 자라지만 내륙인 내장산에 고목으로 자란다는 사실도 경이롭다. 

내장사 비자나무 숲 인근의 백양사 비자나무 숲은 천연기념물 제153호로 지정돼 보호를 받고 있다. 1962년 지정될 당시는 비자나무가 자라는 가장 북쪽에 있는 숲이라고 해서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하지만 이 지역보다 더 북쪽에 있는 내장산에서도 비자나무 숲이 발견돼 함께 보존할 가치가 충분히 있어 보인다. 

내장사 일주문으로 걸려 있는 주련의 심오한 뜻이 발길을 사로잡는다.

비자나무가 어떤 나무인지 궁금해 포털 사이트를 검색해 보았다. “주목과의 늘 푸른 바늘잎 큰키나무로 25m 정도로 곧게 자란다. 길고 곧은 가지가 비스듬히 뻗어 위쪽이 타원형이 된다. 남부 지방 바닷가의 산 80~100m 고지에 주로 서식한다. 잎이 딱딱하고 잘 찔린다. 길이 2.5㎝ 정도의 잎이 가지에 조금 비뚤한 2줄로 마주 달려 깃털 모양이 된다. 끝이 뾰족한 납작 바늘 모양이며 만져보면 딱딱하고 질기며 잘 찔린다. 앞면은 평평하여 잎맥이 보이지 않는다. 뒷면은 갈색을 띠며 노란 흰색의 숨구멍 2줄이 나란히 있다. 돋은 지 6~7년이 되면 떨어진다. 겨울에도 푸르다.”

겨울에도 푸른 비자나무는 약용으로도 쓰인다. 가을에 채취하여 햇볕에 말려서 쓰거나 생것을 쓴다. 급히 먹고 체한 데, 마른기침, 가래, 여성 질환, 변비에 물에 달여 마신다. 이 신비한 비자나무 숲을 보기 위해 이른 단풍철에 내장산 내장사로 향했다. 내장산이라고 하지만 내장사를 중심으로 숲이 형성돼 있어 산에 간다기보다는 사찰로 간다는 표현이 옳다. 

내장사 누각인 정혜루에서 선차를 음미하고 있는 방문객들.

내장사로 가는 길은 단풍나무가 먼저 손님을 반긴다. 여느 사찰보다 단풍나무의 규모부터 다르다. 매표소(탐방안내소)를 들어오는 입구부터 단풍나무 터널이다. 도로 양측에 나무가 자라 하늘을 덮어 버리는 숲 터널은 천년고찰의 숲길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이다. 매표소를 지나도 단풍나무 터널은 이어진다. 단풍나무의 수령이 있어야 가능하다. 붉게 단풍이 물들었을 때는 아름다움이 몇 배는 될 듯하다. ‘이래서 전국 제일의 단풍사찰이구나’하는 확신이 저절로 든다.

단풍철이 아닌데도 숲길을 방문한 사람들이 제법 보인다. 평일이지만 숲길에 들어 숲과 함께 숨 쉬는 인적이 여기저기에 있다. 어떤 사람은 아예 운동복을 입고 달리기를 하기도 한다. 숲이 주는 혜택을 온 몸으로 느끼고 있다. 

한참을 들어오니 좌측에 우화정(羽化亭)이라는 정자가 있다. 정자가 너무도 아름다워 ‘날개가 돋아 승천을 했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우화정이다. 아름다운 이름에 걸맞지 않게 콘크리트 건물로 지어져 있었으나 2016년 전통 한옥식 건물로 재건축되어 어느 정도 명성을 되찾았다. 사시사철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하는 우화정에 단풍이 들면 ‘단풍이 꽃비처럼 내리는’ ‘우화정(雨花亭)’이 될 것 같다. 

시야에 일주문이 들어온다. 일주문 너머에는 단풍사찰답게 단풍나무가 도열해 있다. 일주문 양쪽에 걸린 주련도 예사롭지 않다. 

歷千劫而不古

亘萬歲而長今 

조선시대 함허 득통선사가 저술한 <금강경오가해설의(金剛經五家解說誼)> 서문에 있는 문구를 강암 송성용(1913~ 1999) 선생이 써서 새긴 것이라 한다. 

원적암 입구에 장대하게 서 있는 비자나무.

“천겁의 과거도 지난 일이 아니며, 만세의 미래도 항상 지금이다”는 뜻으로 ‘깨달은 이가 체험하는 시공을 초월한 인식을 말한다’고 하나 깨달음의 세계를 모르는 아둔한 중생이 이해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거대한 숲에 들어와 넓어지는 마음은 시공을 초월한 깨달음의 경지와 비슷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어디를 돌아봐도 초록세상인 내장사 경내에 접어든다. 천왕문을 지나 정혜루에 인기척이 느껴진다. 정혜루 난간에 ‘내장사를 찾는 분들에게 차를 무료로 제공한다’는 문구가 있다. 차에 일가견이 있는 주지 스님의 배려다. 내장사 주지 도완스님은 절집에서 비법(秘法)으로 내려오는 제다법을 전수받아 매년 차를 만들어 세상 사람들에게 무상으로 보시하고 있다. 차 맛을 보니 ‘역시나!’하는 생각이 든다.

본격적으로 비자나무 숲을 찾아간다. 원적암으로 향하는 계곡에 접어든다. 산그늘이 깊어 오후 5시에도 어둠이 찾아온다. 발길을 재촉해 산을 오르니 다시 햇볕이 스며든다. 함께 동행한 내장사 스님이 의미심장한 말을 던진다. 

“내장산은요, 가을에만 좋은 게 아니에요. 저는 개인적으로 이른 봄 연초록이 산을 물들이는 시기가 더 좋더라고요.”

세속인들이 남들이 좋다고 하는 가을철에만 한꺼번에 밀려오는 내장산의 아름다움을 스님 혼자서만 끽하기에는 아쉽다는 표현을 에둘러 하고 있었다. 

“산이 좋으면 사시사철 좋은 게 아닌가 싶네요”라고 답하니 일주문 주련의 글귀(歷千劫而不古 亘萬歲而長今)가 뇌리에 스친다. 

원적암 계곡에는 물 흘러가는 소리가 요란하다. 며칠 전 비가 왔다고 한다. 계곡이 얕아 물 흐르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시기가 많지 않다고 하니 행운이다. 

원적암 방향으로 가파른 돌계단을 오르니 떡하니 고목이 앞을 가로막는다. 비자나무다. 몇 아름은 됨직한 고목의 수령을 알기는 어렵지만 무척 오래된 것만은 확실하다. 백양사 비자나무 숲이 형성된 때는 고려 고종(재위 1213〜1259) 때 각진국사(覺眞國師)가 당시 유일한 구충제였던 비자나무 열매로 가까운 마을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절 주변에 심었다고 하니 내장사도 그 무렵이 아닐까. 역으로 계산해 나이가 800여년은 됨 직하다. 

'날개가 돋아 하늘로 올랐다’는 전설이 전하는 내장사 우화루.

입을 다물지 못할 만큼 감탄이 쏟아진다. “내장사에 이런 비자나무 숲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어요.” 동행한 스님이 아름다운 비자나무 숲이 세간에 알려져 무분별하게 노출되는 게 싫은 어투로 말한다. 찾아와도 한꺼번에 오지 말고 철마다 조금씩, 적당히 와서 보고 가길 바라는 마음이 느껴진다. ‘이런 산중에 고목의 비자나무가 있다니!’

원적암까지 100여m에 걸쳐 형성된 비자나무 숲은 천연 원시림 같다. 통행에 필요한 최소한의 장치인 방부목 계단이 인공으로 가미돼 있다. 어떤 위치에서 바라보아도 시공을 초월한 감동이 밀려온다. 깨달은 이는 이 느낌을 ‘법열(法悅)’이라 할 것 같다. 한동안 왔다갔다하며 나무와 나무가 어우러진 숲을 보고 느끼고 맛(?)도 본다. 어둠이 원적암 대웅전에 내릴 때까지.

하산 길에 나선다. 동행한 스님에게 진심을 담아 감사의 말을 전했다. “스님 감사합니다. 혼자 왔으면 이 좋은 숲길을 찾는데 한참 고생했을 거구요. 또 자세하게 돌아볼 수도 없었을 듯해요” 스님은 답하지 않았다. 그저 미소만 지을 뿐. 

[불교신문3337호/2017년10월1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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