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담사 무문관 일기

정휴스님 지음 / 우리출판사

수행자의 성찰 담은 구도일기
禪의 예지·직관 담담하게 풀어

2010년 백담사 무금선원 생활
무문관 수행과 솔직한 단상들

금강산 화암사 토굴에서 5년째
깨달음의 끝은 진정 어디일까

남해에서 태어나 밀양 표충사로 출가해 1971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문단에 발을 들여 특유의 ‘선(禪)문학적’ 필치를 날리면서 일군의 독자층을 거닐었던 정휴스님. 조계종 총무원 기획실장과 종회의원 7선까지 지내면서 종단안정에 힘을 보탰고 불교신문 사장을 역임하고 직지사·동화사·불국사·법주사승가대학 강사로서 후학양성의 역할을 다했던 스님이다. 정휴스님이 지난 2010년께 설악산 백담사 무금선원에서 수행했던 무문관 이야기와 이후 금강산 화암사에서 토굴을 짓고 운수(雲水)로 머물고 있는 삶이 책으로 나왔다. 7년 전 정휴스님이 무문관에 방부를 들였을 때만도 예순 넘은 스님이 선방도 아닌 무문관에 든 마음을 알 길이 없었다. 스님은 ‘무문관 일기’답게 비교적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았다.

“나는 반복되는 일상 속에 갇혀 있었고 몸에 익힌 그릇된 습관과 인습으로 인해 정체되어 있었다. 새로운 변화가 필요했다. 나를 정신적으로 뜯어고치지 않고는 끝없는 나락으로 침몰할 것 같았다. 새로운 변화를 통해 잠재해 있는 나를 일깨우지 않고는 번뇌 속에서 살다가 죽음을 맞이할 것 같았다. 자신을 변화시키는 선적(禪的) 가치가 필요했고 그 가치를 이루기 위해서는 선방(禪房)으로 들어가지 않을 수 없었다.” 스님은 “내적 성찰과 자기를 탐구하는 화두를 들고 비본질적인 것을 털어내지 않으면 새롭게 태어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을 때 내 삶의 일몰(日沒)이 시작되고 있었다”고 고백하면서 “육십을 넘기고 칠십을 바라보는 나이를 생각할 때 죽음이 어느날 천둥처럼 찾아올는지 알 수 없었다”고 말했다.

금강산 화암사 영은암에 주석하고 있는 정휴스님은 7년 전 백담사에서 시심마 화두를 들고 무문관 수행을 했던 삶을 일기 형식으로 세상에 알렸다. 사진은 백담사 무문관 무금선원. 불교신문 자료사진

정휴스님을 백담사 무문관으로 이끈 결정적 계기는 그 해 봄 입적한 법정스님이었다. 길상사에 문상을 갔을 때 승복을 입은 채 대나무 돗자리에 편안히 누워 눈을 감은 법정스님을 보면서 처음 마음으로 돌아가 초심을 회복하는 일, 그리고 자기 본래면목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나는 누구인가?’하고 근원적 물음을 놓지 말아야 함을 주문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정휴스님은 끝내 법정스님의 영결식을 참석하지 못하고 백담사 무문관으로 들어갈 준비를 했다. “겨울 한철 내 몸에 배어있는 묵은 껍질을 걷어내고 본래 자아로부터 일탈해 있는 자신을 본래 모습으로 되돌리는 탐구를 해야겠다고 조촐한 서원을 세웠다.”

2010년 11월19일, 백담사로 들어가는 첫 입구인 용대리에서부터 스님은 이미 새로운 체험은 시작됐다고 했다. 촉목보리(觸目菩提) 목격도존(目擊道存)의 진리, 이른바 눈앞에 보이는 것이 깨달음이요, 눈앞에 있는 것이 그대로 진리란 뜻이다. “선(禪)이란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것도 아니고 숨겨놓은 것을 찾는 것도 아니다. 본래 이루어진 것을 내심을 통해 확인하고 증득하면 되는 것이다. 눈앞에 펼쳐진 내설악 풍광은 모든 것을 드러내 놓고 있었다. 하나도 숨김이 없었고 일기일경(一機一境)을 통해 실상의 묘용을 나타내고 있었다.” 스님의 표현에 따르면 “자연은 수행자에게 위대한 선지식이다.” 사계절의 변화를 통해 열고 닫는 섭리를 깨닫게 하고 조락(凋落)을 통해 인생의 부침과 영고성쇠(榮枯盛衰)를 깨닫게 한다.

스님의 무문관 생활은 한마디로 “바위처럼 앉아서 천년을 한 생각 속에 이루게 하라”는 주문이다. “새벽 3시 반에 일어나 앉아 있으면 간밤에 머물렀던 고요가 방안으로 흩어져 있다가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다시 한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감옥의 독방과 다름없었다. 시간표를 만들어 3개월 동안 실행해 보기로 나에게 다짐했다. 좌선시간을 많이 할애했고 화두는 시심마를 들기로 했다. 열한시가 되자 창문 한쪽에 뚫어놓은 구멍으로 점심 도시락이 들어왔다….”

이제 스님은 무문관을 뚫고 나와 금강산 화암사에서 작은 토굴을 하나 짓고 산다. 저녁이면 물소리를 베갯머리에 실어다 주고 밤이면 달빛이 산 그림자를 잠자리에 옮겨주는 곳이다. “송골(松骨)을 깎아서 대들보를 삼고 앞산에 머물고 있는 구름을 끌어다가 지붕을 덮고 지나가는 바람을 멈추게 하여 벽을 발랐다.” 풍류 넘치는 선미(禪味)가 풍기는 정휴스님의 상량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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