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 관음사에 분향소 마련, 오는 6일 영결식 및 다비

조계종 명예원로의원이며 청주 관음사 회주인 월암당(月庵堂) 이두(二斗) 대종사가 오늘(11월4일) 새벽 3시 청주 관음사 석수실에서 원적에 들었다. 법납 66세, 세수 90세.

분향소는 청주 관음사에 마련됐다. 영결식은 오는 6일 오전 10시 관음사에서 금오문도장으로 봉행되며 다비는 6일 12시 법주사 연화대에서 엄수된다.

월암당 이두 대종사는 1950년 학도병으로 한국전쟁에 참전해 포로로 붙잡혔다가 탈출한 뒤 들른 갑사에서 사형인 탄성스님으로부터 불가의 삶을 권유 받고 1951년 당대의 선지식이었던 금오대선사를 은사로 수계득도했다.

당시 금오대선사는 ‘이 뭣고’ 화두를 던지면서 “제대로 살려면 며칠 밤을 꼬박 새우면서 용맹정진하고, 한시도 화두를 놓치면 안 된다”는 일갈을 했고, 스님은 10일 동안 장좌불와로서 구도를 향한 열정을 스승에게 보여 주었다. 그 후 금오대선사를 모시고 직지사 천불선원과 옥포 금연사, 수원 팔달사 등에서 정진하면서 선 수행의 기반을 철저히 닦았다.

1956년 동화사 강원에서 공부한 뒤 1959년 성균관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했다. 1962년 육도만행을 결심하고 전라도 일대에서 엿장수와 걸인생활을 하기도 했으며, 경남 진주에서 문학공부에 전념하기도 했다. 1964년 전남 장성에 흙집을 지어 <능인교민원>이라 이름 짓고 6년 간 학동들을 가르치는 등 두타행을 몸소 실천했다.

스님은 늘 온화하고 자애 넘치는 모습으로 금오문중의 후학들에게 사표가 되는 어른으로 수행했다. 1971년 갑사 주지를 역임했으며 1978년에는 법주사 주지를 지내면서 10·27 법난 속에서도 금오가풍을 올곧이 지켜냈다. 이즈음 종무행정에도 밝아 종단의 교무부장을 맡기도 했다. 1982년 인천 보각선원장에 취임했으며 1986년 청주 관음사 주지로 부임하면서 폐사직전의 도량을 일신하고 중창하여 청주의 대표적 사찰로 만들었다. 1991년에는 방글라데시 치타공 파리대학에서 명예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2년 서울 도심에 해동불교대학을 설립하여 10여 년간 학장으로 재직하면서 도제를 양성하기도 했다.

2000년에는 금오문도회 문장으로 선출되었으며, 그 해 10월에는 조계종 원로의원으로 추대되었고 2004년 5월 해인사에 대종사 법계를 품수했다.

또한 스님은 누구보다 문학에 사랑하여 부처님의 가르침을 시를 통해 세상에 전했던 문인이기도 했다. 1978년 첫 시집 <겨울 빗소리> 발간으로 문단에 데뷔한 이래 끊임없는 시작(詩作)활동을 하면서 독자들에게 정신적인 위안과 구원의 양식을 제공했다. 1984년에 ‘현대시조’ 추천으로 시조시인으로 등단하기도 했다. 한국문인협회 회원·충북시조문학회장과 서울동백문학회 이사를 역임하는 등 종교인으로서 문학의 지평을 넓혀왔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1997년 동백예술문화상(문학부문) 본상을 수상했다. 지금까지 <창문에 울린 초음>, <그대가 만나는 산길>, <만나고 헤어지는 물가에> 등 여러 권의 시집과 수상집을 발간했고 한편으론 구도소설 <명암이 없는 선하 앞에서>를 발표하는 등의 활발한 집필 활동을 했다.

스님은 지역포교와 사회활동에도 적극 참여했다. 청주청원불교연합회장을 여러 차례 역임하면서 지역불교 발전과 종교간 대화와 화합에 앞장 서 왔다. 또 충북일보 논설위원으로 정론직필의 탁월한 필력을 보여줬으며, 충북경실련 초대 공동대표를 맡아 시민단체 발전의 초석을 놓았다. 무엇보다 역사와 문화에 관심이 많았고 서양철학에도 해박했던 스님은 <직지심체요절>을 처음으로 한글 번역하고 강의하는 등 예술계의 인사들과 깊이 교류하면서 폭넓은 활동을 하였으며 민족과 국가의 정체성을 일상에서 자주 강조했다.

스님은 평소 제자들과 신도들에게 인과를 철저히 믿어야 한다고 당부하셨다. 스님은 입적하기 전 후학들에게 “지나간 모든 것은 다 바람일 뿐이다. 스스로 인생의 주체가 되는 삶을 살라”는 가르침을 남겼다.

한평생 정열적인 구도자로 살면서 동사섭의 덕을 닦았던 청정한 무욕의 삶이었다. 스님은 열반송을 따로 전하지 않았지만, 임종에 즈음한 시를 써서 제자에게 부촉했다.

인생은 한 조각의 꿈

그동안 살아온 삶이 세월 따라갔고

세월 속에 나도 따라갈 뿐이다.

맑은 바람 밝은 달 너무도 풍족하니

나그네길 가볍고 즐겁구나.

달빛 긷는 한 겨울, 복사꽃이 나를 보고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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