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사회연구소, ‘불교계의 3·1운동과 항일운동’ 2차 세미나

한상길 동국대 불교학술원 조교수는 "1년이라는 짧은 시간이지만 백범 김구선생이 출가생활을 했다는 것 자체가 불교계의 커다란 긍지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구는 일제에 항거한 대표적인 독립운동가이자 한국인이 존경하는 인물을 뽑을 때 언제나 상위에 위치하는 민족의 위인이다. 이런 위인이 젊은 날 1년이라는 짧은 시간이지만 출가생활을 했다는 것 자체가 불교계의 커다란 긍지가 될 수 있다. 또한 김구도 원종스님으로 살면서 인생의 중요한 깨달음을 얻었다.”

한상길 동국대 불교학술원 조교수는 조계종 백년대계본부 산하 불교사회연구소가 오늘(11월17일) 템플스테이통합정보센터 문수실에서 개최한 ‘불교계의 3·1운동과 항일운동’ 2차 세미나에서 이같이 밝혔다.

‘백범 김구와 불교’를 주제로 발제한 한상길 조교수는 “김구는 1898년 인천감옥을 탈옥한 후 도피의 목적으로 마곡사로 출가해 원종(圓宗)이라는 법명을 받고 1년 간 스님으로 살았다”며 “몇 가지 문헌을 통해 김구가 불교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가졌는지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 조교수가 가장 먼저 제시한 내용은 김구의 좌우명이 불교사상에서 유래했다는 것이다. 김구는 ‘매달린 벼랑에서 손을 놓아버려야 대장부로다’라는 의미의 ‘현애살수장부아(懸崖撒手丈夫兒)’ 구절을 가슴 속에 품고 살았다고 한다. 이 게송은 <금강경> 주해서에 나오는 내용이다. 1932년 일왕의 생일날 행사장에 폭탄투척거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윤봉길 의사에게도 이 구절을 알려주며 용기를 북돋아줬다고 한다.

김구의 삶 속 위기나 결단의 순간에 불교정신이 바탕이 된 것으로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지금까지 말로만 전해지던 불교와 김구의 관계를 <백범일지> 등을 통해 객관적으로 정리했지만 “실리를 추구한 그의 성격상 종교 이론에는 집착하지 않아 불교적 정신과 입장을 파악할 수 자료는 미비한 실정”이라고 토로했다.

한편 이날 세미나에서는 백범 김구의 불교정신'을 조명하는 내용 이외에도 ‘불교청년의 탄생’, ‘3·1운동과 중앙학림’, ‘개항기 불교계의 항일운동’ 등 불교계 3·1운동을 새롭게 바라보는 발제가 이어졌다. 불교사회연구소는 3·1운동 100주년을 맞이하는 2019년까지 3·1운동백주년기념 학술사업을 전개할 예정이다.

시청각 자료를 활용해 발제하는 있는 한상길 동국대학술원 조교수의 모습.
'백범 김구와 불교정신'을 조명하는 내용 이외에도 ‘불교청년의 탄생’, ‘3·1운동과 중앙학림’, ‘개항기 불교계의 항일운동’ 등의 발제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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