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이의 둘째 왕자 파리스가 대형 사고를 쳤다. 바다 건너 스파르타의 왕비 헬렌을 납치해온 것이다. 그러나 이 사고 앞에 트로이 지휘부는 낙관적이다. 우선 아들의 무분별한 행동에 노발대발해야할 국왕 프리암이 헬렌의 아름다움에 매혹되고 말았다. 궁정을 지배하고 있는 노인들의 분위기도 마찬가지다. 

트로이의 전쟁 영웅인 첫째 왕자 헥토르는 위기임을 직감한다. 그는 헬렌을 돌려줘 이 난국을 극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스 사신 오이악스의 모욕과 도발까지 견디며 사태를 수습하고자 한다. 그런데 국민 시인 데모코스는 전쟁의 노래를 준비하고, 위대한 법학자 뷔지리스는 전쟁을 정당화하는 논설을 발표하려고 한다. 오직 무녀 카산드라만이 전쟁이 터진다고 예언하며 불안해한다. 이 난국 속에 당사자 헬렌은 태평하기만 하다.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는다. 마침내 그리스 연합 함대가 트로이 앞 바다에 나타난다. 

프랑스 극작가 장 지로두(Jean Girau doux, 1882~1944)의 희곡 <트로이 전쟁은 일어나지 않으리(La Guerre de Troie n’aura pas lieu. 1935)>의 줄거리이다. 제1차 세계대전의 참화를 뼈저리게 체험한 그가 같은 비극이 되풀이돼서는 안 된다는 경고와도 같은 작품이었다. 그러나 역사는 많은 경우 악순환을 반복하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보여준다. 

1938년 9월 독일 뮌헨에서 영국 총리 네빌 체임벌린과 독일 총통 아돌프 히틀러가 마주 앉았다. 히틀러는 체코슬로바키아가 수데텐란트에 사는 독일인을 박해한다며 할양을 요구했다. 체임벌린은 합의문에 서명했다. 런던에 도착한 체임벌린은 “영국과 독일간 분규는 전쟁에 의하지 않고 협상을 통해 해결한다. 이것이야말로 우리 시대의 평화”라고 선언했다. 그러나 체임벌린의 유화책으로 영국은 군비 증강의 결정적인 기회를 놓치고 독일이 오스트리아와 체코를 침공하는 것을 바라보고 있어야 했다. 이후 6년 동안 제2차 세계대전의 참화에 휩싸였다.

우리 역사에서도 이런 예는 흔히 보인다. 전선에서는 북한군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는데도 국방 책임자는 “명령만 있으면 점심은 평양에서 저녁은 신의주에서”를 호언하다 나라까지 잃을 뻔 했던 일. 왜의 진의를 정탐하러 보낸 사신이 정사는 전쟁이 난다하고 부사는 아니라하여 낙관론에 기대다 7년 전쟁을 처절히 치렀던 일. 대륙의 주인이 바뀌는 역사적 전환기를 제대로 읽지 못하고 의리론과 명분론을 펴다 철저히 짓밟혔던 일. 그 예는 차고 넘친다.

한반도가 위기다. 북한은 국제 사회의 잇단 경고와 제재에도 오불관언 핵실험을 계속하고 마침내 미 본토 공격이 가능한 대륙간 탄도 미사일까지 쏘아 올렸다. 도널드 트럼프 미대통령은 중국에게는 대북 원유 공급 중단을, 핵심 우방국에는 대북 해상 봉쇄를 요청하는 초강경 제재에 나섰다. 허버트 맥매스터 백악관 안보보좌관은 “북한과의 전쟁 가능성이 매일 커지고 있다”고 경고했고,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은 “주한미군 가족들을 철수하기 시작할 때”라고 지적했다

그런데 우리 내부는 국론 통일이 잘 되지 않는다. 대북 강경론과 유화론 그리고 절충론이 다 나온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유화론이 전쟁을 막지는 못했다는 역사의 교훈이다. 위기에는 최악의 상황을 상정하고 대비해야 한다. 보통 위기가 아니라 전쟁 위기다. “트로이 전쟁은 일어난다”고 생각해야 된다는 것이다.

[불교신문3353호/2017년12월13일자] 

유자효 논설위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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