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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리 찾은 사리 어떻게 봉안되나?

기사승인 2018.01.12  14:5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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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석탑 중에 가장 오래된 분황사 모전석탑과 분황사 사리를 보관할 사리장엄구(사진 아래). 국가무형문화재조각장 김윤용 씨가 복제해서 사찰에 기증됐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돼 있던 사리 40과가 지난해 부처님 도량으로 돌아왔다. 예경의 대상임에도 100년이 넘게 국공립박물관 수장고에서 잠자고 있던 사리가 제자리를 찾았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불자들은 환호했다. 조계종과 국공립박물관의 숙의 끝에 장기대여 형식으로 돌아올 사리는 앞으로 어떻게 봉안될지 살펴봤다.

종단이 2016년 국립중앙박물관에 사리반환을 공식적으로 요청한지 1년여 만에 수장고에 갇혀 있던 사리들을 원래 자리로 돌려보낸다는 결정이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2017년부터 2019년까지 3년 동안 13건 총 129과의 사리를 사찰로 이운한다는 내용이다. 이 같은 결정은 국공립박물관 수장고에서 수십만개 유물 중 한 점에 불과했던 사리가 부처님과 마찬가지로 신앙의 대상임을 인정받은 결과이기도 하다.

그 결과 지난해에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돼 있던 사리 40과가 사찰로 환지본처했다. 경주 분황사 모전석탑 사리 4과를 비롯해 설잠스님으로 알려진 부여 무량사 김시습 부도탑에 봉안돼 있던 사리 1과, 백자사리합 사리 1과, 청동원통형사리합 사리 1과, 청동제사리기 사리 33과까지 총 40과다. 이 중 분황사와 무량사 사리는 사찰로 돌아갔고, 출처를 알 수 없는 사리 35과는 현재 조계사에 봉안돼 있다.

분황사 모전석탑 사리기 복제해
친견법회 후 사리합 넣어 탑 봉안
무량사 김시습 사리도 마찬가지

복제된 분황사 석탑 사리장엄구

분황사는 교구본사인 불국사와 함께 신라석탑 중에 가장 오래된 분황사 모전석탑에서 수습된 사리를 여법하게 봉안하기 위한 준비가 활발하다. 국보 30호인 분황사 모전석탑은 벽돌모양으로 돌을 깎아 세운 탑으로 선덕여왕 3년(634)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탑은 일제강점기인 1915년에 수리됐는데, 이 때 2층 탑신 중앙 석함에서 은제사리합이 발견됐다. 지름 3.8cm 크기의 은제사리합은 현재 국립경주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되돌아온 사리를 봉안하기 위해 분황사와 불국사성보박물관은 분황사 탑에서 출토된 은제사리합을 그대로 복원했다. 작업은 국가무형문화재 35호 조각장 보유자 김용운 씨가 맡았다. 대구 수성구에서 공방을 운영하는 김용운 조각장은 사리가 제자리를 찾았다는 소식을 듣고, 사찰에 사리장엄구를 보시하겠다는 뜻을 전했다고 한다. 국립경주박물관에 소장돼 있는 분황사 석탑 출토 은제사리합을 직접 보고 실측해 제작했다는 김 조각장은 “부처님과 마찬가지라고 여기는 사리를 담는데 정성을 쏟지 않을 수 없다”며 “손수 만든 은제사리합에 성물이 담겨 후대에 전해진다면 오히려 영광”이라고 말했다. 불국사성보박물관은 친견법회를 열어 돌아온 분황사 사리와 복원한 은제사리합을 일반에 공개할 예정이다. 법회 후에는 분황사 모전석탑을 축소한 사리장엄구와 함께 은제사리합에 담긴 사리를 탑에 다시 봉안할 계획도 갖고 있다.

지난해 사리이운식 및 친견법회를 대대적으로 봉행한 바 있는 부여 무량사는 승탑을 세우고, 사리장엄구를 별도로 제작해 이운해온 사리를 봉안할 예정이다. 조계사는 출처가 명확하지 않은 사리들을 수습해 모두 수습해 국공립박물관 사리반환이 마무리되는 시점인 2019년 말경에 대웅전 삼존불에 봉안한다. 불상과 탑에 사리를 봉안해 예경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부처님 입멸 후부터 이어온 사리신앙을 되새기는 것이다.

한편 종단은 국공립박물관 수장고에 남아 있는 사리를 사찰로 이운하는 노력을 올해도 이어간다. 불교중앙박물관은 2019년까지 8건 89과의 사리가 제자리로 돌아갈 수 있도록 국공립박물관과 협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사리신앙은

사리신앙은 부처님 열반과 함께 시작된다. 제자들은 부처님 다비 후 나온 수습된 사리를 탑에 봉안했다. 사리는 곧 부처님으로 인식됐고, 사리가 봉안된 탑 또한 예경의 대상이 됐다. 사리신앙이 이어지면서 사리를 담는 용기인 사리장엄구도 함께 발달한다. 유리나 수정, 황금으로 된 병이나 단지를 만들어 사리를 담고 은이나 동, 철, 돌로 된 외합을 만들어 2중, 3중으로 보호했는데, 그만큼 사리를 성스럽게 생각했음을 보여준다. 우리나라도 삼국시대 불교가 전래된 이래 사리신앙이 꾸준히 이어졌다. 현재까지 전하는 수많은 석탑과 불국사 석가탑 사리장엄이나 감은사지 동서삼층석탑 사리장엄구 등이 이를 반증한다.

 

[불교신문 3359호/ 2018년 1월10일자]

어현경 기자 eonaldo@ibulgyo.com

<저작권자 © 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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