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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불상을 찾아서] <2> 논산 개태사 석조삼존불

기사승인 2018.01.12  16:4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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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삼국 통일 기념으로 조성돼

개태사 석조삼존불은 태조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한 기념으로 조성됐다. 고려 초기 지방에 조성된 석불상 가운데 조형미가 뛰어나다고 평가받고 있다. 사진=문화재청

고려 초기 불상의 특징 가운데 하나를 꼽으라면 크기다. 충청도 지역을 중심으로 논산 개태사, 관촉사, 부여 대조사 등에는 거대 불상이 조성됐다. 크기가 큰 탓에 전체적으로 조각이 섬세하지 않지만, 참배하는 이들을 압도하는 불상을 마주하다보면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고려 초 거대 석불입상이 조성된 배경에 대해서 학자들은 “왕이 곧 부처”라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서라는 견해를 제시한다. 고려를 건국하고 후삼국을 통일한 태조왕건이 불교를 활용해 왕권을 강화하려고 했던 노력과 일맥상통한다.

그 첫 걸음이 바로 논산 개태사다. 우리나라 대부분 사찰이 산지가람인 것과 달리 개태사는 평지에 창건됐다. 주차장에 내려 몇 걸음만 걸으면 사찰에 금방 들어서 참배하기 편하다. 이곳에는 고려 초에 조성된 석조삼존불이 유명하다.

개태사는 태조가 후삼국을 통일한 기념으로 창건됐다. 936년 건립해 4년만인 940년 완공됐다. 지금 사찰터는 후백제 견훤과 최후의 결전을 벌인 격전지라고 한다. 개태사 창건 당시 태조가 직접 발원문을 썼다. “백제와의 전쟁을 이길 수 있게 해준 부처님께 감사하기 위해 불당을 창건한다”며 “산 이름은 천호(天護)라고 하고 절 이름을 개태(開泰)라고 한다”고 밝혔다. 하늘의 보호를 받는 산에 조성된 이 사찰은 태평시대를 여는 의미를 담고 있다. 나라의 완성과 태평을 상징하는 이 사찰은 고려시대 내내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는데 매년 봄가을마다 화엄법회가 봉행됐다고 한다.

‘왕이 곧 부처’라는 의미 담아
충청지역 중심으로 거불 조성

보물 219호로 지정된 석조삼존불입상은 사찰 창건과 함께 조성됐다. 석조삼존불입상 도상에 대한 기록이 없어, 어떤 불보살상을 조성했는지는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았다. 학자들은 나말여초에 화엄사상의 유행과 함께 상당수의 비로자나불상이 조성된 것을 토대로 본존을 비로자나불로 보는 경우도 있다. 본존불 높이는 4.15m, 향좌측 협시보살 높이는 3.5m 향우측 협시보살은 3.2m 크기다. 크기나 형태 모두 이전 시대에는 찾아보기 어려운 양식으로, 고려시대 석불조각의 시원과도 같아 미술사적으로 의미하는 바가 크다.

본존불은 둥글고 평편한 얼굴에 귀가 어깨까지 길게 늘어졌다. 육계가 표현돼 있으나 나발은 사라지고 없어 민머리처럼 보인다. 두 손은 투박하고 큰 데, 오른손은 위로 들어 손바닥이 바깥을 향하며 왼손은 배 위에 올려놓은 형태다. 협시보살상은 영락장식과 천의자락이 비교적 뚜렷하게 남아 있다. 향좌측 보살상 머리 부분은 1988년 법당 개축 때 발견돼 보수한 것으로, 향우측보다 보존상태가 좋다.

최성은 덕성여대 교수는 ‘개태사 석조삼존불임상 연구’ 논문에서 “개태사는 태조가 직접 창건발원문을 쓸 정도로 고려에서 중요하게 여겼던 사찰이고, 이곳에 봉안된 거대한 석조삼존불입상은 고려왕실의 위용을 나타내는 기념비적 불상”이라고 평가했다. 

어현경 기자 eonaldo@ibulgyo.com

<저작권자 © 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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