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경전으로 본 저승세계

18세기에 그려진 시왕도다. 진광대왕의 지옥 장면에서는 옥졸이 망치를 들고 죽은 사람을 관에서 꺼내는 장면이 표현돼 있다. 송제왕은 경설(耕舌)지옥 또는 발설(拔舌)지옥을 관장하는 데 이곳에서는 죄인의 혀를 빼내어 그 위로 소를 몰아 밭을 가는 형벌을 가한다. 사진=국립중앙박물관.

‘지장보살본원경’ 근간으로
사후세계 위한 명부신앙 성행
시왕과 지옥세계도 구체화돼

49일간 7번 심판 받는 동안
유족들 망자 위해 재 올리고
경전독송하며 업장소멸 기원
죽은 이 극락왕생 발원하며
가족도 슬픔 벗어나는 계기

영화 ‘신과함께’가 11일 현재 1200만명이 관람하면서 역대 영화 흥행순위 10위를 기록했다. 자식들의 영원한 화두인 ‘효(孝)’와 죽음 이후의 세계를 판타지형식으로 보여준 게 높은 호응을 얻었다는 평가다. 영화가 화제가 되면서 모티프가 됐던 <불설수생경(佛說壽生經)>을 비롯해 불교에서 말하는 사후세계는 어떤 모습인지에 대한 궁금증이 높아지고 있다. 불교는 49재나 천도재를 통해 지금까지도 망자를 추모하고 유족을 위로하는 역할을 지금까지도 충실히 하고 있다. 여러 경전을 통해 불교의 사후세계관을 살펴보자.

불교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저승으로 간다고 믿었다. 명부(冥府)라고도 불리는 이곳에는 지장보살과 함께 시왕(十王)이 있다. 지장보살은 지옥중생을 구제하기 전까지 성불하지 않겠다는 서원으로 저승을 지킨다. 망자는 이곳서 중음신(中陰身)으로 49일을 지내며 7명의 대왕을 만나 7번 심판을 받는다. 죽은 뒤 100일, 1년, 3년 후에도 심판을 받는데, 시왕의 판결에 따라 육도윤회가 결정된다는 게 일반적으로 알려진 사실이다. 이는 불교 고유의 사상이라기보다 인도 브라만교와 도교, 민간신앙이 혼재된 결과라 하겠다.

그렇다면 왜 49일 동안일까. 망자가 다음 세상에 태어날 때까지 사이를 중음신 또는 중유(中有)라고 하는데, <유가사지론>에서는 중유기간을 최대 49일로 보고 있다. 때문에 다음 생을 얻기 전까지 49일간은 망자에게 중요한 시간이다. <지장보살본원경>에서는 부모 형제자매들이 망자를 위해 부처님 인연을 맺어줘야 한다고 강조한다. 49일이 지나면 지은 업에 따라 과보를 받기 때문에 죽은 이를 위한 재를 지내줘야 한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지장보살본원경> ‘지옥명호품’에서는 24종류 지옥이름과 지옥에서 받는 과보를 설명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익숙한 염라대왕 같은 명부의 시왕에 대한 기록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유명 배우가 까메오로 출연해 더 화제가 됐던 명부 시왕과 관련된 신앙은 역사가 제법 오래됐다. 9~10세기 편찬된 <불설예수시왕생칠경(佛說預修十王生七經)>을 보면 시왕에 대해 상세히 언급하고 있다. 7·7일과 100일, 1년, 3년에 보는 시왕의 이름이 차례대로 서술돼 있다. 

<지장보살발심인연시왕경(地藏菩薩發心因緣十王經, 이하 지장시왕경)>은 명부로 온 망자가 시왕을 만나 심판을 받는 내용이 흥미롭게 기록돼 있다. 유감스럽게도 영화에서 언급한 <불설수생경>은 저승을 설명한 경전으로 보기 어렵다. 태어날 때 진 빚을 갚기 위해 살아 있을 때 열심히 기도 정진할 것을 당부한다는 점에서 생전에 복을 짓는 예수(預修)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공통점은 갖고 있다.

<불설예수시왕생칠경>을 보면 10명의 왕이 차례로 언급돼 있다. 첫 번째 칠일에는 진광왕(秦廣王), 두 번째 칠일에는 초강왕(初江王), 세 번째 칠일에는 송제왕(宋帝王), 네 번째 칠일에는 오관왕(五官王)을 만난다. 다섯 번째 칠일에는 염라왕(閻羅王), 여섯 번째 칠일에는 변성왕(變成王), 일곱 번째 칠일에는 태산왕(泰山王)을 만나고, 100일 뒤에 평등왕(平等王), 1년 뒤에 도시왕(都市王), 3년 째 되는 날 오도전륜대왕(五道轉輪大王)을 만난다.

각각의 시왕이 다스리는 지옥의 모습과 어떤 죄를 심판하는지에 대한 내용은 <지장시왕경>에서 확인할 수 있다. 명부로 온 망자는 처음 7일 진광왕을 만나러 가는 일부터 쉽지 않다. 망자는 염마왕(염라대왕) 국경 사천산(死天山) 남문을 지나야 한다. 그 문은 망자가 지날 때마다 양쪽 기둥이 좁아져 살을 베고 뼈를 부러뜨려, 급기야 골수까지 쏟아내고 만다. 여기서 또 다시 죽는다고 해서 사천산이라고 한다. 

험한 산길을 걷는데는 짚신과 지팡이가 필수라, 죽은 이를 장례지낼 때는 삼척의 지팡이와 지장보살에게 보내는 편지, 짚신을 놓아줘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고생 끝에 진광대왕을 만나면 귀문관(鬼門關)앞에 세우는 데, 이 때 귀신들이 모여 살생의 죄를 물어 쇠몽둥이로 내려친다. 여기서 선악의 경중이 정해지지 않으면 초강왕을 만난다.

초강(初江)가에 사는 초강왕을 만나기 위해서는 나하(奈河)를 건너는데 세 곳의 나루터가 있다. 망자의 옷을 벗겨 나뭇가지에 걸어 죄의 무게를 잰 후에 무릎 깊이의 얕은 곳은 죄가 가벼운 이가 가는 길이다. 물살이 빨라 떠내려 갈 곳은 악인이 건넌다. 파도 속에 독사가 있어 망인을 공격한다. 선인은 금과 은 칠보로 된 다리를 건널 수 있다.

21일째 되는 날에는 송제왕을 만나는데 사음(邪淫)을 저지른 업을 심판한다. 일본의 일련스님이 쓴 <시왕찬탄초>에 따르면, “이 관문에 오는 죄인은 남의 생명과 물건을 빼앗았다고 해 손과 발을 싹둑 잘라 철판에 늘어놓는다”고 서술하고 있다.

네 번째 오관왕은 업을 재는 저울(業秤)에 신구의 삼업을 재서 죄의 무게에 따라 벌한다. 다섯 번째로 만나는 왕은 우리에게 익숙한 염라왕이다. 염라왕은 업경(業鏡)을 갖고 있는데, 업경을 보면 마음으로 지은 죄 뿐만 아니라 삼세에 저지른 선한 일과 악한 일을 모두 비춘다고 한다.

염라국을 나와 여섯 번째 변성왕에게 가는 길에는 철환소(鐵丸所)를 지나야 하는데 둥근 돌이 서로 굴러다니는데 돌을 피하기가 쉽지 않다. 이 길을 7일 동안 꼬박 걸어야 변성왕을 만날 수 있다. 그는 업칭과 업경으로 죄가 드러난 사람은 벌을 받게 한다.

49일이 되는 날에는 태산왕을 만나는데, 염라왕의 서기이기도 한 태산왕은 인간의 선악을 기록해 지옥, 아귀, 축생, 수라, 인, 천 등 육도 가운데 어느 곳으로 윤회할 지를 결정한다. 여기에 100일, 1년, 3년이 더해지는데, 오도전륜대왕을 만나 다시 태어날 곳이 정해지면, 심판은 마무리 된다.

불교에서는 이 시기 재를 올리고 경전을 독송해 망자를 추모하는 추선공양이 더해졌다. 죄인들이 업을 소멸할 수 있게 부모나 형제자매들로 하여금 재를 올리도록 한 것이다. 1년 후에 도시왕을 만나는데, 그 사이 유족들이 망자를 위해 경전과 불상을 조성하면 고통을 면할 수 있다는 게 이런 맥락이다. 

<지장경>에서는 “임종한 사람을 위해 7·7일 안에 다시 좋은 인연을 맺어주면 죽은 자들이 영원히 나쁜 길에서 벗어나게 된다”며 “부모 형제 자매들이 망자를 위해 성스러운 일을 한다면 그 공덕의 7분의 1은 죽은 자가 얻고, 7분의 6은 산사람이 갖게 될 것”이라고 설해 유족들의 추선(追善)공양을 권유했다.

명부신앙은 이처럼 망자가 돼 지옥에서 고통을 받는 것을 피하려면 살아서 열심히 선업을 닦을 것을 가르쳐준다. 또 부모 형제자매를 떠나보낸 유족들에게는 슬픔을 이기고, 고인을 위해 재를 올려 기도함으로써 업을 소멸함으로서 추모하도록 권유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불교전래와 함께 명부신앙이 전해지면서 망자를 위한 애도는 꾸준히 이어져 왔다. 특히 조선시대에는 지장신앙이 성행하면서 지장전이나 명부전, 시왕전이 별도로 조성돼 신행활동은 더 활발해 졌다. 

구미래 동방문화대학원대학 교수는 <한국불교의 일생의례>에서 “49재는 불교 윤회사상에 따라 망자를 보다 좋은 내세로 보내기 위해 행하는 의례”라며 “세상을 떠난 뒤라도 스스로 깨달음을 얻어 윤회에서 벗어날 것을 권하는데, 궁극적으로는 망자가 자력으로 일어날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점에서 기복적 행위와 구분된다”고 말했다.

 

1718년 화엄사에서 간행한 불설수생경. 사진=동국대 학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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