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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응천 교수의 한국범종 순례] <23> 명창7년명 범종

기사승인 2018.01.16  15: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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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 전기와 후기 가교역할…12세기 마지막 종

오쿠라컬렉션 가운데 하나
많지 않은 12세기 범종 눈길
명문곽 연판문 섬세히 처리
전기서 찾을 수 없는 당좌
후기 범종으로의 이행 시사

12세기에 들어와 기년명 종의 수효는 갑자기 그 수가 줄어드는 경향을 볼 수 있다. 이 시기에 제작된 기년명 범종으로는 국립춘천박물관 소장의 명창(明昌) 2년명 종(1191)과 명창3년(明昌三年) 대자사명(大慈寺銘) 종(1192) 정도가 확인되는데, 특히 대자사종은 해방 이후 북한에서 출토되어 평양 역사박물관에 소장된 작품으로서 2006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개최된 <북녘의 문화유산> 전시에 출품되어 새로이 소개된 종이다. 

높이 83cm에 이르는 비교적 큰 작품이면서 그동안 고려 후기 범종의 대표적인 특징인 입상연판문대(立狀蓮瓣文帶)가 천판 외연을 돌아가며 돌출 장식된 첫 번째 사례로 알려져 왔던 일본 개인 소장의 승안(承安) 6년명(1201) 종보다 9년 앞서 만들어진 새로운 예로 주목을 받게 되었다. 이번 호에 소개될 도쿄(東京)국립박물관 소장의 명창(明昌) 7년명 종은 많은 수의 한국 문화재를 수집하여 일본으로 반출한 뒤 도쿄박물관에 기증한 오쿠라(小倉) 컬렉션 가운데 하나로서 1196년에 제작된 명문을 지니고 있어 그 예가 많지 않은 12세기의 편년 작품으로 가치가 높다. 

총고는 47.7cm로서 역시 12세기부터 많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고려 소종 계열로 분류된다. 종신 상부에 S자형으로 굴곡진 용뉴는 종신에 비해 작게 묘사되었고 용두는 섬세하고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그 입을 천판 위에서 띤 채 보주로 연결시킨 것은 11세기 전반부터 꾸준히 이어져 온 용뉴의 표현을 따랐다. 용의 목에는 지느러미와 비늘까지 세세히 표현되었고 하단에서 뻗어 나온 갈기 장식은 마치 구름문이나 당초문처럼 음통 위에 높게 부조되었다. 음통은 층단의 구획이 없이 상, 하단에만 턱을 두어 상단에 연판문이 시문되었고 전체를 당초문으로 장식하였다. 천판의 가장자리를 돌아가며 촘촘히 시문된 연판문대는 주조시의 결함인지 몰라도 1/4 정도는 그 세부가 뭉개져 잘 표현되지 못했다. 

그리고 상, 하대의 문양은 일반적인 종과 달리 서로 다르게 표현되었다. 상대는 연화를 중심으로 잎이 넓은 엽문으로 시문된 반면 하대에는 활짝 핀 연화를 장식하고 그 사이를 넝쿨형의 당초문으로 연결시킨 매우 화려한 모습이다. 상대 아래 붙은 방형의 연곽대에는 당초문과 연곽 내부에는 연화좌(蓮花座) 위에 낮게 돌기된 연뢰를 9개씩 배치하였다. 한편 한쪽 연곽 아래의 종신 여백 면을 택해 비교적 큰 크기(18.3×12.3cm)의 방형의 명문곽을 배치하였다. 이 명문곽은 상부에 연판문을 표현하였고 좌우에 연곽의 모습과 같은 당초문대를 둘렀으며 폭이 넓어진 하부에는 대좌의 앙련과 같은 연판문을 유려하게 표현하여 다른 명문곽에 비해 매우 섬세하게 처리하고 있음이 주목된다. 이 명문곽 내부에는 조금 서툰 듯한 필치로 4행 54자의 음각명(陰刻銘)을 매우 또렷하게 새겨 놓았다. 

그 내용은 ‘명창칠년병신사월일주, 성금종일중육십칠근덕, 흥사현배보권단나동일심, 성궁만세상동량호장김인봉부동량연보경찬진번효 (明昌七年丙辰四月日鑄, 成金鍾一重六十七斤德, 興寺懸排普勸丹那同一心, 聖躬萬歲上棟梁戶長金仁鳳副棟梁延甫慶讚陳蕃孝)’로서 ‘명창(明昌) 7년(1196) 병신 4월일에 금종 한구를 67근의 중량을 들여 덕흥사(德興寺)에 걸었는데, 성궁만세(聖躬萬歲)를 위하여 보권 단나(普勸丹那 : 시주자)가 한마음으로 발원하였다. 

상동량(上棟梁)은 호장의 직급을 지닌 김인봉(金仁鳳), 부동량(副棟梁)은 연보(延甫)이며 경찬(慶讚 : 경찬의 의미는 불명확)은 진번효(陳蕃孝)로 풀이된다. 여기서 ‘금종(金鍾)’은 앞서 보이던 바와 같이 실제 금(金)이 사용되었다는 의미가 아니라 종을 미화시킨 표현이며 ‘일중(一重)’은 ‘입중(入重)’과 같은 의미이고 67근(斤)의 중량이 소요된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시납 사원인 ‘덕흥사(德興寺)’의 소재는 <태고사사법(太古寺寺法)>에 보이는 함경북도 회령군(會寧郡) 팔을면(八乙面) 소풍산(小豊山)에 위치했던 귀주사(歸州寺)의 말사(末寺) 정도로만 확인되나 그 연혁에 대해서는 분명치 않다. ‘단나(丹那)’는 단나(檀那), 단월(檀越)과 동일한 표현임을 알 수 있다. 다만 첫머리에 사용된 ‘명창(明昌)’은 금(金)나라의 년호이지만 이때는 이미 승안원년(承安元年)으로 바뀐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아직 새롭게 바뀐 연호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구 연호를 사용하고 있음이 흥미롭다. 

이 명문구의 좌우편으로는 당좌와 함께 단독의 비천상이 앞, 뒤면 동일하게 부조되어 있다. 몸을 오른쪽으로 튼 채 옆으로 비행하는 모습의 비천상은 두 손으로 지물을 받쳐 들었으나 연꽃인지 향로인지는 분명치 않다. 아울러 위로 뻗쳐 흩날리는 몇 가닥의 천의는 경직되고 부자연스럽게 처리되어 이전 시기의 비천상과는 많은 대조를 보여준다. 

당좌는 내부에 1+6+11 순의 연과(蓮顆)를 장식한 자방과 그 주위를 10판의 쌍엽으로 이루어진 단선의 연화문을 배치하고 각 연판 사이마다 긴 줄을 판심(瓣心)처럼 첨가한 조금은 도식화된 모습이다. 다시 이 당좌의 외곽을 원권으로 두른 뒤 그 안에 연주문을 배치하여 마치 연화문 수막새처럼 표현되었지만 일부가 일그러져 주조상의 미숙함이 느껴진다, 이러한 당좌 형식 역시 고려전기 종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새로운 모습으로서 고려후기 범종으로의 이행을 시사해 준다.

평양박물관 소장의 대자사종에서 처음 등장하기 시작한 입상연판문대가 그보다 4년 뒤에 만들어진 이 종에서 11세기에 주로 나타나는 천판 외연의 연판문대로 다시 바뀌어 있는 점은 아직까지 입상연판문대가 고려 범종의 양식적 특징으로 정착되지 못했음을 시사한다, 따라서 이 명창7년명 종은 12세기 후반 고려 종의 양식이 새로운 변화를 이행해 가는 과도기 양상을 잘 보여주는 편년 자료로서 그 의미가 깊다. 이후 13세기 범종에 와서는 모든 종에 입상연판문대가 본격적으로 등장되기 시작하여 완전한 독립 문양대로 자리 잡게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여음(餘音)

이 종은 앞서 소개되었던 건통7년명(乾統七年銘, 1107) 종과 함께 몇 점 남아있지 않은 12세기의 중요한 편년자료이지만 이 시기에 갑자기 종의 제작이 줄어들었다고 보다는 명문이 없거나 간지(干支)만을 기록한 종 가운데 확인되지 못한 예가 더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한 예를 잘 보여준 것이 평양 소장의 대자사명(大慈寺銘) 종으로서 지금까지 츠보이 료헤이(坪井良平)가 주장하였던 고려 후기 종의 시작을 13세기 초가 아니라 12세기 후반, 정확히 1192년경으로 소급할 수 있게 된 새로운 편년 작품이 되었다. 

[불교신문3361호/2018년1월17일자] 

동국대 대학원 미술사학과 교수

<저작권자 © 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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