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밤, 외삼촌이 돌아가셨다. 엄마의 바로 위 오빠다. 여든 가까운 연세에 암이 재발했다고 한다. 내가 기억하는 외삼촌은 40대의 핸섬한 아저씨였지만, 영정사진 속 외삼촌은 볼이 홀쭉한 할아버지였다. 길에서 마주쳐도 전혀 모를 노인의 얼굴. 나는 지금 그때의 외삼촌 나이가 되었고, 외삼촌은 다시는 만나지 못할 먼 길을 떠나셨다. 내가 어렸을 적에는 외삼촌이 자주 우리 집에 와 엄마를 보고 가셨다. 나는 ‘외삼촌’이 엄마의 오빠를 가리키는 말인지도 모르는 어린 아이였다. 이후 외삼촌이 사업차 중국에 나가셨다는 소문을 들었고 엄마는 오빠의 소식을 한동안 듣지 못했다.

새벽, 전화기가 울렸다. 엄마였다. “날 보고 싶어 했단다. 우리 오빠 불쌍해. 오빠야! 오빠야!” 엄마가 그렇게 목 놓아 우는 걸 처음 들었다. 나도 슬픈데 정작 엄마가 통곡을 하니 나는 울 수 없었다. 오빠를 잃은 어린 누이가 울었다. 나는 오롯이 엄마 속에서 나온 아이의 슬픔을 위로해야만 했다. 한줌 재가 되어 우리에게 돌아온 외삼촌.

나는 장례식장 귀퉁이 의자에 앉아 길게 연결된 복도를 바라봤다. 산 사람들이 분주히 돌아다녔다. 각 호실 화면마다 띄워진 영정사진들을 보며 매순간 죽음이 얼마나 우리들 가까이 있었는지 상기했다. 다들 어떤 생을 살다 그곳으로 돌아갔을까. 나는 어느 날 어떤 얼굴로 죽을까. 내 장례식에는 누가 와 줄까. 가만히 앉아 있으니 이런 생각은 꼬리를 물고 늘어져 호젓하게 했다. 그리고 떠오른 시 한편, 천상병 시인의 ‘귀천’이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 하며는/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우리가 사는 이승을 시인은 ‘소풍’이라는 가장 순수한 시어로 노래했다. 죽음은 공평하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아무리 똑똑하고 잘 생겨도, 아무리 좋은 차에 큰 집이 있어도 그를 피할 수 없다. 살면서 긁어모으려는 수많은 욕심에 휘둘리지 않고 삶을 가벼이 ‘소풍’으로 여길 수 있는 마음. 어느 날 죽음 앞에 정면으로 서면 우리가 살면서 목숨 걸고 지키려고 했던 것들의 가치가 한줌 재와 연기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마침내 ‘죽음이란 무엇인가’의 다른 말은 항상 ‘삶이란 무엇인가’였음을, 나는 장례식장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불교신문3363호/2018년1월24일자] 

전은숙 동화작가
저작권자 © 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