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7

                                              고은

아홉 살 적 아버지한테 혼났다

왜 네 놈은

배만 그리냐

돛단배만 그리냐

기러기만 그리냐

어디로 가는

기러기만 그리냐

여든네 살 적 아버지 넋한테 혼났다

왜 네 놈은

배를 안 그리느냐

새 안 그리냐

왜 여기 밖에 모르냐 어디로 가거라

이 시에는 아버지로부터 꾸지람을 듣는 어릴 적 ‘나’와 나이가 연만한 ‘나’가 등장한다. 철이 없을 때에는 바깥으로 돛단배처럼 기러기처럼 나다니려다 꾸중을 듣고, 나이가 들어서는 꿈도 없이 생활에 무겁게 묶여서 시든 풀처럼 매일을 무기력하게 살아가려다 나무람을 듣는다. 눈앞만 바라보고 살지 말고 오늘 너머를 바라보면서 세속 너머를 바라보면서 산 너머, 먼 바다 너머 멀리 돛단배 가고 기러기 가듯이 배포 두둑하게 살 일이다. “하늘 가는 기러기한테 배우게나// 먼 데 가는 힘겨운 날개한테 배우게나// 아득하게나// 아득하게나”(시 ‘어느 날 184’) 살 일이다.    

[불교신문3366호/2018년2월3일자] 

문태준 시인·불교방송 PD
저작권자 © 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