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

풀 아래 웃음 짓는 샘물같이

내 마음 고요히 고운 봄 길 위에

오늘 하루 하늘을 우러르고 싶다

-김영랑 시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에서

김영랑은 마음의 상태를 표현한 시를 많이 지었다. 잘 알려진 대로 시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에서는 “내 마음의 어딘 듯 한편에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돋쳐 오르는 아침 날빛이 빤질한 은결을 돋우네”라고 써서 고양된 마음의 상태를 아침 햇살에 반짝반짝하는 은빛 물결의 파동에 빗대었다. 이 물결은 생명 에너지의 가볍고 상쾌한 움직임이기도 할 것이다. 

시인은 봄의 하늘을 우러르고 싶다고 말한다. 이 봄의 하늘은 오월의 하늘로 읽히는데, 김영랑 시인에게 오월은 생명의 약동이 한껏 넘쳐나는 때이다. 시인은 “바람은 넘실 천 이랑 만 이랑/ 이랑 이랑 햇빛이 갈라지고/ 보리도 허리통이 부끄럽게 드러났다”(시 ‘오월’)고도 표현했다. 돌담에 쏟아지는 따스한 봄 햇살을 사람의 가만한 속삼임이라고 보았고, 풀 아래 맑은 샘물이 흐르는 것을 사람의 잔잔한 웃음이라고 보았다. 서로간의 다정하고도 잘 어울리는 관계를 드러내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그와 같은 관계로 ‘나’도 ‘하늘’을 향해 서고 싶다고 했다. 이 시를 읽으면 부드럽게 친화하는 마음과 상대를 받드는 마음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불교신문3368호/2018년2월10일자] 

문태준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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