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참화의 상징에서 평화 심볼로 우뚝서다

눈에 덮힌 월정사. 6·25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된 월정사와 오대산은 이제 올핌픽을 통해 평화의 상징으로 전 세계인들의 이목을 끌게 됐다.

 

전쟁 참화 월정사와 오대산
전쟁 피하려던 마을 주민 전소
명령자 두 장군 불의의 사고사

스님 국민 힘 합쳐 피해 복구
평창동계올림픽 개최되며 
전 세계 이목 오대산에 집중

만경봉 92호가 동해항에 들어왔다. 평창 동계올림픽에 참석하는 북한 선수들을 격려하는 응원단을 태우고 한국 영토에 닻을 내렸다. ‘지상낙원이라는 사탕발림에 속아 만경봉호를 탔던 재일동포들이 북한의 원산항에 발을 딛는 순간 지옥을 경험했다는’ 1970년대 라디오를 통해 숱하게 들었던 그 만경봉호다. 한반도는 지금 전쟁과 평화의 갈림길에 서있다. 먼저 ‘코피’를 터트려 기선을 제압하겠다는 미국과 이에 맞서 핵무기를 꺼내는 북한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숨을 고르는 시간이 평창 동계올림픽이다.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을 일주일 앞둔 지난 3일 평창으로 갔다. 진부에서 내려 월정사 상원사를 거쳐 오대산에 올랐다. 월정사는 전쟁의 상처와 평화를 염원하는 희망이 어린 영지(靈地)다. 전쟁의 포화가 오대산을 뒤덮기 전 한 젊은 수좌가 상원사 한암스님을 친견했다. 문수전에 앉은 스님 뒤로 화염이 솟구치는 것을 수좌는 보았다. 곧 전쟁이 난다며 빨리 오대산을 벗어나시라고 조언했다. 모시고 왔던 은사 스님으로부터 ‘헛소리 한다’며 꾸중을 들었지만 전쟁이 일어났다. 38도 휴전선과 접경한 오대산은 전쟁 전부터 전쟁터와 다름 없었다. 

1948년 정부 수립 후 빨치산 부대 침투로(浸透路)로 오대산이 이용되면서 월정사를 비롯한 상원사 등 주변 사찰도 영향을 받았다. 북의 빨치산이 사찰에 들어와 음식을 얻거나 국군과 내통했다며 대중을 협박하는 등 혼란이 심했다. 우리 측도 방비에 나서 북대 미륵암, 월정사 위 아래 마을, 두루봉 동대산 진고개 노인봉 등 주요 예상 침투로 마다 초소를 두고 전투경찰을 배치했다. 월정 삼거리에는 군대가 주둔했다. 

신라 자장율사가 중국 오대산에서 문수보살을 친견하고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셨다는 이야기가 전해오는 오대산은 각 봉우리에 5만의 보살이 상주한다고 믿는 ‘부처님 땅’이다. 울창한 산림에다 세조의 병을 낫게 하고 목숨을 지켰다는 이유로 왕실의 후원을 받아 조선시대에도 번영을 누렸다. 천년을 넘게 내려온 영화는 그러나 6·25한국전쟁으로 한 순간 잿더미로 변했다. 

차에서 내리자 칼바람이 매섭다. 거센 바람까지 불어 체감온도는 영하20도를 넘겼다. 너무 추워서인지 월정사에는 인적이 드물었다. 경내는 눈을 치우는 제설 차량이 오갔다. 경내 중심 도량인 적광전을 중심으로 좌우 전면에 모두 25곳의 전각이 서있는 대가람이다. 신라 자장율사가 세웠다고 알려진 국보 제48호 팔각구층석탑이 적광전 앞에서 늠름하면서도 우아한 자태를 자랑한다. 언론에도 널리 소개되고 한 때 출가 체험 열풍을 불러일으키며 인생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기게 했던 출가학교가 이 곳 월정사에서 시작됐다. 전나무 숲길, 박물관 등 수많은 문화유산과 이야기를 간직한 아름다운 가람이다. 사시사철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휴식처이자 삼독심에 물든 마음의 때를 씻겨주는 청량한 바람과 울림이 있는 명찰이다. 

지금의 월정사가 있기까지 많은 세월 수많은 사람들의 눈물과 수고가 있었다. 전쟁의 참화로 탑만 남기고 모두 사라진 월정사를 스님들은 낮에는 오대산에서 나무를 베어 나르는 울력을 하고, 밤에는 공부하며 일으켜 세웠다.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부처님 집을 먼저 세웠다. 이를 지켜보던 기업가 정치인들이 자장율사의 부처님 세상을 향한 꿈이 담긴 월정사를 세워야한다며 후원회를 조직하며 함께 거들어 다시 세운 가람이다. 월정사를 가진 평창에 평화를 상징하는 올림픽이 열리는 것도 오대산의 영험한 기운이 미쳤는지 모른다. 

상원사 모습.

북의 기습 공격으로 국군이 변변한 대응을 하지 못해 접경 지역에 자리한 월정사는 개전 당시에는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았다. 그러나 1950년 겨울 압록강 까지 진격한 유엔군이 중공군의 개입으로 후퇴해 38도선에 방어선을 구축하고 양측이 공방을 벌이면서 월정사도 큰 피해를 입는다. 

미 8군 사령부와 육군본부는 동부전선을 담당하고 있던 국군 1군단에게 38선상의 동부전선인 양양-서림리-현리-원대리를 연결하는 방어선을 구축토록 한다. 1군단은 9사단을 좌익으로, 수도사단을 우익으로 하여 38도선을 방어한다. 사단 예비부대를 운용하여, 오대산을 중심으로 제2전선을 구축하려는 북한군 유격부대에 대응하고 군단 직할 경비부대를 하진부리에 배치해 후방을 경비토록 한다. 하지만 미8군 사령관 워커 중장은 38도선에서 방어가 불가능할 것으로 판단하고 12월22일 예하 부대에 초토화 작전을 명령한다. 동부전선을 담당하던 1군단장 김백일 장군은 미8군 사령부와 육본의 작전명령을 하달 받아 수도사단과 9사단 등 예하 부대에 작전지역 내 기간 시설물 등을 소각할 것을 명령한다. 

사찰과 민가도 북한군과 중공군이 산악을 이용한 기동과 유격전을 벌일 때 악용될 수 있다는 이유로 소각 대상이었다. 이 소문이 삽시간에 월정사에 전해졌다. 월정사 대중들은 사찰을 지키기 위해 나섰다. 전 대중이 나서 북한군 중공군이 숙영할 수 없도록 방비했다. 이후 소개령에 따라 일부 성보문화재를 몸에 지니고 1951년1월2일까지 한 명도 남김없이 피난을 떠났다. 다시 월정사와 오대산 일원을 우리 측이 점령한 뒤 피난 갔던 대중이 돌아왔다. 그런데 탑만 남기고 모두 불탔다. 대중들은 아연실색했다. 그런데 월정사 뒤편 마을 민가 일부가 불에 타지 않고 남았다. 집에서 월정사 소유 귀중품이 나왔다. 월정사 소각 전모도 알게 됐다.

대중이 떠난 후 월정사를 불 질러 전소시킨 이는 뜻 밖에도 마을 청년 3명이었다. 월정사를 소각하면 통행증을 발급해주겠다는 국군의 회유에 칠불보전에 마른 짚 더미로 불을 붙였다. 7번이나 시도했지만 불이 붙지 않았다 한다. 기름을 끼얹은 뒤에야 불이 붙었다. 국군은 산내 북대사, 사고(史庫), 영감사, 지장암, 관음암은 직접 소각하면서 월정사는 민간인에게 넘겼다. 천년 고찰을 없애는 부담과 두려움이 컸으리라. 

월정사가 소각되는 작전을 수립하고 지시했던 두 사람은 얼마 뒤 사고로 세상을 떠난다. 초토화 작전을 명령했던 미8군 사령관 워커 중장은 그 다음 날 대위로 진급한 아들의 은성 무공 훈장 수상을 축하해주기 위해 가던 중 의정부 남쪽(현 서울시 도봉구 도봉동)에서 교통 사고로 숨진다. ‘죽더라도 한국을 지키겠다’는 결사항전으로 낙동강을 수호했던 한국전쟁의 영웅은 그렇게 허무하게 생을 마감했다. 사고사를 당한 인근인 국철 도봉역 부근에 전사지 표지석이 있고 미군 휴양지 광장동의 워커힐 호텔 명칭은 그의 이름에서 땄다. 

워커의 명령을 받아 예하 부대에 소각을 지시했던, 김 장군은 1951년3월28일 여주 미8군 전방지휘소에서 주요 지휘관 회의에 참석 후 경비행기로 강릉 사령부로 귀환하다 대관령 인근 발왕산에 추락한다. 사고기와 유해는 1년이 지난 1952년 5월9일 발견된다. 이를 두고 사찰을 전소시킨 업보라는 소문이 떠돌았는데 고인의 아들이 월정사에 와 참회하고 위패를 월정사 무량수전에 모셨다. 부산에 살던 장군의 미망인이 월정사에 들렀다가 관련 글을 읽고 충격을 받아 박정희 대통령에게 호소해 보상금을 내렸고 이 후 월정사도 그 내용을 삭제했다.

두 사람이 작전 지역내 월정사가 있다는 사실을 알 리가 있었겠는가. 월정사 소각과 사고사를 연결짓는 것도 호사가들의 입방아에 불과하다. 본질은 전쟁의 잔혹성 비인간성 반생명성이다. 전쟁은 천년의 문화유산도 아름다운 자연환경도 인간 사이의 정과 예의도 앗아간다. 무엇보다 사람 목숨을 아무렇지 않게 취급한다. 내가 살기 위해 평소에는 꿈도 못 꿀 악행을 서슴치 않는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도 전쟁만은 어떻게든 막으려고 군대 사이에 맨 몸으로 가로막으면서 평화를 호소했다. 혹시 닥칠 재앙이 두려워 직접 불 지를 엄두를 못 냈던 국군도, 살기 위해 자신이 의탁했던 사찰을 없앤 마을 청년들도 모두 희생자다. 전쟁이 아니면 일어나지 않을, 짓지 않아도 될 업이다. 

중대를 지나 적멸보궁을 참배했다. 추운 날에도 독경소리 기도가 끊이지 않는다. 중대 사자암 아래에서부터 적멸보궁 까지 돌계단이 놓여 걷기에 아무런 불편이 없었다. 혹시 미끄러질까 종무원이 온풍기를 이용해 눈을 쓸고 있다. 비로봉을 오르니 발 아래는 은백의 세상이 펼쳐졌다. 만경봉호가 정박할 동해 바다가 지척이고, 동계올림픽이 열릴 평창 대관령도 한눈에 들어온다. 귓전을 때리는 바람은 차고 매섭지만 눈 앞 전경은 평화롭다. 이 평화가 영원히 한반도에 머물기를 염원하며 기도했다. 

[불교신문3369호/2018년2월1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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