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있을 때 명상과 염불 잠 외에는 책 읽어요”

부산 관음사 회주이자 조계총림 송광사 율주인 지현스님은 책을 읽고 수행하고 법문하는 스케줄이 전부다. 누구에게나 하루 24시간이지만 스님은 여유롭게 독서를 하고 명상과 염불을 쉬지 않으며 전국 곳곳 청하는 곳마다 찾아가서 법문을 한다.

불법에 귀의해서 출가수행자로 산지 50여년 가까이 흘렀지만, 지현스님의 책상 위엔 손때 묻은 책 <불타 석가모니>가 놓여 있다. 일본 철학자 와타나베 쇼코가 쓴 책을 저자가 죽기 2년 전, 1975년 샘터문고에서 <부처님의 일생>이란 이름으로 냈던 오래된 책이다. 번역은 법정스님이 했다. 이 책은 부처님 전기이면서 단순한 한 위인의 생애에 한정되지 않고, 마치 한 권의 흥미진진한 문명발달론을 읽는 것처럼 부처가 살았떤 시대의 사회상과 당시 사상의 흐름, 문화적인 경향에 대해서 다룬다.

“불교를 이해하려면 무엇보다도 부처님의 생애를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2500년간 인류의 스승으로서 우리를 깨달음으로 인도한 부처님이 어떤 생을 살았고, 그의 가르침이 무엇이었는가에 대해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불교공부의 시작입니다.” 조계총림 송광사 율주이자, 부산 관음사 회주인 지현스님은 수십년간 부처님생애 관련 서적을 숱하게 봐왔지만 부처님의 삶과 삶에 깃든 성인의 마음을 100% 숙지하긴 어려웠다 한다. 

“요즘 들어서야 부처님의 발자취와 생애를 온전히 바라볼 수 있게 됐다고 할까요? 그렇다 해도 죽을 때까지 부처님의 삶을 보고 느끼는 일은 멈추지 않을 겁니다. 부처를 이해하는 것이 곧 나의 삶의 방향을 설정하는 일이죠.” 

지현스님은 법정스님과 인연으로 접한 책을 지금도 소중하게 간직한다. 강원시절 법정스님으로부터 부처님생애에 관한 강의를 들은 적도 있고, 법정스님이 번역한 <수타니파타>는 상시 지니고 다닐 정도였다. “1980년부터 30개월간 송광사 큰절에서 재무소임을 봤었어요. 그때 불일암에 자주 올라가서 법정스님을 뵈었죠. 스님의 권유로 <법구경>도 많이 보고 특히 수행자에게 부처님 생애는 가장 잘 알아야 할 전제라고 하셨어요.”

사실 지현스님은 출가하지 전에 웬만한 경전과 불서(佛書)는 다 꿰뚫었다. 수행과 기도가 일상인 두 부모님 영향이다. “부모님은 날마다 기도하셨어요. 독경을 하시고 공부를 하셨고, 집에 자주 스님들이 오셔서 공양도 하시고 주무시기도 했어요. 집안 곳곳에 부모님이 보시는 경전이 가득했고, 우리 형제들은 무슨말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해도 자연스럽게 경전 읽는 것이 생활화됐지요. 하하.” 

출가 전 이미 부처님 전기소설과 금강경, 법화경, 육조단경 등을 ‘섭렵’한 지현스님에게 출가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는지 모른다. 스님의 속가 4형제 모두 출가를 했으니 더할 나위 없다. 부모님과 형제분들 이야기가 궁금해서 스님의 고향을 여쭸더니 즉답이 돌아왔다. “내 고향은 사바세계요.” “…….” 스님은 다시한번 말했다. “저에게 출가는 길을 잃고 헤매다가 돌아온 따뜻한 고향집입니다. 절집생활이 처음부터 전혀 어색하지 않았죠.”

1977년께 해인사 강원시절 도반들과 나눠봤던 현암사 출간 일본번역서는 지금도 스님의 책상을 지킨다. 이 가운데 지금은 품절된 책 <미란타왕문경>은 기원전 2세기에 그리스왕 미란타와 스님인 나가세나와의 대화를 엮은 책으로 인도철학을 서양인이 질문하는 흥미로운 명저다. 마스타니 후미오가 쓴 <불교개론> 역시 1976년 초판이 발행됐을 때만도 장안에 화제가 됐던 책이다. 불교입문서가 드물던 시절 불교의 본질과 체계, 사상 등을 친근하고 알기쉽게 기술한 책이어서 특히나 공부하는 스님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켰다.

지현스님은 속리산 중사자암에서 온갖 발원문만 줄줄 외면서 공부했던 시절도 있다. ‘항상 불법을 모두 배워 닦기를 원합니다. 보리심에서 물러나지 않기를 원합니다….’ 이같은 여래십대발원은 지금까지도 스님의 삶을 이끄는 힘이라고 말했다. 보현보살 10대원, 관음보살 10대원, 이산 혜연선사 발원문, 영명연수선사 발원문, 예불대참회문…. “여러가지 원(願)을 공부해보니 천수경 역시 원력이 핵심이고, 반야심경은 관음지혜를 완성하는 이야깁니다. 관세음보살을 정대하고 아미타불에 대한 신앙을 지향하면서 정토삼부경이나 능엄경에도 관심을 많이 갖고 있습니다.” 

경전이야기만도 끝이 없는 지현스님은 근대중국을 대표하는 4대 고승 중 하나인 인광대사(1861~1940)가 기술한 책 <화두 놓고 염불하세>를 추천하기도 했다. 화두선 일변도인 한국불교의 풍토에 염불수행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면서 염불수행의 요체를 총체적으로 밝힌 책이다. 언제 어디서나 누구나 할 수 있는 염불수행법을 널리 전하면서 혼란기의 중국인들에게 마음의 평화와 위안을 주었던 인광대사는 중국 정토종의 13대 조사이자 대세지보살의 화신으로 추앙받기도 했다.

율원장 출신에 총림의 율주로 있는 지현스님 책상에는 계율서적이 주를 이룰줄 알았다. 하지만 스님에게 율이란, 이미 삶 전체에 스며있는 온기이자 향기가 돼버려서 전제이자 모든 것이다. 계율은 책 몇권으로 요점정리 할 차원이 아니다. “선가귀감에도 계를 파하면 선정을 이룰 수 없다고 했지요. 금강경 6분에도 ‘지계수복자(持戒修福者)’라는 말로 보살의 길을 펴기도 하고요. 계율은 번뇌를 조복시키는 부처님의 존귀한 가르침입니다. 정법이 오랜세월 유지존속되는 힘입니다.” 

스님은 늘상 진지한 이야기를 이어가다가도 틈틈이 천진한 웃음을 스르르 쏟아낸다. “요즘엔 박사학위를 받아도 대학강단에 서기 힘들잖아요. 우리 스님들은 그렇지 않아요. 불법이란 보배를 공부하는 복락을 누리면서 많은 이들 앞에 나가 세세생생 진리의 법석을 펼 수 있으니 이보다 좋은 게 있을까요?”

지현스님은 관음사 내 다양한 법회는 물론 전국 방방곡곡 마다않고 법문을 청하는 곳이면 거절하지 않는다. 관음사에서 열리는 계정혜 삼학법회, 자비명상 법회, 정광불재일법회, 약사재일법회 등 지현스님이 직접 법문을 하고 지도한다. 지난 2월23일에도 지현스님은 정초기도 법문을 설하고 정오가 넘어서야 점심공양을 했고, 그 와중에도 스님의 법문을 들으려 찾아오는 스님과 불자들의 줄을 이었다. 분주한 시간 속에서 언제 책을 보실까 궁금했다. 

“책은 사람을 안만날 때 읽어요. 사람 앞에 두고 책을 읽을 순 없잖아요.” 농섞인 스님의 말 끝에 들려온 이야기. “사람 만나고 법문하는 일 외에는 명상, 염불, 잠자는 일밖에 없는데요 뭐가 바쁩니까? 나머지 시간에 책을 보는데 그런 시간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물론 봐야할 책도 넘쳐나지만요.”

스님은 불서를 읽을 때는 특히 “마음으로 읽으라”고 제안했다. “가난한 사람이 보물창고에 들어가서 보석을 꺼내오는 심정으로 간절한 마음으로 불서를 읽었으면 합니다. 금강경을 본다면 수보리의 심정으로 경전 앞에 앉아서 부처님이 바로 지금 나를 위해서 설하고 계신다고 상상하는 겁니다. 불서는 내 문제를 치유하는 가장 수승한 약입니다. 충분히 이해하고 수행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출가를 흔히 세간을 떠나는 것(離世間)이라고 하지만, 스님은 오히려 세간을 이롭게 하는 것(利世間)이라고 했다. 전자의 출가로 열반을 이룬다 해도, 후자는 보살을 이룬다는 설명이다. 

출가수행자의 생명과도 같은 발원은 따라서 중생을 행복으로 이끄는 보리심에 있다. 지현스님의 책상에 놓인 주옥같은 경전과 불서들은 모두 다 우리를 평화와 행복으로 품어주기 위한 방편이다. “인생행로를 빗댄 ‘이하백도(二河白道)’라는 말이 있어요. 중국 선도대사의 말인데, 탐욕의 불길과 화의 불길이 영접한 가운데 백도가 희미하게 보이니 이것이 정법의 길입니다. 철저한 신심으로 착실하게 수행하여 동방의 석가여래 가르침과 서방의 아미타불 원력으로 극락세계에 들어가서 해탈하여 성불할 수 있도록 백도의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좋은 책은 그 길을 밝혀주는 등불이 되겠죠?”

 

■ 스님이 믿고 보는 ‘틱낫한’

60여권 저서 꿰뚫어

지현스님은 중국이나 대만, 티베트, 베트남 등 외국의 고승들이 낸 책들을 자주 보는 편이다. 특히 베트남 출신 틱낫한 스님의 책은 지금까지 국내에 소개된 60여권의 책을 모두 독파했고, 주변 사람들에게 자주 권장한다. 10년 전에 나온 책 <포옹>은 마음을 다잡는 53가지 화두를 통해 인생의 행복과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책에는 마음의 응어리를 풀고 평화로운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경청하는 방법과 미래를 위핸 현재를 유지하는 법 등을 알려준다. 소음 대량생산의 시대, 침묵의 가치를 재발견하는 <침묵>, 아침에 눈뜨면서부터 잠들기 전까지 현대인의 생활패턴에 맞춘 게송을 담은 <기적>, 내 안에 있는 아이의 상처를 치유하는 심리처방전 <화해> 등도 지현스님이 잘 보고 권하는 책들이다.

오래 전 살았던 스님들의 게송을 묶은 <지금 이 순간 경이로운 순간>, 두려움을 화두로 깨달음을 지향하는 <죽음도 없이 두려움도 없이> 역시 십수년이 넘은 책이지만 지금 읽어도 유효하다. 사랑이란 명제로 사랑을 하고 있는 우리는 누구인지, 사랑으로 무엇을 이루었는지 등 흥미로운 주제를 담은 <첫 사랑은 맨 처음 사랑이 아니다>는 스님의 첫사랑과 대승경전에 대한 명상집으로 2001년 출간 당시 화제가 됐던 책이다. 최근에 나온 틱낫한 스님의 저서 <너는 이미 기적이다>도 지현스님이 강력추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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