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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창원, 고대문화교류사 연구의 보고

기사승인 2018.03.08  17:5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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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문화재硏 국제학술심포지엄 개최

7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정창원 소장 한반도 유물’ 심포지엄에서 최응천 동국대 교수가 인각사 출토 병향로와 정창워 소장 병향로를 비교해서 설명하고 있다.

일본 왕실의 ‘보물창고’로 알려진 도다이사(東大寺) 정창원(正倉院)은 8세기 일본 미술품과 사산조 페르시아 인도 등 실크로드 지역, 통일신라, 중국 당나라 유물을 소장하고 있다. ‘고대문화교류사 연구의 보고’라고 불리지만 정창원 유물은 베일에 싸여 있다. 1년에 한 번, 제한된 수량만 거풍(擧風)을 위해 일본 나라국립박물관에 전시할 때만 공개될 뿐이다. 접근조차 쉽지 않은 까닭에 국내학자들이 연구하기에는 한계가 많다.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소장 최종덕)가 지난 7일 국립중앙박물관 소강당에서 ‘정창원 소장 한반도 유물 - 정창원을 통해 밝혀지는 백제.통일신라의 비밀’을 주제로 연 국제학술심포지엄은 정창원 유물 연구에 대한 국가차원의 교류의 단초가 될 것이라는 점에서 의미 있다.

원래 도다이사 창고였던 정창원은 북창(北倉), 중창(中倉), 남창(南倉)으로 구성된 목조건물이다. 756년 세상을 떠난 쇼무(聖武)천왕의 49재 때 그의 비인 고묘왕후가 왕의 보물들을 도다이사 대불(大佛)에 헌납한 것을 보관한 것에서 비롯된다. 이후 왕실이나 귀족들이 보시한 보물과 동대사의 불교용구와 도다이사 조불소(造佛所)와 행정기관 문서 등이 보관돼 있다. 현재는 약 9000여 점이 전해진다. 이중 5%가량이 국외에서 온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백제와 통일신라시대 보물도 적지 않아 백제와 신라의 일본교역 역사를 알 수 있다.

특히 정창원 소장 금속공예품 가운데는 한반도와의 관계가 주목된다. 최응천 동국대 교수는 ‘정창원 금속공예의 연구현황과 과제’에서 정창원 금속공예와 한반도 출토 금속공예품을 비교하며 제작지 연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예로 들면 정창원 소장 백동가위는 가윗날 위가 둥그런 접시모양이라 용도가 불문명했는데, 경주 월지에서 같은 모양의 가위가 출토되면서 초 심지를 자르는 용도임이 확인됐다. 또 758년 이전 제작된 갈항리사지 석탑에서 발견된 청동 사리병은 정창원 소장 나라시대 수병과 거의 동일하다. 익산 미륵사지 서탑에서 발견된 금동제 외형 사라기에서 보이는 어자문과 넝쿨문양은 정창원 유리배 받침에 그대로 시문돼 있어 백제유물이란 견해가 제시됐다. 군위 인각사 묘탑에서 나온 손잡이에 사자문양이 부착된 병향로 또한 정창원 병향로와 거의 유사한 형태다. 창원 말흘리사지 금동번, 삼척 흥전리사지 금동번과 백제제작 가능성이 제기되는 정창원 소장 금동번은 비교연구 할 가치가 있다.

한일 교류현황은 정창원 소장 ‘매신라물해(買新羅物解)’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박남수 신라사학회장은 ‘정창원 매신라물해(買新羅物解)를 통해 본 신라 물품 교역’에서 나라시대 일본왕족과 귀족들이 신라와 교역으로 구입한 물품 목록을 살펴봤다. 신라물건을 매입하는 문서인 ‘매신라물해’는 정창원 소장 ‘조모립녀병풍’ 배지에서 발견됐다. 752년 일본에 파견된 신라 왕자 김태렴 일행에게 일본 관료들이 신라물품을 구입하기 위한 신청서가 병풍 배지로 쓰인 것이다. 도다이사 노사나대불 개안법회가 봉행되던 시기 방일한 김태렴과 700여 순례단은 신라 출신으로 알려진 심상스님이 주석했던 다이안사(大安寺)와 도다이사를 참배하고 교역을 병행했음을 추정할 수 있다. 김태렴 일행이 가지고간 물품은 122종에 달하는데 향류와 약재 외에도 각종 불구와 식기, 향로 촛대 등 기물 등이 포함돼 있다. 총 매출액은 면 7만2480~8만2560둔으로 쌀 1283.5석~1461.5석에 해당하는 막대한 물량이다.

나이토 사카에 일본 나라국립박물관 학예연구사가 ‘정창원 소장 한반도 유물’을 소개하면서 익산 미륵사지 서탑 출토 사리장엄구와 유리잔 받침 어자문과 덩쿨문을 비교하는 모습.

정창원 소장 신라물품 가운데는 신라에서 제작된 물건 가운데에는 신라에서 제작된 먹이 있고, 700구 그릇 중에 ‘위수 내말’이 새겨진 그릇이 있다. 이두가 적힌 문서가 남아 있는 네 겹의 사하리가반(佐波理加盤)도 있다. 사하리는 15~20% 주석을 함유한 동을 지칭하는데 불교의식구나 음식기에 주로 사용됐다고 한다. 사하리가반은 신라 공적공방에서 제작됐고, 752년을 전후로 부속문서와 함께 일본에 전해졌다. 물품명세표 같은 첩포기(貼布記)가 붙은 신라식 카페트로 문양이 있는 화전(花氈)과 단색으로된 색전(色氈)이 있다. 일부 학자들은 앞서 언급한 사하리가반이나 모로 된 카페트는 김태렴이 가지고 온 교역품으로 보기도 하지만, 동일한 물건이 아니더라도 당시 교역한 신라물품에 대해 알 수 있는 사료가 된다. 박남수 회장은 “정창원 남창과 중창에 보관된 신라물품은 일본을 왕내하던 신라상인을 통해 매매된 것”이라고 추정했다.

이밖에도 나이토 사카에 일본 나라국립박물관 학예연구사가 ‘정창원 소장 한반도 유물’을 소개했다. 이난희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사가 백제 적칠주자(赤漆廚子)를 통해 칠공기법에 대해 발표했고, 히가사 이츠토 일본 나라박물관 학예사가 ‘정창원 소장 화엄경론질과 심상(審祥)이 들여온 신라사경’에 대해 살펴봤다. 신숙 한국전통문화대학 겸임교수는 ‘백제와 일본 정창원 소장품’에 대해 발표했다.

어현경 기자 eonaldo@ibulgyo.com

<저작권자 © 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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