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좌 광배 갖춘 완전한 형태

각연사 석조비로자나불좌상 사진=문화재청

보물 제433호 괴산 각연사 석조비로자나불좌상은 비로전에 봉안된 주불이다. 신라하대 양식을 계승한 고려시대 초기 불상이란 의견이 지배적이다. 각연사는 신라 법흥왕 때 유일스님이 창건했다고 알려져 있다. 일설에 의하면 사찰 불사 중 갑자기 까마귀 떼가 나타나 공사에 쓰던 나무 부스러기를 물고 날아갔다고 한다. 이상하게 여긴 유일스님이 따라가니, 까마귀들이 조그만 연못에 나뭇가지를 떨어트리고 주변에 앉아 있었다. 연못에서 석불을 발견한 스님은 깨달은 바가 있어 못을 매워 사찰을 건립하고 각연사라고 이름 지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1768년에 작성된 ‘각연사 대웅전 상량문’에서는 고려 태조부터 광종 재위기간(918~975)에 통일대사(通一大師)가 창건했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비로전 대들보에서 나온 묵서에는 고려 혜종 재위기간(944~945)에 중수된 기록이 전해진다.

비로전에 봉안된 비로자나불상은 대좌와 광배를 갖춘 완전한 형태의 불상이다. 대좌와 광배를 포함한 전체 높이가 300.1cm이며, 불상은 123.1cm이다. 광배는 높이 187.4cm, 폭은 140cm 크기다.

머리에는 작은 소라모양의 나발과 납작한 육계가 있다. 상호를 보면 눈썹이 비교적 둥그렇고 눈은 가로로 길다. 코는 짧고 입술은 도톰한데 붉게 칠해져 있다. 나발과 육계, 눈썹과 수염이 검게 채색돼 있어 이목구비가 뚜렷하다. 귀는 어깨에 땋을 듯 늘어져 있다. 외손 검지를 오른손으로 감싼 지권인을 하고 있으며, 결가부좌를 한 모습이다. 오른쪽 어깨만 드러난 우견편단을 표현했는데, 옷 주름은 다소 형식적이다. 어깨부터 흘러내리는 주름이나 양쪽 무릎 주름 등이 도식적이다.

광배는 끝이 뾰족하고 가운데가 잘록하게 들어간 불꽃모양을 하고 있다. 광배를 살펴보면 불상의 머리 위쪽에 3구의 작은 부처님이 나란히 새겨져 있고, 좌우에도 세로로 3구의 화불이 있다. 화불 역시 나발이 검게 칠해져 있고, 두광은 푸른색으로 칠해져 있다. 광배 안쪽은 연꽃무늬와 구름무늬로 장엄하고, 가장자리는 불꽃문양을 새긴 것이 눈에 띈다.

광배 뒷면에도 문양이 새겨져 있으나 육안으로는 확인이 어렵다. 조중근 영동대 교수는 ‘각연사 석조비로자나불좌상의 정밀실측 및 보존·정비에 관한 연구’논문에서 광배 뒷면탁본을 공개했다. 뒷면 중앙에 새겨진 가마의 일종인 연(輦)이 확인된다. 받침대는 없으나 몸체, 지붕을 확인할 수 있으며 지붕 중앙에는 불꽃문양이, 모서리에는 장신구가 달려 있다. 연은 사찰에서 사용되는 의식용 가마를 뜻한다. 불보살과 사리 등을 이운하거나 재를 받을 대상을 도량으로 모셔올 때 사용되는 불구가 광배 뒷면에 새겨진 것이 인상적이다.

대좌는 8각형으로 3단으로 구성돼 있다. 기단석 각 면에는 안상이 있고 그 안에 향로, 가릉빈가 등이 새겨져 있다. 하대석에는 모서리마다 귀꽃문양이 조각돼 있고 중대석에는 구름문양 사이로 사자머리와 앞발이 있다. 각연사 비로자나불상의 전체적인 모습은 통일신라시대 때 조성된 대구 동화사 비로암 석조비로자나불상과 유사하지만 도상이 형식적으로 변한 것으로 볼 때 고려시대 초기에 조성됐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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