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가루와 같이 부드러운 고양이의 털에
고운 봄의 향기가 어리우도다.

금방울과 같이 호동그란 고양이의 눈에
미친 봄의 불길이 흐르도다.

고요히 다물은 고양이의 입술에
포근한 봄 졸음이 떠돌아라.

날카롭게 쭉 뻗은 고양이의 수염에
푸른 봄의 생기가 뛰놀아라.

-이장희 시 ‘봄은 고양이로다’에서

이장희 시인은 이 시를 그의 나이 스물 네 살이던 1924년에 발표했다. 그는 스물 아홉 살에 요절했고, 30여 편의 시를 세상에 남겼다. 고양이의 부드러운 털과 동그란 눈과 가만히 다문 입술과 곧게 뻗은 수염에서 봄의 향기와 봄의 불길과 봄의 졸음과 봄의 생기를 함께 읽어냈다. 봄이 환기시키는 동적인 생명력은 물론 정적인 나른함과 포근함을 동시에 표현했다. 뜰에, 들마루에, 거실에, 침대 위에, 장독대에, 풀 돋는 밭에 봄이라는 고양이가 앉아 있다. 그리고 한 마리 고양이가 한 차례 몸을 쭉 펴고 팔다리를 뻗은 후에 움직여가듯이 봄은 그 몸을 일으켜 세워 서서히 우리의 마당과 골목을 간다. 환한 꽃나무 사이를 지나 높은 담장을 넘어 들판을 산을 간다. 해마다 봄이 돌아오면 이 시를 다시 읽게 된다.  
시인·불교방송 PD

[불교신문3376호/2018년3월17일자] 

문태준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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