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국학진흥원 30일 고성이씨 문중 특별전서 공개

이암이 쓴 화엄경 십회향품

고려말 문신을 지낸 명필 행촌 이암(1297~1364)이 쓴 <대방광불화엄경> 2점이 발견됐다. 한국국학진흥원(원장 이용두)은 오는 30일 고성이씨 문중 특별전 ‘은둔과 개혁, 군자의 삶’에서 이암의 <화엄경> 필사본을 공개한다.

고성이씨는 누대에 걸쳐 공신과 재상을 지낸 고려시대 문벌가다. 이암 또한 공민왕 때 시중을 지냈다. 이암은 송광사 16국사 중 한 명인 각진국사의 조카로, 장성 백양사는 그의 원찰이기도 하다. 고려말기에는 송설체라 불리는 조맹부의 필법이 유행했는데, 이암은 조맹부체의 연미한 단점을 보완해 필획이 굳세고 장중한 글씨를 선보였다. 그의 필체는 문수원장경비(文殊院藏經碑) 탁본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번에 발견된 <화엄경>와 <행촌친필>은 이암이 직접 쓴 화엄경 필사본 서첩이다. <화엄경> 필사본에는 제26권 ‘십회향품(十回向品)’ 제25가 기록돼 있는데, 크기는 41.3×14.8㎝ 이다. 1행 17자이며, 절첩본으로 1면에 6행씩 적었다. 현재 앞뒤 표지와 본문 4면이 남아있다. 앞뒤 표지에는 4개의 연화문으로 장식돼 있다. 4개의 연화는 금니로, 연화를 둘러싸고 있는 당초 줄기 잎들은 은니로 장식되어 있다. 뒤 표지화의 경우 앞 표지화의 가장 위쪽에 배치된 연화의 형태를 한 연꽃이 4개가 그려져 있는데, 방향이 모두 아래쪽을 향하고 있어 이 시기 흔치 않은 사경첩이다. 본문은 백지에 묵서(墨書)이다.

보현행원품 발문

<행촌친필>은 <화엄경> ‘보현행원품(普賢行願品)’의 한 부분이다. 크기는 24.8×13.0㎝이다. 감지에 은니(銀泥)로 쓴 서첩은 전부 10절첩으로 구성되었으나 현재 사경이 남아있는 것은 2면 뿐이며, 1행 17자이다. 맨 앞부분에 후손 이주정(李周禎,1750∼1818)이 짓고 쓴 발문이 붙어 있다. “행촌 선조의 필적은 전국에 흩어져 있는데 다행스럽게 취득하더라도 진위의 구별이 어렵다. 이 두 점은 호남에 사는 종친 집안에서 얻은 것으로, <화엄경>은 질재공(質齋公)의 서체로 본디 분명하게 고증된 바가 있다. 선조와의 거리는 매우 멀다. 표제인 ‘행촌친필’ 네 글자는 수백년 전의 글씨로 믿을 만한 필적이다”라고 기록해 이암의 친필임을 증명한다.

한국국학진흥원은 “이번에 발견된 서첩은 정성들여 사경(寫經)한 작품으로 이암의 친필 글씨를 감상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자료”라고 설명했다.

화엄경 필사본 표지

[불교신문 3379호/ 2018년 3월2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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