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할아버지, 엊그제 엄마가 경전을 베껴 쓰고 계셨어요. 그래서 엄마에게 시험 보려고 열심히 베껴 쓰느냐고 물었어요. 그랬더니 ‘사경’을 하고 있다고 했어요. 사경(寫經)은 왜 하나요?

부처님 가르침을 널리 전하고 
그냥 읽기보다는 글로 옮길 때 
뜻도 훨씬 깊이 새길 수 있어

사경은 ‘베낄 사(寫)’란 글씨와 ‘글 경(經)’이라는 글씨가 모여 빚은 낱말이란다. 불자들이 본으로 삼는 불경(佛經)은 부처님 말씀을 글로 옮겨 담은 그릇이고, 기독교인들이 본으로 삼는 성경은 예수님 말씀을 글로 옮겨 담은 그릇이야. 그러나 아무리 거룩한 분들이 남긴 말씀이라도 그릇에 그저 담겨만 있다면 아무짝에 쓸모가 없어요. 사람들이 저마다 마음에 새겨서 참답게 살아가야 옹근 뜻이 살아나지. 그런데 몇 천 년 전에는 글을 쓸 줄 아는 사람이 몹시 적었어. 게다가 종이도 없을 때라서 불경은 처음에 나무껍질에 적어남기다가 나중에는 죽간이라고 해서 대나무를 쪼개 이은 것에 써넣었다고 해. 성경은 양가죽 따위에다가 썼다는구나. 한참 뒤에 종이가 나왔지만 인쇄술이 없어서 붓이나 펜으로 써서 말씀을 이어갈 수밖에 없었어. 

그러니까 경전을 낱낱이 손으로 베껴 써야 만이 거룩한 부처님 뜻을 여러 사람에게 나눌 수 있었단다. 그래서 경을 베껴 써서 나누어 쌓은 덕을 헤아릴 수 없이 크다고 한 것이야. 사람들이 경전에 담긴 뜻을 몸에 새겨 참답게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려는 거룩한 손짓이지. 일본 사람들이 빼앗아간 우리 불교문화재 가운데에는 ‘법화경 보탑도’라고 하는 것이 있다고 하는구나. <법화경> 일곱 권에 담긴 부처님 말씀을 한 자 한 자 새겨 넣어 4미터(m)짜리 칠층탑을 그렸다고 해. 이것을 다 읽으면 법화경 일곱 권을 모두 떼는 것이지. 삼성미술관 리움에 있는 755년에 만든 <화엄경>에는 “우리는 이 불경을 만들면서 글씨 한 자 쓰고 향 사르고 세 번 절을 올리고 또 한 자 쓰고 향을 올리고 절을 세 번 하면서 써내려갔다”고 적바림되어 있다고 해. 이것들을 다 쓰는데 얼마나 오래 걸렸을까? 상상도 가지 않아.

인쇄기술이 생기면서 사람 손으로 경전을 베껴 쓰지 않아도 되었지. 그런데 아직도 사경을 하는 까닭은 어디에 있을까? 읽기보다는 글로 옮길 때 훨씬 뜻을 깊이 새길 수 있기 때문이야. 불자라면 모름지기 부처님 가르침을 몸에 새겨둬야 살아가면서 부처님이 펴신 뜻을 결 곱게 드러낼 수 있지 않겠어. 

[불교신문3378호/2018년3월24일자] 

변택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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